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왜 사과를 못할까? 이건 여자들이 모이면 자주 하는 말이다. 느낌상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진짜 그런 걸까? 이 주제를 탐구하기 앞서, 사과를 잘하는 남자분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먼저 전한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또한 사과를 못하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에 남자가 꼭 이렇고 여자가 꼭 이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설명하는 예가 정 반대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 글을 쓴다. 적어도 나와 내 여자 친구들은 자주 하는 말은 이렇다.
“왜 남자들은 미안하다고 말을 못 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렇다. 연구에 의하면 남자들은 그게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사과에 대한 남녀 차이를 연구하면서, 언어학자 Janel Holmes는 뉴질랜드 여성과 남성의 183개의 사과 케이스를 연구하여 결론을 내기를, 여자는 확실히 남자보다 사과를 많이 하고 많이 받는다고 결론을 냈다. 흥미로운 점은, 여자들은 여자들에게 사과를 훨씬 더 많이 하고,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사과를 더 많이 했다. 여자들이 전체 사과의 4/3을 받았고, 남자가 여자에게 한 사과의 2/3이 여자에게 한 것이었다.
미안하다고 잘하는 여자의 입장에서 누가 미안하다고 그러면,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무엇일까? 바로 “나도 미안해”이다.
대화 1: 미안해
나도 미안해.
서로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자는 말로 아름답게 끝난다.
대화 2:
미안해
응 그래
너는 안 미안해?
내가 왜 미안해야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위의 대화는 여자들 사이의 대화일 가능성이 높고, 아래 대화는 여자와 남자의 대화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남자들끼리는? 미안하다고 잘 안 한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
1. 그들은 사과를 할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워털루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남자들이 사과를 아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가 필요한 잘못에 대한 기준이 여자보다 높다고 한다. 그것도 조금 높은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여성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사과할 일이, 그에게는 사과할 일이 아닌 것이다.
2.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것에서는 사과할 필요를 못 느낀다.
여자들의 사과는 매우 광범위하다. 곤란함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하는 “미안해~”라는 말이 꼭 자신이 뭘 잘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밥 먹다 돌 씹은 친구 테스트에서 1번이나 2번을 선택한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친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깊은 유대감의 표현, 또는 내가 그 어려움을 막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은 내가 씹었는데, 친구가 “아 어떻게 미안해~”라고 말했다고 해서, 친구가 밥에 돌을 넣었을 거라고는, 즉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가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대다수의 남성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사과는 남자를 약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든다.
남자들은 사과를 굴욕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은 사과를 받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커플 상담사의 밀을 빌리자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감정과 자기의 자존감 사이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나 자신의 자존감을 선택합니다.”
4. 사과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없다.
아이가 잘못하거나 실수했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아이가 울면서 잘못했다고 할 때, 어떤 부모는 달래주는 것을 먼저 하고, 어떤 부모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먼저 한다. 여자 아이가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면 잘 용서를 해주지만, 남자아이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뭘 잘했다고 울어! 그만 울어. 뚝!” 이렇게 야단을 맞고는 한다. 이렇게 어른들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남자아이들 여자 아이들 모두, 학교 친구들과 놀다가 싸우면 어른들이 나서서 빨리 사과를 강요하고는 한다. 사과를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데, 그냥 빨리 “잘못했다고 해.” “둘이 악수해”로 신속처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사과를 먼저 하는 아이는 잘못한 애로 낙인이 찍히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이 생긴다. 오히려 나쁜 짓을 하고 남을 괴롭히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애들이 반에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사과는 약한 애들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잘못은 걸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더니, 그것이 약점으로 잡히고, 자신이 책임을 몰아서 지게 되는 경험을 한다. 즉 사과를 해서 좋았던 적이 별로 없는 것이다.
5. 굳이 말로 해야 돼?
꽃을 사 오고, 요리를 하고, 평소에 안 하던 “밥은 맛있게 먹었어?”등의 문자를 보낸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이게 말없이 하는 사과이다. 그렇다 보니 사과를 하지 않았음에도 자기는 사과와 용서와 회복을 한 큐에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미안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사과가 아니다.
