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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Mar 12. 2023

그만하고파!

드디어 폭발하다

4년을 약속했는데 꼴랑 1년 하고 포기를 선언하고 싶다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지만 속 마음은 진심이다. 


평소에 글을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 외에 내 나름의 핑계가 있다. 그건 내 마음을 그대로 적고 싶은데 그러다 보면 내 글로 인해 상처받고 피해를 당할 사람이 있기에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들도 볼 글을 쓰려고 하면 어느새 내 마음이 포장되어 미화하거나 과장하게 된다. 남을 의식해서 솔직하지 못한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자기감정을 솔직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크게 공감된다. 아무튼 몇 번이나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쏟아놓고 싶었지만 행여 글에 언급된 누군가 알아차리게 될까 봐 망설이면서 선뜻 글을 쓰지 못했다.


이 제목을 써놓고 더 이상 쓰지 못한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그동안 또 많은 변화가 있어서 내가 왜 이런 제목을 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생각났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말 아침에 딸네 식구와 다 같이 있을 때 손녀에게 밥을 먹이고 그가 원하는 동요를 핸드폰으로 틀어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사위가 나오더니 내 핸드폰을 '탁' 닫았고 동요를 열심히 보던 손녀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가뜩이나 그가 핸드폰이나 TV 보여주는 걸 원치 않아서 나름 조심하고 예전에 비해 모든 걸 줄였지만 손녀는 그럴수록 목말라하며 애처롭게 간청해서 하루에 서너 번씩 짧은 동요를 한두 개 틀어줬는데 사위는 그것마저 못마땅했는지 그런 행동을 했다. 우는 아이도 애처로웠지만 문득 심한 모욕감이 올라왔다. 내게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위가 너무 무례해 보였고 내가 육아에는 문외한인 무식한 할머니가 된듯했다. 또 부부 사이에 육아방침에 갈등이 있어도 아이 보는 앞에서는 서로 참견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심지어 손녀 앞에서 할머니를 정말 무시하는듯한 사위의 태도가 정말 미웠다. 또다시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리 경솔하게 행동할 수도 없었고 그때 마침 딸과 사위도 냉전 중이어서 내 불만마저 보태면 더 위태로워질 것 같아서 애써 참았지만 몹시 우울했다.

그 후에 카톡을 통해 에둘러 내 상한 마음을 표현했고 사위의 사과도 받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옹이는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이런 옹이들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살아온 경험상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는 대화로 절대 옹이를 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미숙한 사람들이 대화라고 해봐야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게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고 상대방은 일단 자기 입장을 옹호하려다 보면 사과보다는 합리화하게 되어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된다. 남편과는 이미 포기했고 내 자식들과도 어지간해서는 아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하물며 남의 자식인 사위와 대화를 통해 풀려는 건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 후에 내 마음이 누그러진 계기가 된 일 중의 하나가 손녀에 대한 사위의 정성과 사랑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손녀네 어린이집이 사흘간 봄방학을 한다고 하니 사위는 이틀은 자기가 휴가 내서 아가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일박이일 간 친구와 그의 아들을 데리고 water park에 가서 놀고 이틀은 자기 본가에 가서 데리고 있다 오겠단다. 딸은 휴가를 얻을 수 없어서 사위 혼자서 아가를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딸과 남편은 그가 내 수고를 덜어주려는 것이라 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내가 그에게서 놀란 것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서 수영복을 갈아입히고 튜브를 태우고 종일 놀아주는 게 우리 시대의 남편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3박 4일을 혼자서 아가를 돌본 그를 보면서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정성에 감탄하면서 그런 아이를 자기 원칙대로 키우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4년이라는 약속을 무난히 채우는 숙제를 해내기 위해 내 마음을 돌려먹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수없이 닥칠 이런 일들을 겪어내는 게 다사다난한 추억을 쌓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들 기회인지 아니면 서로의 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골을 내고 상처를 안고 이별하게 될지 때로 위태로운 느낌마저 든다. 다시금 중얼거리게 된다. 왜 내가 사서 이 고생을 자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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