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혜 Oct 30. 2022

우리는 왜 사과를 못할까?

나는 대체로 평화롭게 산다. 제주의 시골 마을의 골목 안쪽에 있는 작고 오래된 집에 산다. 제주의 오래된 전통 마을들이 다 그렇듯이 길이 꼬불꼬불하고, 집들의 경계는 낮은 돌담으로 되어 있고, 대문은 없다. 그리고 막다른 길이어서 들어왔다가 나가려면 후진만 가능하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평화를 깨는 것은 다 “허”씨들이다. 골목 안에 있는 카페를 찾는 “허”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가진 흰색 렌터카들이 “막다른 길”이라는 표시판을 안 보거나 안 믿고,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지를 못해서 애를 먹고는 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서 차를 돌려 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운전미숙으로 전진 후진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의 소중한 잔디 마당에 파고, 나무처럼 자란 로즈마리를 부러뜨리고, 들어오지 말라고 세워둔 것들을 다 부순다.

하루는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해의 기운을 느끼면서 가부좌를 틀고 평화로운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카페가 열기도 전인데 허씨가 나타났다. 입구를 막아놓은 의자를 치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 잔디 마당을 파내고 있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울분이 폭발하면서 ‘잔디 살인마’라는 표현이 떠오름과 동시에 가부좌에서 벌떡 일어나서 맨발로 밖으로 나가서는 야!!!라고 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허씨 차량은 열려 있던 창문을 재빨리 올리고는 냅다 뺐다.  

다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려 하는데, 상상 속에서 한 장면이 또렷이 보았다. 내가 못으로 그 차와 더불어 그 옆에 있는 모든 허씨 차를 쫙쫙 긁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정신을 곧 차렸지만, 그 순간은, 바로 그렇게 복수를 해야겠다 마음이 먹어졌다. 씩 하고 삐뚤어진 미소까지 띄었던 거 같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이 억울함이 쌓이면 누구나 폭력적이게 변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첫 몇 해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도망가는 차 뒤에서 소리를 쳐보기도 하고, 허씨 차량을 파괴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이게 한 두 번이지. 아니 한 두해지. 벌써 10년째다! 10년 동안 어림잡아서 계산을 해보자면, 하루 5대 x 200일 x 10년 = 10000대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서 내 사랑하는 잔디를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사과한 사람이 한 7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 기물파손에 대하여 항의했을 때, 창문을 내리거나 차에서 내려서 사과한 사람은 3명 있었다. (차에서 내리셔서 미안하다고 하신 단 한 명의 신사분,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기물파손에 대한 보상을 한 사람은 0명이다. 0.001%의 사람들이 사과를 했고, 99.999%의 사람들이 내뺐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이 정도 된다면, 단순히 렌터카 운전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사과를 안 하고 도망가는 것은 보편적인 휴먼 에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도 그럴까? 
아마도. 
데이터에 의거하면, 확실히

왜 그럴까? 우리가 도망을 간다는 것은 불안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행동, 그러니까 뭔가를 잘못하면 그것을 덮고 싶은 마음은 자동적으로 먼저 일어나는 마음이 아닐까? 



몇 년 전, 내가 제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숲인 선흘 곶자왈을 산책 갔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작은 습지 주변이었는데, 플라워샵에서나 볼 수 있는 꽃다발들이 오아시스와 철사로 나무에 묶여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감히. 생태계의 보물인 제주 습지에서!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에서! 그래서 이 광경을 찍은 사진 몇 장과 짤막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잤다. 그리고 그다음 날 페이스북에 들어갔다는데, 글쎄, 이 포스팅이 밤 사이에 100회가 넘게 공유가 되었고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일은 제주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집단지성과 인터넷 검색의 힘으로 누가 그랬는지를 찾아 폭로가 이미 되어 있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플라워숍에서 연 꽃 파티였다. 제주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그 플라워샵의 블로그에 들어가 꽃 파티 사진들을 캡처해서 나의 담벼락과 자신들의 담벼락에 올렸다. 10명 정도의 여성들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꽃으로 장식된 테이블 위에 각종 과일과 와인을 놓고, 촛불을 피우고, 꽃장식이 된 숲에서 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제주 사람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것은 그들이 제주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곶자왈을 “우리만의 비밀 숲”이라고 부르면서 주기적으로 파티를 했다는 것과,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벚꽃을 “조금” 꺽어서 장식했다고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숲에 실수로 꽃을 놔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예뻐서 좋아할 것 같아서 일부러 두었다는 말도 블로그에 쓰여 있었는데, 이 말이 제주민들을 무척 화나게 하였다. 더군다나 숲에서 초를 키는 것은 위험하고, 불법이다.

