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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애 May 01. 2022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

노력형 인간의 셀프 챙김 생존 일기 <4월도 잘 살아남았습니다.>


남의 일 말고 내 일, 내 밥 먼저 챙기기로 결심한 파워 J 노력형 인간이 살아남으며 느끼고, 먹고,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공유합니다. 4월 마지막 주도 잘 살아내셨나요?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사진이 함께 하지 않는 글을 남깁니다.

사진 없이도 잘 읽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Diary /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 아빠라는 이름의 파도

Mind / 나를 살게 한 생각- 인생은 배드민턴이 아닙니다

Book / 나를 살게 한 책들 - 전쟁일기

Food / 나를 살게 한 음식 - 돌나물 비빔밥




Diary

아빠라는 이름의 파도


싸이월드가 돌아왔다. 모두 자신의 흑역사가 거기 있다며 설레는 마음 반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사진첩의 복구를 기다렸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스타일의 나를 마주할 걱정과 동시에 그때는 당연했고 지금은 그리운 그 순간의 사진을 마주할 설레는 마음이 공존했다. 사진첩 속 사진들을 하나씩 보며 처음엔 그저 재미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모두 보고 난 후에는 웃을 수 없었다. 사진첩 속에는 수많은 내 셀카, 친구들과의 사진, 맛있는 음식, 연예인 사진이 있었는데 정작 내가 가장 기대했던 사진은 없었다. 


나는 내 미니홈피 사진첩에 그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우리 가족의 사진, 엄밀히 말하면 아빠의 사진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 사진첩에 우리 가족, 아빠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 수많은 사진 속에 단 한 장도. 아, 싸이월드는 진짜 흑역사가 맞았다. 20대 초반의 가족에게 무심하고, 소중함을 몰랐던 송아름을 그대로 마주했다. 결국 나의 흑역사는 그 밤 아빠라는 이름의 파도를 일으켜 나를 소금기 가득한 눈물로 적시고 말았다.


이번 달에도 매주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챙겨 봤다. '일기 쓰는 택시'를 운영하는 택시 기사님의 이야기를 보았다. 이런 저러 이야기를 하시다가 택시 기사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하시는데 그 순간 다시 또 마음에 파도가 솟구쳤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택시기사였다. 서울, 경기, 지방 가리지 않고 곳곳을 다니셨고, 새벽에 출근하셔서 새벽에 돌아오셨다. 우리 아빠는 택시기사를 그만둔 후에도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 '길 박사'의 삶을 사셨다.  

 

암 판정을 받은 아빠는 두 차례의 수술을 했고, 두 번째 수술 후 대부분의 기억을 잃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말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던 아빠가 햇살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죽을 먹여주는 내게 어눌한 발음으로 이런 얘기를 했었다. 


"아름아 아빠가 오늘 손님이 탔는데, 강원도까지 가자는 거야. 그래서 아빠 오늘 종일 운전해서 강원도에 갔다 왔어. 그래서 아빠 지금 너무 힘들어. 아휴 힘들어.. 힘들어..." 아빠의 기억 속에 그날이 얼마나 고되게 남아있었으면, 수술 후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그 상황에서 그날이 떠올랐을까. 얼마나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계속 힘들어 힘들어를 혼자 중얼거렸을까. 


그날 나는 그동안 내가 외면해왔던 아빠의 고되고 힘든, 하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던 하루하루들을 생각하고 한없이 괴로웠다. 그날보다 더 힘든 날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아빠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의 고된 하루하루가 내 평온한 일상을 지탱하고 있었으니까. 매일 밤 퇴근 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던 아빠의 삶. 그 삶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술 먹는 아빠를 원망만 했고, 미워하기만 했다. 결국 그날 밤에도 나는 아주 짠 눈물을 흘리며 너무 늦은 그래서 아빠에게 전할 수도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과를 되뇌다 잠이 들었다.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는 나의 해방 일지다. 그 유명한 대사 '나를 추앙해요.'에서도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이전 글에도 적었던 것처럼 우리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했다.'. 이 말은 중의적이다. 아빠에게 1순위는 나였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해 준 사람은 아빠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했고 그 당연한 아빠의 추앙의 존재는 나의 자존감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었다.


하지만 나는 아빠를 추앙하지 않았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나는 나의 모든 자존감과 자신감의 근원이 아빠임을 알지 못했다. 내게 아빠의 추앙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당연한 추앙이 사라진 후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나밖에 모르는 나쁜 딸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해 주던 사람이 사라졌고, 나를 무조건 적으로 응원해주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리고 아빠에게 그 추앙을 돌려주지 못한 미안함에 괴로웠다. 추앙이라는 단어는 사랑, 부성애보다 더 정확하게 아빠가 내게 보여준 그 모든 말과 행동들을 정의하며 내 마음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2019년 5월부터 내 마음의 바다 깊은 곳에는 아빠라는 이름의 파도가 언제든 거세게 물보라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잔잔하게 일상을 살다가도 이렇게 문득문득 아빠라는 파도가 솟구쳐 올라 소금기 가득한 눈물로 내 얼굴을 흠뻑 적신다. 4월의 마지막 주는 유독 파도가 많이 쳤다. 흠뻑 젖은 상태에서 잠에 드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고, 아직 덜 마른 채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 춥고 외로웠다. 그래도 젖었다가 말랐다가를 반복하며 잘 살아남았다. 이렇게 살아남다 보면 언젠가는 아빠라는 파도가 쳐도 젖지 않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겠지. 파도에 흠뻑 젖지 않고 몇 발자국 뒤에서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날도 오게 되겠지. 





