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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Oct 19. 2022

착한 사람은 정말 꼴찌가 되는가?

미국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미술치료사로 일하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해가 가지 않는 두 자기 일이 반복이 되었다. 하나는 나무를 그려서 보여주면서 “나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을 알파벳 4글자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 알파벳이 뭔지는 몰라서 알려줄 수가 없었다. 심리학계에서 쓰는 성격 기질 검사 중 과학적이라고 인정받는 검사로 Big 5 기질검사 (알파벳 앞 자를 따서 OCEAN 검사라고도 부른다)가 있다. MBTI는 인정받는 검사가 아니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 검사는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5가지 기질의 스펙트럼과, 기질이 표출되는 여러 개의 하위 요인들로 사람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으로 이런 사람은 이렇다고 표현하지 않고, 어떤 기질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발현되는 지를 살핀다.

OCEAN 기질검사가 보는 5가지의 기질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 개방성이 높으면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성실성 Consciousness  - 성실성이 높을수록 잘 정돈하고 계획적이고 조심성이 높다.
외향성 Extraversion - 외향성이 높으면 사교적이다.
우호성 Agreeableness – 우호성이 높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협조적이고 남을 잘 믿는다.
신경성 Neurotism - 신경성이 높을수록 불안을 잘 느끼고 스트레스가 높다.

이 중에서 우호성이 높으면 친절하고 공감력이 높고, 사회적인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타인에게 베풀고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다.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은, 동시에 상대방도 역시 나를 잘 이해해 줄 것이라는, 또는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호성이 높은 사람들은 내가 상대방에게 잘해주고자 하는 마음과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연결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호성이 높은 사람은 yes 도 잘하고 sorry 도 잘한다.

그런데, 당신이 우호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기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할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무게를 떠받고 있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당신을 ‘봉’이라고 여긴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도움을 주다가 도움을 요청할 때 상대방이 거절하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정말 심각한 경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맞추고 기쁘게 하려 노력하다가 결과적으로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는지를 까먹는 경우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 또는 집단이 원하는 것에 yes! 하면서 살다가 보니,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결정이 어렵고, 그리고, 잘하려고 하는 건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한 우호성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A: 뭐 먹으러 갈까?
B: 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A: 어디 가서 뭐 할까?
B: 너 하고 싶은 거 하자.
A: 왜 너는 하고 싶은 게 없어? 왜 먹고 싶은 게 없어? 왜 내가 맨달 결정해야 해?
B.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한 실험에서 사람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보상을 두고 경쟁을 하는 게임을 하게 했다. 사람들은, 예상대로, 이기적인 플레이어들을 싫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호적이고 관대한 플레이어들도 싫어했고, 게임에서 밀어내고 싶어 했다. 왜 그럴까?

연구자들의 의견은 이렇다. 지나치게 우호적인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보이게 했다. 그리고 룰을 깼다. 양보를 하거나 경쟁을 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의 룰을 어겨서 혼란을 주었고, 상상해 보건대, 아마 게임을 재미없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지나치게 나이스하게 구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싫어하거나 나쁘게 대하게 할 수 있다고 연구자는 말한다. (이 결론은 좀 충격이다).

무엇을 제안하거나 부탁할 때, 말이 끝나기도 전에 yes를 하는 우호성 상위 1%인 친구 영미에게 이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더니, 속상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한테 잘하려고 하는 게 뭐가 나빠서 싫어한데!” 실제로 그녀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에게 무시를 당했던 경험이 많다. 어쩌면 그게 그녀가 너무 우호적이어서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미진의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화를 냈고, 나는 마음이 씁쓸했다. “아 이 더러운 세상!”

또 다른 연구에서는 (자 이게 미국 연구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자존감이 높은 것, 자신감이 충만한 것이 성공에 매우 중요한 문화이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모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돈을 덜 번다는 연구가 있다. 


