5.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김동근 옮김)
흑백 사진 그 남자의 표정이 묘하다. 괴로운 듯, 피곤한 듯, 머리가 무거운 듯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움푹 파인 볼은 그늘졌지만 아픈 기색은 없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와 잘 생긴 귀. 준수한 외모다. 그러나 그의 눈은 세상 어느 곳도 응시하지 않는다. 텅 비었다.
‘이 남자 오래 못살겠구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첫인상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쇼와 시대(1926~1989)의 작가로 그의 작품 <인간실격>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소설이다. <인간실격>의 “기분 나쁘고”, “기괴하고”, “오싹하고, 꺼림칙한” 주인공 요조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다.
주인공 요조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성장하지만 세상과 인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술집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여자는 죽고 그는 살아남는다. 그 죄책감은 요조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술집을 전전하며 살던 요조는 가난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가진 담뱃집 아가씨와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온전한 삶을 살아보려 시도하지만 삶은 그의 편이 아니다. 부인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본 후 괴로움을 잊고자 약물에 손을 댄 그는 약물 중독자가 되어 병원에 갇히게 된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인간실격> p.14) 소설의 첫 장에 나오는 이 말은 주인공 요조의 말이자 작가 자신의 말이다. 어린 시절 요조는 “서로서로 속이면서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또한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p.35) 속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결여된 인간’이라 생각한다.
소외감, 세상에 대한 두려움, 인간에 대한 공포. 그는 이러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스스로 파멸해 간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겁내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요조.
그런 요조가 세상에 속하고자 단 한번 용기 냈던 순간이 바로 담뱃집 아가씨와의 결혼이다. 요조는 그를 믿고, 그의 약속을 믿고, 세상 사람들도 믿는, 의심할 줄 모르는 아가씨의 순수한 인간애를 통해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평범하고 온전한 ‘보편적인 삶’ 속에 자신을 끼워 넣으려던 요조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그를 인간 실격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수치심도 없이 세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자 발악하는 인간군상 속에서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보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가 내겐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라 표현했지만 작품 속 요조의 인생은 사실 구차하다. 어찌 보면 그는 넘치는 자기애 때문에 자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퇴폐적 삶의 과정이 아니라 내면에 집중해 보자.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려낸 요조는 작가의 화신이다. 요조를 통해 우리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소통해야 한다.
작품 속 요조는 죽음을 기다리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 5번의 자살기도 끝에 결국 성공한다. 그토록 죽음에 집착하던 그가 요조의 생을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끝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숨겨진 생존 본능이라 해야 할까? 자살이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이었을까? 그는 인간 실격이 아니라 구제불능 겁쟁이는 아니었을까? 많은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