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엠 쏘리를 제일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하다. 중학교 영어 수업 이외에 영어를 배운 적는 없는 채로 청소년기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었는데,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익스큐즈미, 아엠 쏘리, 땡큐를 반복해서 말하길래 영어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미국 친구가 물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ATM 기계에서 돈을 뺄 때도 아임쏘리와 땡큐를 한다며?”라며 깔깔거리고 웃는데, 그게 왜 웃기지?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울 게 없는 것이 캐나다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와 살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이 나보고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방문 온 아버지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게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와 서울 지하철 앞에 있는 노점상에서 붕어빵을 사러 들어갔는데, 아버지는 주문을 이렇게 하셨다.
“실례합니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붕어빵을 좀 사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제가 5천 원짜리 밖에 없는데 2천 원어치만 사도될까요? 감사합니다. 아, 뜨겁군요. 뜨겁다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스름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맛있는 붕어빵을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붕어빵 한 봉지를 사면서 아엠 쏘리 2회, 익스큐즈미 2회, 플리즈 3회, 땡큐 4회 한 샘이다. 아버지는 편의점에서도, 버스를 탈 때도, 식당에서도 이런 식이셔서 70대 노인인 아버지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말이 길어지자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Emily Keeler라는 캐나다 저자는 미안하다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다.
캐나다 사람들이 얼마나 사과를 많이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어요. 식사하러 식당에 가서 케첩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때 웨이터 - 즉 식당에서 당신이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 그 사람의 직업인 사람 – 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Oh, sorry! Um, sorry, hi! Is it okay if … could I have some ketchup, please? Oh, thanks so much, sorry!"
“오 쏘리, 쏘리. 혹시.. 제가 케첩을 좀...받아도 될까요 플리즈? 매우 고맙습니다. 쏘리”
대부분의 캐나다 주에는 「사과법 Apology Act」이란 법이 있다. 이 법은 법정에서 “아엠 쏘리”라고 했다고 해서, 이 말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증언으로 채택되지 않는 법이다. 이 법이 없었다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다.
미국에도 「사과법」이 있고 사과법이 가장 필요한 영역은 의료소송 영역이다. 대부분의 미국 의사는 적어도 한 번은 의료사고 소송에 휘말린다고 하며 대부분의 의사들을 고소를 당하는 것을 염려한다고 한다. 의료사고 소송은 매우 비싸고 오래 걸리며 소송의 당사자들을 모두를 괴롭게 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만나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들도 환자가 자살을 해서 가족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들이 꽤 있어서 따로 소송 비용을 위한 보험을 들어놓는다.
미국은 1986년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에서 최초로 사과법(apology law)을 도입했다. 이 법의 의도는 의사들로 하여금 사과를 격려하고 그래서 의료사고 소송으로 일어나는 개인적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사과법은 의료사고로 고소를 할 경우, 의사가 사과의 말을 했다고 해서 이 말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하는 법이다. 얼핏 생각하면, 의사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을 하면 고소가 늘어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의사가 소송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실수에 대한 사과가 없고 뉘우침이 없는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엄청난 돈이 걸린 의료소송은 의사 개인한테도, 병원 입장에서도,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다 보니, 의과대학에서 전문 연기자를 초대해서 상황극을 통해 환자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것을 훈련한다는 것을 그런 공감훈련 연기자가 쓴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는 곳이고 의료사고는 빈번하며 의료 소송은 줄지 않는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이 법이 소송의 수나 소송액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를 못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사과법」은 대부분인 “부분적인” 사과법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을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법에서 정의하는 사과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유감과 안타까움과 공감의 표현
(2)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뉘우침의 표현
사과는 이렇게 두 가지 뜻을 내포할 수 있는데, ‘부분적인 사과법’은 (1) 번 유형의 사과만을 증거 채택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이와 달리 ’ 포괄적인 사과법’은 (1)과 (2)를 둘 다 포괄한다.
