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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Oct 23. 2022

권력자는 왜 사과를 못할까?

독일의 사과, 일본의 사과, SPC 회장의 사과

공감에 대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바로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연구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사과를 잘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로 따지면 사과는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팅에  늦은 CEO는 사과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지만, 서열이 낮은 직원은 아마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 또 할 것이다. 권력  사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이 사과를 안 하는 것은 힘의 관계에 도전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며, 이것은 대놓고 하는, 또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의 처벌로 이어질 수가 있다.

언젠가 대학원생들이 발표를 하는 심포지엄에 간 적이 있었는데, 발표를 한 학생이 좀 버벅거렸다. 그랬더니, 토론시간에 교수가 크게 화를 냈는데, 그 수위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으며, 그 학생이 낭비한 것은 30분 x 30명 = 900분이라고 했다. 


이 대화는 여자 대학원 학생과 여자 교수 사이에서의 일이었는데, 그 학생이 몹시 당황하며 900분어치의 사과를 하던 거와 그 900분에 나의 30분까지 포함시킨 것이 매우 불쾌해서 오래 기억이 남았다.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시간이 타인의 시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권력의 상하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체나 집단이 크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권력의 사다리에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대표 격으로 무거운 사과를 하고 무겁게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럴 때의 사과는 개인 대 개인의  사과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공개 사과의 형식을 띠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작은 일들은 넘어가지만 (그래서 사과를 연습할 기회도 없지만) 그 집단이 책임을 질 일 있을 때는 대표 격으로 무겁게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역사적 공개 사과의 좋은 예로 자주 회자가 되는  장면이 있다. 1970년 겨울, 독일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유대인 묘지의 전쟁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헌화하던 중, 독일의 과거를 반성하며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다가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은 진정성 어린 대표의 사과로 자주 회자된다.

그는 직접적으로 유태인을 살해한  사람도 아니고, 과거 나치 독일과 동일한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았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대표하여  나치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있다. 대표성을 가진 사람은 국가와 양심을 대표하여 사과하는 것이다. 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독일의 총리들은 연이어,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과를 했다. 1977년 헬무트 슈미트 총리, 1989년과  1995년에는 헬무트 총리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임 10년간 끊임없이 반성과 사과를  하였다.

2008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며 사죄했고, 2013년에는 2차 대전 당시 다하우 나치 수용소를 찾아가서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 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라고 사죄했다.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년 연설에서는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건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했다. 그리고 2021년  퇴임을 앞두고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 과거를 다시 한번 사죄했다.

독일은 말로 사과를 하는 것을  넘어 배상을 하고 피해자와 후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학교에서 홀로코스트를 가르친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제대된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일본은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사과를 받는 한국은 사과를 받았다고 느끼지를  않는다. 그 차이가 뭘까?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궁중 만찬회에서 히로히토 일왕은 이렇게 말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다.”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만찬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를 통해 한일 간의 과거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을 금할 수 없다.”라고 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한일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 선언문은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지칭해 사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했고,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하면서 일본이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한국의 위안부는 일본과 아무 상관없다고 발뺌해오다가  1992년에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1965년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배상이 끝냈다 주장했으며, 2007년 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는 위안부에 대하여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었다고 했다.

<권력자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라는 제목의 유튜브에서 언론 비평가 정준희 교수는 일본의 사과문에서 쓰인 단어의 뜻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유감”은 감정이 남는다는 뜻인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이것이 나의 불쾌감인지 너의 불쾌감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통념”은 고통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뜻으로 후회감이 들어있는 표현이기는 하고 유감보다는 진전된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 책임의 주최를 정확히 밝히는 표현이 아니다.

독일의 사과와 일본의 (비)사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일관성, 진심, 사과의 실천, 이 세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일본의 과거사 사과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1)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일관성 결여 (2) 사과에 대한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일본국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교과서 내용으로 진심으로 보이지 않으며 (3) 책임 있는 실천이 없는 사과와 실천 사이의 비일관성이라고 본다. (쿨하게 사과하라, 217-218)

요즘  뉴스를 보면, 연일 대기업의 총수나 이 나라의 정치인들과 대통령까지 대표 격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사과를 안 하거나,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거나, 사과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못을 한 주체가  빠졌거나, 사과가 아니라 유감을 표현한다거나, “이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식으로  수식을 하거나 하는 일들이 연이어 있다.

언론학자인 정준희 교수는 사과를 미안, 사과, 사죄를 나누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1. 미안은 내 마음이 불편해. 내가 뭔가 잘 못한 거 같아서 내 마음이 불편하고 당신 마음도 불편한 거 같으니까 우리 화해를 해서 안정을 이루자는 제스처
2. 사과는 명백한 잘못이 존재하고 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것
3. 사죄는 그 잘못의 수준이 심각해서 그 잘못을 교정하지 않으면 나한테 처벌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는 경우이다.