사람들은 흥분을 했고, 그 샵의 SNS에 욕 댓글이 쏟아졌다. 샵은 부랴부랴 계정을 닫았지만, 사람들이 전화를 걸고 문자를 걸어서 욕을 계속했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사장님이 도와달라고 나에게 SOS를 보냈기 때문에 안다. 나도 화가 난 상태이었지만, 사람들의 분노가 모아져서 활활 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니 무서웠다. 사람들이 제주 자연을 함부로 안 하기를 너무나 바라지만, 한 사람이 마녀 사장의 희생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사과문을 올리라고 조언을 했고, 그녀는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그런데, 이 사과문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받았다. “이 일로 피해를 보신 분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제주의 숲을 “자신의 비밀의 숲”인 것처럼 홍보하고 자연을 함부로 대함으로서 제주민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개인 대 개인의 일인 것처럼 사과문을 올려서 곶자왈이 가진 제주의 상징적인 중요성과, 이 일이 일으킨 상징적인 피해와, 외지인-제주민으로 대립되는 역사적인 침범의 기억이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를 전혀 이해 못 한 것이었다. 


즉, 왜 사람들이 화를 내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의 사과문은 사람들을 더 화를 나게 했다. 사과문을 올려도 사람들의 화가 가라앉지 않자, 다시 사과문을 올리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와서 직접 꽃들을 수거하고 마을의 리더들을 만나서 직접 사과를 하고,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무마시키기 전까지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일이 왜 이렇게 커졌을까? 일단 플라워숍 주인과, 화가 난 제주민들 사이에 무엇을 사과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제주 자연이 너무나 함부로 파헤쳐지는 것을 무력감을 가지고 지켜봤던 제주도 사람들을 자극한 일이었고, 여기에서 피해를 본 것은 제주 사람이나 숲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였다. 그분들이 건드린 것이 큰 거였는데, 무엇을 건드리고, 무엇을 화나게 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사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처음에는 이 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제주의 자연을 함부로 자기 것인 것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라워샵의 사장님의 두려움이 느껴져서 겁이 났다. 사람들의 분노가 모여 불길이 훨훨 타고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놀랍고 무서웠다.

이런 일은 흔히 있다. 사과를 안 해서 화를 내서 사과를 했더니, 사과문의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꼬집어 훨씬 더 화를 낸다. 이것은 사과를 받기 전과 사과를 받은 후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잘못을 하면, 피해를 입힌 사람의 고통을 이해를 하든말든 미안하다고 빨리 말하라고 악수하라는 등 밀침을 당하고는 한다. 미안할 일이 살면서 많은데, 그럴 때 사과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 연습을 제대로 한 적이 없고, 이걸 잘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렇다 보니, 정말 사과를 제대로 해야만 할 때, 대충 넘기거나 사과의 때를 놓치고, 버벅거리고, 그 버벅거림으로 더 큰 욕을 입고는 한다.

진심으로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어렵고, 그것이 사과일 경우에는 더 어려우며, 욕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 이것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과는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사에서 꼭 필요한 회복의 메커니즘으로, 정성을 들일 만한 귀한 일이다.

1995년에 라디오 토크쇼를 운영하는 미국의 상원의원 D’Amato이 그 당시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끌었던 O.J Simple 재판의 재판장인 일본계 미국인인 Ito 재판장을 비난하며 가짜 일본어 악센트로 조롱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비판이 커지자 D’Amato는 언론 발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사과문을 냈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의 의도는 재판을 길게 질질 끌고 있는 재판장의 거만한 태도를 희화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이 사과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며, 그의 동료, 시민, 방송인, 아시아계 미국인 그룹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다음날 그는 국회에 가시 다시 쓴 사과문을 직접 읽었다.

“이탈리안계 미국인으로서, 저는 인종적 차별에 특히 예민할 책임이 있습니다. Ito 재판장에 대한 저의 말이 부적절했음을 완전히 인정합니다. 제가 한 말은 온전히 잘못된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제가 한 것은 실패한 유머였습니다. 제가 한 말로 상처를 준 재판장 Ito와 다른 분들에게 정말 잘 못 했습니다. 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보냅니다.”





참고 문헌

Battistella E, Sorry About That: The Language of Public Apology (한국판 제목: 공개 사과의 기술),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이전 06화 권력자는 왜 사과를 못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