Mind

인생은 배드민턴이 아닙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말에는 가는 말이 있으면 오는 말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인생은 셔틀콕을 주고받는 배드민턴이 아니다. 경기, 승패가 목적이 아닌 여가로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할 땐 셔틀콕이 몇 번을 오고 가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곤 한다. 상대방이 잘 보내 줘야 나도 다시 잘 돌려줄 수 있고 그래서 포물선을 그리며 예쁘고 받기 어렵지 않게 셔틀콕을 건네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은, 엄밀히 말하면 관계에서는 배드민턴과 같은 흐름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내가 잘 넘겨주었다 하더라도 그 셔틀콕을 다시 내게 잘 넘겨줄지, 아예 받을 시도도 하지 않고 땅에 툭 떨어지게 할지, 내가 받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나의 허점을 노려 돌려줄지는 상대방의 결정에 달려있다. 넘어간 셔틀콕이 돌아오는 방식까지 내 마음대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내 손을 떠난 셔틀콕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피드백을 바라지 말자.'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셔틀콕을 어떻게 보낼지는 나의 결정이다. 만약 내가 예쁘고 받기 좋은 서브를 했다면, 그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하는 게 내가 좋으니까' 일 것이다. 그거면 됐다. 나는 좋은 서브를 보냈고 그다음은 셔틀콕을 받은 그 사람의 몫이다. 돌아오지 않아도, 나쁘게 돌아와도 나는 내가 좋은 것을 했으니 됐다. 그 자체로 나는 좋은 거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생각을 하고 나니 카톡 메시지의 1이 사라진 후에 오지 않는 답장에도, 누군가의 톡 쏘아붙이는 대답에도, 관심을 보였을 때 돌아오는 무심한 답변에도 속상해하거나, 내가 뭔가 잘 못했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미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서브를 했고, 그 서브로 나는 좋은 감정을 느꼈으니, 그걸로 됐다. 가끔 내가 보낸 것보다 더 예쁜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오는 셔틀콕들도 있으니까. 




Book

하나님, 이들을 지켜주소서 <전쟁일기>


우크라니아와 러시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출근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있는 이 순간에도 동시에 지구 어느 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이 상황들이 현실이라니.


한 순간, 평범한 삶을 살던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전쟁 피난민이 되었다. 그들의 삶을 바꾸는 그 결정에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한 순간에 난민이 된 그림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그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기로 했고, 한국의 정소은 번역가님과 이야기장수의 이연실 편집장님은 그 목소리를 멀리 퍼트리기로 했다.


작가는 전쟁 직 후부터 안전한 곳으로 몸을 옮길 때까지 그녀의 삶에 일어날 일들을 덤덤한 말투로 하지만 적나라하게 적었다. 사실 작가는 덤덤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 순간 억울하고, 두렵고,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적었다. 


그러니 우리는 들어야 한다. 전쟁의 이유, 이 전쟁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물가 등 뉴스에서 전하는 정보가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진짜 현실의 목소리를. 그리고 함께 외쳐야 한다. '전쟁 그만.'


(이 책은 이연실 편집장님과 올가 그레벤니크가 긴박하게 원고를 주고받으며 작업되었고,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번역료 전액, 출판사 수익금 일부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와 자원봉사단에 기부됩니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습니다.



Food

싱그러움이라는 단어가 나물이 되면 


처음 수촌리로 이사 온 해 봄, 엄마와 산책을 간 뒷 산에서 돌나물을 발견하고 뿌리째 캐 우리 집 텃밭에 옮겨 심었다. 그 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돌나물을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잘 자란 돌나물을 톡톡 손으로 한 바구니 따온 뒤 며칠이 지나면, 다시 또 그 자리에 파릇파릇 자라 있는 돌나물들. 빳빳해지기 전의 여린 돌나물을 여름철 내내 맛볼 수 있다는 건 참 큰 행복이다. 


올해도 날이 더워지자마자 돌나물을 캐왔다. 돌나물을 캤으면 식초물에 깨끗이 헹궈 양념 없이 맛을 보아야 인지상정. 다른 나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돌나물만의 싱그러운 맛과 향을 느껴줘야 한다. 나물이라기보다 '풀', 그러니까 정말 맛있는 '풀', 정말 신선한 '풀'을 먹는 기분. 얇은 이파리의 다른 나물들과 달리 옹골차게 수분이 차있어 아삭하게 씹는 맛까지 살아있다. 시원한 수분감과 신선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꽉 찬 봄, 초여름의 맛. 


오이 넣고 새콤달콤하게 돌나물 물김치로, 무침으로, 샐러드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돌나물. 올해의 돌나물 밥상 첫 메뉴는 돌나물 비빔밥으로 정했다. 따끈한 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 잘 씻은 돌나물 듬뿍, 참기름 도로록. 그리고 고소한 반숙 프라이를 턱! 노른자를 톡 터트려 쓱쓱 비벼서 한 입에 왕. 초장에 비벼먹기도 하지만 나의 픽은 늘 고추장. 묵직한 고추장의 짜고 매콤한 맛에도, 계란과 참기름의 꼬순내에도, 절대 지지 않는 돌나물의 향과 맛. 


역시 신선함을 이길 수 있는 맛은 없다. 아니, 이건 신선함 그 이상의 싱그러움. 그래, 싱그러움이라는 단어가 나물이 되면 분명 그건 돌나물일 것이다.






4월은 힘든 한 달이었다.

자주 치는 파도에, 오는 셔틀콕을 기대하는 마음에.

하지만 힘든 한 달을 보내며 파도를 맞이하는 법을 조금 더 배울 수 있었고

셔틀콕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고

밭이 주는 싱그러움으로 배를 채웠다.


그거면 됐다.

4월 한 달도 3월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잘 살아남은 것 같다. 아니 잘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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