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느 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릭 Dec 31. 2021

새해에도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땐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좋아하는 책이 아니다. 제목과 표지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이게 뭐야' 하면서 덮었던 쪽에 가깝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문득 생각나는 책이 됐다. 놀이터에서, 키즈카페에서, 잔디밭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이 떠오른다. 콜필드가 말했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기분이랄까.

출처 : unsplash.com (c)Leo Rivas

가까이 있지만 간섭하지 않고, 물러서 있지만 외면하지 않는, 그 관계를 스스로 관망하는 가운데에서 평온을 얻곤 한다. 물론 스스로 그 고요를 깨뜨려버릴 때도 많지만('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재빨리 손을 붙잡는 상황 같은 것'이라는 변명을 남겨보자).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로든 선택하기 힘들다. 혹여 이성에 기반한 선택이었다하더라도 육체의 한계에 부딪치고 자신의 협량함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좌절하는 순간을 피하기도 어렵다.


가끔 '혼자 혹은 둘이 사는 즐거움과 여유' 때문에 아이가 있는 삶을 고민한다는 이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을 정도다.


"애초에 그건 그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매우 비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수대에 거쳐 그 비합리적인 선택을 되풀이하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도 내 눈 앞에서 쉴 새 없이 아웅다웅하는 이 두 녀석들이 내게 인류의 비합리성을 수없이 증명해주고 있다.


나는 그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합리가 준 경이로움에 웃고, 울고, 화내고, 안타까워하다가 다시 웃는다. 새해에는 더 많은 날들에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지낼 수 있기를.

출처 : unsplash.com (c)Moritz Knöringer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하게,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