포괄적인 사과법이 있는 곳이 애리조나주인데, 애리조나 사과법은 법정 증거로 채택이 될 수 없는, 그래서 보호하는 사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과, 책임, 책무, 공감, 위로, 애도, 공감, 자비심을 표현하는 모든 말, 제스처, 및 행동”
부분적인 사과법과 다른 점이 “책임”과 법적인 “책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유감 표시만 하고 자신의 잘못의 인정까지 포함하는 사과가 아닌 경우에는 사과가 상대방의 화를 낮추거나 용서를 이끌어 내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부분적 사과가 사과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도 사람들을 더 화가 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분적인 사과법이 있는 주에서, 사과법으로 인하여 의료사고 소송이 줄어드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과법과 별개로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이 여러 병원에서 실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병원과 의사가 잘못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인데,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병원에서는 소송이 대거 줄었다. 2001년에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미시간 대학 병원의 환자 측 소송 건의 수는 2001년 262껀에서 2007년 83껀으로 줄었으며 평균 쓰는 비용은 61퍼센트 감소했다. 이는 획기적인 감소이다. (쿨하게 사과하라, 146)
캐나다의 사과법은 “사과”의 정의를 포괄을 넘어 좀 애매하게 정의한다.
사과: 그 말이나 행동과 연결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 또는 암시의 여부와 상관이 없이, 뉘우침이나 위로를 나타내는 공감이나 후회의 표현, 미안하다는 말 또는 미안함을 표현하는 다른 말 또는 행동
즉, 모든 아엠 쏘리를 보호한다.
한국은 어떨까? 사람들은 보통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사과를 하면 안 된다고 서로에게 가르친다.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운전자 선배들에게 배운 것도 그런 거였다. 접촉사고가 있을 때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된다고. 요즘에야 접촉사고가 나도 보험회사끼리 해결하기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이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이 믿음과 조언은 떠돌아다닌다. 우리가 “사과”를 어떻게 정의 내리길래, 사과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한국형 사과법을 환자 안전법 개정안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적이 있다. 2017년 11월 29일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6살 김재윤 어린이가 골수검사 중에 수면 진정제를 과다하게 맞고 응급처치도 못 받은 채 하루 만에 사망했다. 경찰 조사 중, 당시 의료진과 병원 측이 유가족의 환자안전사고 보고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 파악이 되었다.
유가족 측과 환자단체는 중대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보고를 의무화한 내용을 포함한 환자안전법 개정안 (일명 재윤이 법)과 의료진과 병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고, 이 개정법은 2018년 2월에 발의가 되었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발과 국회에서의 정치권의 갈등으로 통과를 못하고 난항을 겪다가, 2019년에 간신히 국회를 통과하였고, 2021년 1월부터 시행 중이다. 단 사과법 내용은 빠져있다.
이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면, 7일 이내에 의료진이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에게 사고 내용 및 경위 등을 설명해야 한다는 항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의료계가 반발하는 부분이다. 의료계의 설명은 이렇다.
의료사고의 원인은 규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개정안의 허점을 이용하여 의료소송이 남발할 수 있고, 의료인과 의료기관 규제만을 편파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행위를 하기 전에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설명의무가 있는데 의료사고 이후 또 설명을 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캐나다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지병인 심장병이 있으셨고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입원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괜찮아지고 계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 과정에서 의문이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남은 가족들은 너무 슬퍼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는데, 우아하고 기품 있게 꾸며진 응접실 같은 방에서 의사를 만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런 어려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었던 것 같다.
담당 의사는 정중하면서도 애도하는 표정으로, "I'm very sorry" 로 시작하여, 아버지가 병원에 오실 때 어떤 상태였고,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유전이 가능한 병이라며 자녀들의 건강에 대하여 물었다. 의사를 만나고 나서 의료사고 가능성을 파해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의사의 정중한 태도와 설명이 아니었으면, 우리의 비통한 마음이 절망과 분노로 향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분노하는 대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을 감사한다.
참고 문헌
강현구, “환자안전사고 7일 내 보고 의료계 반발”, <의학뉴스>, 2019년 10월 25일
http://www.newsmp.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405
Apology Act, SBC 2006, Chapter 19, British Columbia, Canada
https://www.bclaws.gov.bc.ca/civix/document/id/complete/statreg/00_06019_01
Keeler E, “Sorry — Can We Talk about Why Canadians Apologize So Much?” CBC News, Jan 20 2017
https://www.cbc.ca/2017/sorry-can-we-talk-about-why-canadians-apologize-so-much-1.3939997
Nina E. Ross and William J. Newman, “The Role of Apology Laws in Medical Malpractice,”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Psychiatry and the Law, May 2021, JAAPL.200107-20
https://jaapl.org/content/early/2021/05/19/JAAPL.200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