정리하자면, 남자들은 사과가 약함의 표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는다. 또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는 이 정도는 사과할 거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또는 잘못을 한 것이 명백해도 사과를 하면, 타인의 존중을 잃거나 처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과에 대한 남녀 차이로 인하여 애인과 부부 사이에서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위 연구에서 밝혔듯이, 사과할 일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이 핵심인 경우, 갈등의 초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갈등의 초점은 ‘어떻게 사과 한마디 없이 번번이 약속에 늦을 수 있는가’라기보다 ‘무엇을 잘못으로 보는가’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즉 여자 친구가 ”어떻게 매번 사과도 없이 이렇게 늦을 수가 있어! “하고 화내면, 남자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야! “라고 반응할 것이다. 이럴 때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기준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 부분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면 괜한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고 한다.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161)
남녀 간의 언어 차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인 Deborah Tannen은 여자들의 “미안해”가 공감의 표현인데, 이것을 책임에 대한 선언으로 오해하는데서 기인한 갈등이 있다고 분석한다.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공감대가 높은 사람의 언어 표현은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의 언어 표현과 다르다. 공감의 “미안해”를 자주 하는 사람을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오해해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점이 사회생활에서 사과를 많이 하는 여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The Girls’ Guide to Power and Success> 란 책을 쓴 Susan Solovic은 미안하다고 늘 말하는 것은 자기 비하의 한 방식이 된다”라고 말한다. 또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책임을 지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내어주고, 자신의 전문적인 이미지를 위태롭게 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오는 비난의 화살은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다른 데로 향하게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당신이 미안하다고 그러면, 당신의 말과 아주 기쁘게 동의하고, 당신이 책임을 지게 할 것이다”라고 까지 주장한다. 즉, 사과를 공감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의 인정이라고 보는 남성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사과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18일 로이터 통신 헤드라인에 이런 기사 제목이 실렸다. “Kim Clijsters Says Sorry for Safina ‘Double Bagel’” 테니스 경기에서 벨기에 선수인 Kim Clijsters가 러시아 선수인 Dinara Safina를 6:0 6:0 (더블 베이글)로 이기고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남자 선수가 세계권 대회에서 상대편 선수를 완전히 누르고 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남자가 사과를 잘 못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정리해보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케이스는 사과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가지게 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 가장 파괴적이고 가장 떨쳐내기 어려운 감정이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으로. 내가 그 행동을 잘못했다고 여기는 죄책감과 달리, 나라는 존재가 잘못되었다는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남자 아이들에게 강해야 하며, 실패와 잘못과 체면이 깍이는 것을 더 수치스럽게 여기게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 아이들은 우정에 문제가 생길 때, 빨리 미안하다고 말한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에 따라 사과를 먼저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빨리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아이가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관계성에 대한 것이고 “미안해”라는 말은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하고 싶다는 제스처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끊임없이 말다툼하고 토라지고 그러지만, 미안하다고 화해를 잘하고, 관계 회복도 잘하는 편이다.
남자들이 사과를 잘 안 하는 것은 맞는 거 같다. 하지만,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들이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고, 우리 사회에서 강한 사람은 사과를 안 하는, 아니 사과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강하게 키워진 사람과 강함의 그림자인 수치스러움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과가 어렵다.
범죄나 큰 피해가 있는 경우, 사과는 “미안해”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것까지 포함해야 사과이다. 하지만 다정한 사이에서는 여자들이 “사과가 왜 그렇게 힘들어?”라고 물을 때는, 사과를 하는 순간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이고, 대부분 여자들은 남자가 “미안해”라고 말하면 “나도 미안해”라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미안해”라는 말이 회복의 시작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질타와 수치심으로 다가온다면, 미안하다는 말이 잘 안 나올 것이다.
사과를 잘하는 캐나다 여자 친구에게 사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아엠 쏘리”라고 말하는 순간, 그 잘못이 사라져. 이 말은 잘못을 증발시키는 말이야. 그래서 사과를 하면 바로 관계가 회복돼.”
남자들이여, 이 기적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참고로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사과를 못 한다. 자기도취적이고 거만하며 늘 옳아야 하는 나르시스트가 사과를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건강한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 연구들마다 결과가 조금씩 다르지만, 2008년에 34,653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연구의 경우, 인구의 5% 정도가 나르시시즘의 극단적인 경우인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75%가 남자다. 2017년 연구에서는 7.7%가 남자고 4.8%가 여자였다. 만약 당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나르시스트이고 사과를 안 한다면, 사과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그 사람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신경과학에서 경영학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신뢰 커뮤니케이션>, 어크로스, 2011
Reed T, “5 Scientific Reasons Men (Pretty Much) Never Say I’m Sorry,” Your Tango, Setp15 2021https://www.yourtango.com/experts/coach-todd-reed/5-legit-reasons-men-never-apologize-says-scienceSchumann
K, Ross M. “Why Women Apologize More Than Men: Gender Differences in Thresholds for Perceiving Offensive Behavior,“ Psychol Sci. 2010 Nov;21(11):1649-55. https://pubmed.ncbi.nlm.nih.gov/20855900/
Stinson FS, Dawson DA, Goldstein RB, Chou SP, Huang B, Smith SM, Ruan WJ, Pulay AJ, Saha TD, Pickering RP, Grant BF. “Prevalence, Correlates, Disability, and Comorbidity of DSM-IV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Results from the Wave 2 National Epidemiologic Survey on Alcohol and Related Conditions.” J Clin Psychiatry. 2008 Jul;69(7):1033-45.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66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