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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인 Jul 06. 2020

매너는 침대를 만들 수 있을까?

시몬스, 침대 없이 브랜딩 하는 침대 브랜드

휴대폰, 자동차, 통신사, 투자와 IPO가 필요한 신생 브랜드까지. 끊이지 않고 TVCF로 접하는 몇 가지 산업군이 있다. 근데 그중에서도 은-근—히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군집이 있는데, 바로 '침대'다. 지금 침대 하면 어떤 브랜드가 먼저 떠오르나. 최근 나에게 떠오르는 첫 번째 브랜드는 '시몬스(Simmons)다.
침대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맞아요 l 출처 - 시몬스 공식 인스타그램


이렇게 푹신한 침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때는 18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몬스의 창시자 젤몬 시몬스(Zalmon G Simmons)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침대사업을 시작하여 1876년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침대 대중 보급의 시초를 만들었다. 이후 시몬스는 1925년에 세계 최초로 포켓 스프링 제조 기계 특허를 취득했고 그 모양새가 점점 변화하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침대는 정말 '과학'이었다.


시몬스는 말한다 '시몬스의 역사가 세계 침대의 역사입니다'라고 I 출처 - 시몬스 공식 홈페이지 (simmons.co.kr/aboutus/heritage)


그런 시몬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92년이다. 그리고 1993년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시몬스 상표권 공식 이전을 완료하면서 한국 시몬스만의 역사가 시작됐다. 진출 3년 뒤인 1995년 '훈둘리지 않는 푠안함(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은 최초로 TV전파를 탔다.


침대 없이 브랜딩 하는 침대 브랜드

시몬스는 원래 독특한 광고로 유명했지만, 최근 시몬스의 행보가 조금 독특하다. 2018년에는 광고모델로 션 오프리(Sen O Pry)로 선정하고(당시 테일러 스위프트의 뮤비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탄 모델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아티스트 혼네(Honne)의 노래를 활용하여 영화와도 같은 TVCF를 제작했다.


하루 종일 여러 논쟁과 갈등이 있었던 듯한 남자 주인공이 털썩하고 누우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침대와 나 단 둘만 공간에 남는 모습을 보였는데, 당시 매체비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TV만 틀었다 하면 쉽게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화제가 된 시몬스 므랜드 캠페인 영상 I 출처 - 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저는 차라리 엔딩이 좋더라고요. 언제쯤 누울지 긴장속에서 시청하게 됨.. I 출처 - 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그리고 상대적으로 기억에는 적지만 2019년에는 타이포를 볼드 하게 활용 해 타사 브랜드 대비해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고자 했고, 올해인 2020년 3월 상반기 론칭한 신규 캠페인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Comfort)'라는 메시지로 150주년 기념 캠페인을 선보였다.


그런데 잠깐만. 매너가 편안함을 만들고 시몬스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니까. 매너가 시몬스라고?

되려 더 다리를 모아주고 싶었던.. 시몬스 150주년 기념 TVCF 캠페인 I 출처 - 시몬스 유튜브 공식 채널


최근의 시몬스의 캠페인을 보고 '명확한 메시지를 내보냈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그 어디에서도 침대가 가장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얼마나 편한지, 정말 흔들리지 않는지'와 같은 기능적인 메시지는 나타내지 않고. 상황과 맥락 속에 마치 시몬스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마무리하고 있다.


기능적인 메세지보다 상황과 맥락속에 시몬스를 배치한 150주년 캠페인 광고 I 출처 - 시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왜냐면, 경쟁사와 달라야 하니까요.

제작비를 들여 영상을 촬영하고 촬영한다는 것 그리고 비싼 매체비를 사용하여 영상을 틀어낸다는 것은 여러 의도를 갖고 있다. (경험상 나열해 봤다)

(1) 경쟁사를 넘어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2) M&A를 위해 단시간에 기업가치를 올려야 할 때
(3) 어떠한 계기가 있어 브랜드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4) (과거엔 좀 많았던)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정치성향을 위해 기업형 브랜딩을 위해
(5) (그래서는 안 되지만 종종 발견되는) 경영진의 자아실현을 위해

그중 시몬스는 (1) 경쟁사를 넘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대표 침대 브랜드인 에이스(ACE)를 잠시 살펴보겠다. 한국 토종 브랜드인 에이스는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침대는 과학이다.' 라며 침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설계'라는 RTB(Reason to Buy)를 빼앗았다. 한편, 코디네이터와 함께 성장한 있는 코웨이(Coway)는 매트리스 렌털과 정기검진 서비스를 통해 '깨끗함'을 자신들의 RTB로 내세우고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에이스(ACE)와 위생이 있어야 진짜 침대라고 말하는 코웨이(Coway) I 출처 - 에이스, 코웨이 공식 홈페이지


때문에, 시몬스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되는 방향성을 선택한 것 같다. 젊고 키치 하지만 갸우뚱 의문을 자아내게 하고, 뭔진 모르겠지만 신기하리만치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영상 말미에 등장하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다.


시몬스는 어떤 모습을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더라도 결국 자신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에,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캠페인들의 사고 과정은 되려 철저하게 의도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시몬스 브랜드의 철학은 꽤나 진지하다 I 출처 - 시몬스 공식 홈페이지 (simmons.co.kr/aboutus/heritage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에도 침대가 없어요

요즘 좀 뜨겁다 하는 사람들은 이미 성수동의 시몬스 플래그십 스토어는 방문해봤을 것이다. 2평 남짓한 작지만 옹골진 이곳에는 모든 물건을 다 빼놓아도 침대 하나 들어갈 수 없이 작고 아늑하다. 대신 시몬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미국 레트로 감성을 자아내는 물건들(Brand Goods)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침대하나 없는 시몬스의 성수동 팝업스토어 I 출처 - 시몬스 공식 인스타그램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 공간은 히어로 프로덕트(Hero Product)와 이를 실제 손으로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몬스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침대가 없다. 대신 실체를 상상하게 끔. 눈으로 경험하고 내 머릿속에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침대 브랜드로서 가장 힙한 영상미로 방문하고 싶게끔 만들기I 출처 - 시몬스 유튜브 공식 채널


장소의 네이밍도 독특하다. 벽면에 크게 하드웨어 스토어(Hardware Store)라고 이야기하지만 침대를 구성하는 용수철이나 페브릭 하나 찾을 수 없다. 대신 매너가 편안함을 만든다(Manner Maketh Comfort)는 슬로건을 품은, 갖고 싶을 만큼 세련된 제품이 즐비하다. 마치 시몬스를 구성하는 것은 이런 라이프 스타일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매너'라고 역설하듯이 말이다.


성수 시몬스 팝업스토어 l 출처 - W 매거진 공식 유튜브 채널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는 지난 6월 말 성수에서 막을 내리고 오는 8일 시몬스 테라스에서 그 철학을 이어간다.


갖고 싶은 브랜드는 꼭 손으로, 눈으로 만져야 할까? 아니면 상상 속으로만 만들어내도 소유하고 싶은 브랜드가 될까?


빼앗긴 RTB에도 봄은 오는가..? 침대 없이 침대 브랜드의 경험을 제공하는 시몬스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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