너무 우호적인 사람들은 리더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호락호락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일을 대신해주다가 정작 자신의 성과로 만들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되고, 이런 것들은 나중에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영은 반복되는 손님들의 무례한 요구에 시달린다. 이 호텔에서 아영은 컨퍼런스 담당 팀장이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컨퍼런스 시설을 갖춘 호텔이다 보니, 매번 같은 회사의 같은 담당 직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무례함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밤늦은 카톡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례한 고객님들보다 무례함을 받아주는 신입사원인 강산이다. 그는 친절하고 우호적인 사람으로 타인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느라, 새벽에 달려와서 손님들의 요청을 들어주기도 하고, 호텔에서 책임질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요청들, 예를 들어, 선물 줄 특산품을 사 온 다거나 하는 것도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모든 요구사항들이 담당자도 아닌 강산에게 몰린다. 그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고객들의 요구에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고객들도 강산에 대한 칭찬이 넘친다. 아영도 처음에는 친절하고 따뜻한 강산이 진심으로 좋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고객 평가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착하고 애쓰는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생기니 강산을 점점 피하거나 무시하게 되었다.

얼핏 보면, 강산이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왔고, 그것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거나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영을 포함한 호텔의 직원들이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저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그가 지나치게 친절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연구를 인용을 하면서 <The Book of No>라는 책에서 사회심리학자인 Susan Newman는 지나치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나쁘게 보이게 만들었고, 게임의 룰을 어겼다고 한다.

그러면 강산은 어땠을까? 그는 괜찮았을까? 그도 괜찮지 않았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진심으로 기뻤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어떤 요구에 응하지 못하면 저번에는 해줬는데 이번에는 왜 안 해주냐며 항의를 했다. 그의 동료들이 점점 그를 차갑게 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특별히 더 괴로웠다. 그는 어떻게 했었어야 했는가? 좀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답일까?


사회심리학자 Adam Grant는 직장과 같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사람들이 Taker, Giver, 또는 Matcher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Giver (주는 사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보다 남에게 득이 더 많을 때도 남을 돕는다. 받기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먼저 집중한다.

Taker (가져가는 사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에게 득이 더 많을 경우에만 남을 돕는다. 주는 것보다 가져가는 것이 많아야 하며, 자신의 니즈를 타인의 니즈보다 언제나 먼저 생각한다.

Matcher (부합하는 사람) 이들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균형을 이루려 노력한다. 그들은 이 교환이 공정한지에 집중한다. 그렇다 보니, Taker 에게는 맞서 싸우고 Giver 에게는 같이 협력한다.

Grant의 연구에서도 이기적인 Taker들이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빨리 성공을 하며, 베푸는 Giver 들은 타인을 돌보느라 번아웃되거나 억울해지기가 쉽다고 한다. Taker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일을 주로 하고 이를 자신의 성과로 만들어 간다. 반면 Giver들은 타인들을 돕느라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호의적인 성격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Giver에게 중요한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대신 거만하고 이기적인 Taker의 성격을 실력하고 연결하는 편견이 있어서 그들이 더 빨리 리더의 위치에 올라간다. 여기까지 보면, 착한 사람이 성공을 못하는 것이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왜냐면 Taker들이 성공을 하고 Giver들이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장기적으로 보자면, 가장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Giver 인 것이 맞기는 하지만 가장 성공한 사람들 역시 Giver라는 놀라운 사실! Taker는 단기적으로 성공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들은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누르고, 조정해온 것들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뒤통수를 맞는다.

그리고 Taker들은 협력하는 대신 적을 만든다. 그들의 적은 바로 다른 Taker 들과 Matcher 들이다. 하지만 Giver들은 다른 Giver들과 Matcher 들과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Giver들이 베풀었던 것들이, 직접적으로 보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아도, 신뢰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신뢰는 무엇보다 장기간으로 갈 때 빛을 발하기 때문에 신뢰받고 협력을 이끄는 좋은 리더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성공할 수도, 성공하지 못하고 번아웃이 돼서 나가떨어질 수 있는 것이 둘 다 Giver의 특징인 것이다.

