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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Oct 30. 2022

제대로 미안해하는 방법

사과는 어렵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방어의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자신을 일관된 사람으로 꾸민다. 자신을 일관되게 만드는 스토리의 주제어가 “착한 사람”인지 “정의로운 사람”인지 “이기는 사람인지” “봐주는 사람”인지 등에 따라,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의 의미를 이 프레임 안에 맞춘다. 안 들어가면 접어서라도, 구겨 서라도 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를 한다는 것은, 이로 인해 생기는 “나라는 사람”이라는 스토리에 생기는 균열을 감수하고 하는 행위여서, 불안하고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짓말은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자기 합리화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어서,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누가 “네가 그랬지!”하고 따지면, 순간 내면에서 방어막이 생기고, 창과 방패를 든 수비군이 나타나서 어떻게 스스로를 방어할지에 대한 긴급 대책 회의를 한다. 방어를 하느라 이야기를 비꼬기도 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상대방을 쑤시기도 하고, “제가 잘못한 거야”라며 엉뚱한 사람을 탓하기도 하며, 이러한 방어전략은 전술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손자병법 뺨친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반사적으로 나오는 자기 방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하지만!”이란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고, “내가 언제!”라는 뾰족한 말을 타일러서 삼키고, “네가 시작했잖아!”라고 삿대질하는 손가락을 다시 접어 넣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고 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사과를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랬을 리가 거의 없으니, 이제라고 달달 외우자.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갈 확률은 낮겠지만, 장담하건대, 사과가 필요한 상황은 평생 있을 것이다.

<먼저 사과의 Don’t>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은데, 그중에서 아주 흔한 경우를 예시로 들었다. 순차적인 리스트는 아니고, 그냥 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1. ‘미안해’와 ‘안 미안해’를 동시에 하지 않는다.

문장 구조: 미안해. 하지만 (sorry but)
예: 미안해, 하지만 다 너를 위해서 한 거야.

이런 말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고, 화나게 한다. 사과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인데, 사과에 자기 방어가 섞여있다면, 이것은  이중 구속(double-bind)라고 부르는 언어의 구조이다. 이중 구속이란 두 개 이상의 메시지가 충돌되며  제시되는 것으로, 사과의 경우 인정과 거부가 같이 들어있는 소통 방식이다. 한때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부모의 이중 구속적인 소통 방식을  자녀의 정신분열증을 일으킨다고 까지 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받는  사람을 답답하고 화가 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너 공부하지 마! 밥도 먹지 말고 그냥 다 떼려 쳐!”라고 했다고 치자. 그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일까 공부하라는 말일까? 이런 말은 자녀로 하여금 욱하게 한다. “나보고 어쩌라고!”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사과가 이중 구속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 사과로서는 효과가 없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런 사과를 정말 많이 본다.

2. 조건부 사과를 하지 않는다.

문장 구조: 만약... 했다면, 미안해 (if... I’m sorry)
예: 너가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이런 말은 상대방이 속 좁고, 옹졸한 사람이라는 지적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이 잘못했다는 온전한 인정이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사과를 받았는데도 기분이 더 나빠지고는 한다.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의 상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에 허우적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3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말해봐 이게 그렇게 큰일이야?”

법에는 죄를 증명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가까운 관계 안에서는 ‘죄’와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받은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대방의 상처에 대하여는 옳다/그르다 논할 것이 아니다.

최근에 본 아주 웃긴 유튜브가 있다. 유부남인 남자 변호사가 예비 신랑인 동료 변호사에게 전하는 결혼생활 꿀팀이다. 첫 번째가 “너희는 혼나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이다. 혼나려고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법정에서 싸우는 것처럼 이기려 하지 말고, 그냥 다 너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라는 과장법과 유머가 섞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댓글에서는 싸움이 일어났다. 기립박수를 치는 여성들과, 남자가 노예냐며 비판하는 남성들이 부딪쳤다. 웃다가 씁쓸해졌지만, 내용의 핵심은 가정은 재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가 모두 내가 잘 못했을 수도 있다는 유죄 추정의 원칙을 가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3. 잘못의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

예: “그래 내가 잘 못한 것은 알겠어. 하지만, 너도 잘못했잖아?”

사과는 균형을 맞추는 대화가 아니다. 지금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한 행동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력을 기본으로 필요하고, 자기 방어의 본능을 누를 정도의 자기 객관성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과는 회복을 위한 과정이지,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 아니다.

<사과의 Do>

어떤 사람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흔히 상처를 입힌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사과를 받고 싶은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상처받은 존엄성을 회복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그 말이나 행동 때문에 금이 간 관계를 회복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정의를 구연하고 싶기도 하다. 사과가 없으면 화가 나지만, 사과가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때는 더 화가 난다. 


사과를 하고 나면, 사과를 “제대로” 했는가로 판단기준이 넘어가고, 사과가 실패할 구멍은 많다. 사과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어떤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미안한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지만, 구체적인 보상과 방지계획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다음 리스트를 보고, 이번 사과는 어느 단계까지 필요한지를 가늠해보자.

1. 사과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사과를 할 때, 사과의 대상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경우들이 있다. 실제로 다치고 죽은 사람이 있는데,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는 식으로 대상을 모호하게 확대하거나, 고통을 받은 사람이 소리치고 있는데, “만약에 고통을 받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라는 식으로 조건부로 대상을 표현하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을 더 화가 나게 한다.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누굴까? 사과는 먼저 대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2.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모든 사과의 시작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는 많지만, 모든 사과에서 이 말은 필수이다.

3. 잘못을 말한다.

