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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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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Jan 01. 2022

'한국 나이'가 좋은 시절

출처 unsplash.com ⓒ Martin Reisch

새해는 새해다. 여기저기서 '한국 나이'를 두고 말이 많다. 나도 한 마디 보탤 수 있다.


빠른 ○○년생으로 7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불편함은 성인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회 속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관계가 깊어지면 으레 '근데, 나이가 어떻게?'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니까 ○○년생인데,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학번이고, 친구들은 ○☆년생이에요.'


설명이 점점 구차해졌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똑같은 ○○년생이어도 한 학년 아래였던 이들에게 '동갑이네~~' 소리를 들으면 옹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 나이'에서 점점 길을 잃어가다가 이제는 그냥 '나이'라는 것 자체에 어떤 기쁨과 슬픔, 혹은 분노나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는 시절을 건너고 있다. 생일이 어떤 식으로든 '이벤트'였던 날들도 제법 오래 전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고, 시간을 서툴게 헤아리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일이다. 어제 '12월 31일'을 설명하기 위해 '내일이면 1호는 7살이 되고, 2호는 6살이야'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 1호는 눈뜨자마자 소리쳤다.


"나 오늘부터 7살이다!!!!!!!"


단둘이 마트로 비밀데이트를 갔다가 실패한 채 종종걸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2호에게 '6살이 되니까 뭐가 좋아'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이제 6살이니까 깍두기도 먹을 수 있어!!!!!"


그래, '한국 나이'는 이럴 때 아직 쓸모가 있다. 하루하루 넘쳐나는 흥과 꺾이지말아야 할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연초부터 자차와 기둥을 포옹시키고 '이건 범의 해 액땜'이라고 자조하는 나에게...

이정도로 망가진 건 아니고... 긁힌 정도이긴 하지만... 출처 : unsplash.com ⓒ Michael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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