사과라는 것은 행해진 잘못이 나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정과 상대방에게 초래한 고통과 피해에 대한 공감을 한 상태에서 적절한 언어를 써서 또는  적절한 행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되돌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한자로 볼 때 사과의 “사”라는 감사의 “사”와  같으며, 사례할 사, 즉 보답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감사도 사과도 보답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어에 사과의 종류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있고, 사과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음에도, 왜 이렇게  일상생활에서의 필요한 미안함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해야 하는 진심을 담은 사과도 드문지를 묻는다. 그리고 한 가지 답으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위계가 강하고 사과는 언제나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점을 지목한다. 요즘 국민들이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사과들은 최고 권력자들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과에 구멍이 참  많다.

제대로 사과를 하려면 “내가”라는 주어가 먼저 나오고, 잘못의 내용이 언급되고,  손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할 것인지가 결합이 되었을 때, 가장 좋은 사과, 사과문의 행태가 된다고 정준희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대국민 사과문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1. 주어가 없다.
잘못한 사람이나 잘못한 행동이 언급되지 않고, 피해를 받은 사실이나 상황만 표현한다.
예시: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께 불편함과 피로감을 끼쳐 죄송하다" - 김건희


2. 조건적이다.  
조건부 사과는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피해를 증명할 책임을 옮긴다.
예시: “제가 만약 상처를 입혔다면 사과합니다.” 또는 “불쾌했다면 사과합니다.”


3. 자기를 방어한다.
자기 방어의 방법은 매우 다양한데, 대의를 위해서 했다거나 (이걸 연구자들은 “초월 전략”이라고 부른다) 나도 피해자라는 방어가 흔하게 쓰인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 박근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 박근혜

 
4. 수동태를 쓴다.
나라는  주어를 없애고.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말하거나 상대방이 입은 피해에 대한 언급만 하는 경우이다. 최근 빵 공장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 이틀 뒤에 발표한 첫 사과문이 그러했다.
“저희 회사의 생산 현장에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매우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SPC 허영인 회장, (2022년 10월 15일  첫 사과문)

SPC 불매운동이 커질 기미가 있는 가운데, SPC 회장은 사고 6일 만에 두 번째  사과문을 직접 읽었고, 머리를 여러 번 조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과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를 들자면, 유가족들에게 직접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대국민 발표를 통해서 사과한 것과, 피해가  있었음은 인정하지만,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와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말이 있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지는 회사의 대표가 유가족들은 “예우”해 드리기로 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는 하나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직원들을 잘 못 가르치지 못해서 라는 이유를 든 것은 결국 내 탓이 아니라 직원 탓이라고 말하는, 자기 방어적인 사과문의 형태이다.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초래한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표현하는 것인데, 부분적인 사과와 자기 방어적인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으로 관점이 움직인 것이 아니고, 그런 사과는 회복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하지 않는다.



<자기 방어의 전략>

다음은 <공개 사과의 기술>에 인용된 William Benoit라는 학자의 자기 방어의 전략들 가운데, 우리가 사과와 사과문에서 흔히 보는 자기 방어의 요소들이다.

부인
(1) 그 일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부인
(2)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림

책임의 회피
(1) 누군가가 나를 도발했다. 즉, ‘제가 시작했어.’
(2) 나도 피해자다
(2) 몰랐다.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통제권 아래의 일이 아니다. 또는 나는 그 일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3) 좋은 의도였고, 좋은 의도가 안 좋은 결과를 만든 것은 사고였다.

잘못의 축소
(1)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 나라는 사람이 그랬을 리가 없다.
(2)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못 보는 그것이 뭔지는 말할 수 없다.
(3)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해서 한 것이다.
(4) 사과한 사람을 공격한다. 진짜 잘못은 네가 한 것이다.





참고문헌: 


그레고리 베이티슨,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2006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신경과학에서 경영학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신뢰 커뮤니케이션>, 어크로스, 2011


정준희, “권력자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 <정준희의 해시태그>, 2022년 10월 17일
https://www.youtube.com/watch?v=fShnlv3V4ro


이충원,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발언, 사과 일지”,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00809188600073
Battistella E, Sorry About That: The Language of Public Apology (한국판 제목: 공개 사과의 기술),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허영인 SPC 회장, 평택 공장 사고 대국민 사과문 (전문)”, <Newsis>, 2022년 10월 21일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21021_000205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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