  
‘미안하다’는 내 감정이 안 좋다는 이야기며, 그것이 반듯이 잘못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상대방이 받은 피해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잘못이 무엇인가에 대한 양쪽 합의가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를 입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너도 잘못했고, 제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자신의 잘못만을 인정하는 자리이다. 더 큰 상황과 맥락은 사과가 받아들여지고 난 다음에야 기회가 열린다.

4. 책임진다.


분명한 피해가 있을 때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를 밝힌다. 어떻게 책임지고, 보상하고 방지할 것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지는 못하더라고 어떻게 닦을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금전적인 보상일 수도 있고. 무너진 명예에 대한 공식 사과문 발표일 수도 있다. 또는 전혀 다른 방식의 보상일 수도 있다. 다음 예를 한번 보자.

1974년 캐나다의 작은 도시인 엘마이라에서, 하룻밤 동안 22곳의 집이 밤 동안 무작위로 피해를 입었는데, 다음 날 십 대 총소년 두 명이 붙잡혔다. 관할 경찰과 담당 판사는 이들에게 법적 처벌 대신 피해를 입은 이웃들을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하라고 명했다. 어떤 이웃들은 청소년들이 와서 사과한 것 만으로 용서를 해주었다. 그 후 3개월 동안 청소년들은 현금 배상, 잔디 깎기, 부서진 펜스나 발코니 수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접을 배워 부서진 교회 십자기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피해 회복을 했다. 이 사건은 세계 최초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한 유명한 엘마이라 사건이다.

처벌을 강조하는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관여하지 않기에,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에서는 가해자의 처벌이 피해자의 회복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엘마이라 사건의 경우, 이웃들은 이 사건 이후에 이곳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으며, 청소년 중의 한 명은 훗날 회복적 정의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회복적 정의는 세계적인 운동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학교과 가정법원 등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가 되고 있다.

5. 방지 계획


이미 일어난 피해를 다시 되돌려놓거나, 그에 따른 보상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도 있지만, 미래에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즉, 엎어진 물을 닦았다면, 앞으로 어떻게 물을 엎지르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다.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는 단계이므로, 실천 가능해야 하고, 실천을 했는지 확인 가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조심을 하겠다거나 최선을 다했다는 두리뭉실한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5.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로 미안해한다.  

말만 아니라, 진짜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보고, 미안해한다.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은, 진짜 그 마음에서 나온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에, 미안하기 위해서는 나의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진심 어린 사과가 어렵다. 바로 이 점이 권력이 높은 사람이 사과를 못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사과해야 한다고 머리에서는 이해가 가는데, 마음이 안 움직인다면, 사과문을 글로 써서 소리 내어 읽어도 보자. ‘빈 의자’ 기법을 활용해도 좋다. 빈 의자에 상대방을 상상으로 앉혀놓고 사과의 말을 건네보고, 자리를 바꾸어 앉아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해본다.

그래도 계속 마음속으로 “나만 잘못한 거가 아니야” “또는 제가 더 나빴어” 또는 “상황 때문에 그런 건데” 등의 말이 떠오를 것인데, 이 모든 것들(상대방도 참여한 잘못, 운이 나빴던 상황 등등)을 안타깝게 보되, 그 안타까움 뒤에 숨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 사과는 연약하고 보호받고 싶고, 방어하고 싶은 내가 숨지 않고 앞으로 나와서, 방어하지 않는 두 손을 내미는 행위이다. 그 손을 잡을지 말아줄지 말지는 사과를 받은 상대방에게 달렸다.

6.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한다.

사과를 충분히 하기도 전에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래 너가 속상한 건 알겠는데, 내가 왜 그랬냐면....”라는 식으로 사과인 듯 사과가 아닌 듯 말하는 경우가 있다. 상처를 주는 것이 의도가 아니었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억울하거나 속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자기 방어나 변명으로 여겨져서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할 수 있다. “왜”에 대한 설명은 사과 이후에 회복의 단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는 한다. 사람들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아마도 마음이 진정이 된 다음에 왜 그랬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잘못을 하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것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도 동시에 배우기도 하기에, 사과는 어렵다. “unapology”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사과를 한 거 같은데 사실은 사과를 안 하는 기술이 예술적 경지에 도달했다고 호주의 심리학자 Marie Rowland는 말한다. 예를 들어, “너를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라는 말은 “너가 그렇게 쉽게 기분 나빠하는 예민한 사람인 줄 몰랐어”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과는 상처를 입은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한 자기를 옳은 사람, 파워풀한 사람의 자리에서 내려올 필요가 없게 만든다. 자신을 낮추는 진심이 없다.

다음은 회복적 정의 센터의 이재영 센터장이 들려주는 일화이다.

“한 번은 내가 사는 지역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잘못하면 어떻게 되니?’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혼나요!“라고 대답했다....우리 시대의 상식은 ‘잘못(죄)은 벌을 낳는다!’이다....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잘못을 벌을 낳기 전에 먼저 피해를 낳는 것이다.”(회복적 정의, 241)

진심 어린 사과는 잘못이 벌과 처벌로 이어지기 이전에, 상대방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었으며,  내가 그 피해를 일으켰다는 점을 인정하고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사과는 내가 저지른 일과 내가 받을 처벌이 아니라, 상대방이 입은 피해와 상대방이 경험하는 고통에 집중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참고 문헌


김종훈, “유부남이 예비신랑에게 전하는 결혼생활 꿀팁,” 창천 미팅룸, 2021년 5월 7일
https://www.youtube.com/watch?v=vTXAmhz2ZRU&t=77s


이재영,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 피스빌딩, 2020

Battistella E, Sorry About That: The Language of Public Apology (한국판 제목: 공개 사과의 기술),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Rowland M, “The Power of Apology” Wellbeing, Issue 19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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