그렇다면 강산은 어떻게 했었어야 했을까? 그는 yes와 더불어 경계설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고, 모든 이들에게 yes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며, 누구를 도울 때, 상대방이 원하고 필요한 것만을 하는 게 아니라, 나도 기쁘고 나도 성장하게 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돕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Grant는 말한다.

결국 Giver들이 자신의 좋은 성향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 수도 있고, 이용당하고 억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앞서 언급한 게임에 대한 연구를 다시 보면, 이 게임이 어떤 게임에 따라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피니트 게임>이란 책에서 밀레니얼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사이먼 시넥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게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어떤 게임은 체스나 축구와 같이, 규칙, 결과, 그리고 승자-패자가 정해져 있는 게임으로 이런 것들을 ‘유한 게임(finite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규칙도, 정해진 결과도, 결승지점도 정확하게 없고, 승자와 패자도 정해져 있지 않는 무한 게임(infinite game)이 많다. 무한 게임의 목표는 단 하나, 계속 플레이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유한 게임도 있고 무한 게임도 있는데, 어쩌면 더 중요한 게임들이 무한 게임들이다. 우정이나 사랑, 결혼이 이런 것인데, 승자와 패자가 없고 게임을 이기고 끝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성장하고 지속하는 것만이 목표이다. 앞서 논한 연구에서 우호적인 플레이어들이 경쟁의 룰을 어겨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게임이 유한 게임이어서 그렇다. 만약 이것이 무한 게임이라면, 우호적인 플레이어들의 협력은 게임의 원칙과 룰을 바꿀 것이다.

그러니, 우호적인 당신, 억울해서 이기적이 되겠다고 결심하지 말자. 타고난 기질은 잘 안 바뀐다. 대신 길게 보자. 오래 버티자. 다른 Giver들과 연대하고 협력하자. 그리고 어떻게 Yes를 좀 더 현명하게 하고, 어떤 일에 No를 하고 어떤 일에 Yes를 할지 경계설정을 배우자.

<The Power of an Apology>라는 책에서 저자인 심리치료사 Beverly Engel는 사과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나이스하고 배려하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과한 사과의 역효과는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이 당신을 덜 존중할 수 있다. 타인의 리스펙트를 잃을 수 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과를 계속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낮춰 볼 수 있다. 당신을 나이스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또는 타인들이 당신을 무시하고 홀대하게 되기도 한다.

2. 미래의 사과에 임팩을 낮춘다.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처럼  사람들은 당신이 작은 일에 매번 미안하다고 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나중에 정말 사과를 해야 할 때, 그 말의 무게가 낮아진다.

3. 짜증을 유발한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계속 사과를 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특히, “미안한데,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야 해”라는 것과 같이 거절과 동시에 미안하다고 할 때,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 있다. 거절을 하면서 동시에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짜증이 난다고 한다.

4. 당신의 자존감을 낮출 수 있다.
자꾸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할 때 저절로 취하게 되는 바디 랭귀지가 있다. 어깨를 안으로 말린다. 고개를 숙이고, 눈치 보듯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이것은 자신 없는 사람들의 바디랭귀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몸짓과 말투를 장착함으로써 진짜로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러니, 오래 버티고, 다른 Giver들과 협력하자. 결국 베푼 것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돌아올 것이다.


참고 문헌:

애덤 그랜트, <기브 앤 테이크: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생각연구소, 2013


에릭 바커,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갤리온, 2018


사이먼 시넥, <인피니트 게임>, 세계사, 2022

  
Engel B, The Power of Apology: Healing Steps to Transform All Your Relationshipos, John Wiley & Sons, 2022


Cuddy, A. J. C., Fiske, S. T., & Glick, P. (2007). “The BIAS map: Behaviors from Intergroup Affect and Stereotyp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4), 631–648.
https://psycnet.apa.org/record/2007-05059-005

Newman S, The Book of No: 365 Ways to Say it and Mean it-and Stop People-Pleasing Forever, Turn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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