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혜 Oct 15. 2022

너가 아픈 데 내가 왜 움찔할까?

<밥 먹다 돌 씹은 친구 테스트>에서 “미안함”을 무엇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가? 1번의 경우는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다. 2번에서부터 점점 어디까지를 내 책임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판단이 들어가 있다. 5번 입장에서 보면 1번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에 사과하는 이상한 사람이고, 1번 입장에서 보면 5번이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 내 친구들이고, 또 여러분의 친구이며 이상하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어쩌면 ‘미안함’으로 인한 싸움은 이 감정/이성/판단에 대한 뭉뚱그려진 표현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않을까? 미안함이라는 단어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으로 일어나는 감정일까? 아니면 책임의 유무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인지적인 판단일까? 도대체 이게 감정이기는 할까?

인간의 표정을 통해서 인간 감정을 연구하는 Paul Ekman에 의하면 인간의 기본 감정은 딱 7가지 -  화, 경멸, 혐오, 기쁨, 두려움, 슬픔, 놀람 – 뿐이다.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잠비아 사람도,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어서 타인의 얼굴을 못 본 사람들도 이 7가지 감정에 대하여 같은 얼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인간의 근본 감정이 딱 7개뿐이라는 주장의 바탕이다. 즉 미안함은 기본 감정이 아니다. 대신 미안함이 {근본 감정 +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무엇}이 섞여 있는 것일 수는 있다.

이 상황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상대방이 돌을 씹을 때, 어떤 근본 감정이 들까? 두려울까? 화가 날까? 슬플까? 놀랄까? 경멸하거나 혐오할까? 기본적으로 놀랄 것이고, 다른 감정도 다 가능한 것 같다.

슬픔 - 아, 어떻게... 오늘 특별한 날이어서 좋은데 일부러 왔는데, 망쳐서 슬프다 ㅠㅠ
화 -  누가 내 친구 밥에 돌 넣었어! 사장 나와!!
경멸 – 너는 맨날 조심성도 없이 그것도 못 뱉고 씹니?
혐오 – 돌을 씹는 소리나, 입에서 돌을 뱉는 모습이 너무 더럽게 보여.

이 모든 감정이 가능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원초적인 ‘움찔’의 반응이 먼저일 것이다. 그렇다면, 1번 유형의 사람이 ‘미안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감정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으로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나의 ‘고통’ 일 수도 있겠다 싶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부모들이 흔희 하는 말이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논의가 아니다. 살면서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가 느낀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주제가 아니지만,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우리 뇌에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이 느끼게 하는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있다는 것이 1980년대에 밝혀졌다. 이 발견은 상대방이 돌을 씹는 것을 보면 마치 내가 씹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 사실임을 밝힌다. 


또한 생존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몸의 기능들 (예를 들어, 호흡과 소화 등)을 관장하는 미주신경이 타인의 고통에 활성화가 된다는 발견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 매우 근본적인 몸의 기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돌을 씹었는데, 내 안에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자 동시에 내 안에서 경험되는 고통 그 자체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1번 유형이라면, 상대방이 돌을 씹는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가 시리고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 그리고 가상의 예시인데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아이고” “어떻게?” “괜찮아? 하지만 미안함이 아픔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에 대한 판단이고, 잘못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반응은 전혀 다르게 흐를 것이다.

자신은 1번과 5번 둘 다라고 밝힌 친구의 설명이 흥미롭다. 사실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한데, 돌 씹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너 때문이야’라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왜 이 식당에 오자고 했어?”라고 화살을 돌린다면, 1번의 미안한 감정은 오간데 없이 증발하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바로 5번 반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돌 씹은 사람의 반응에 따라서 공감 대화가 책임을 따지는 대화로 순식간에 바꾸며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음 대화 유형을 살펴보자.

1번 대화:
A: (돌을 씹는다)
B: “아.. 어떻게?.. 돌을 씹어서.. 아프겠다~~~”
A: “아니야, 괜찮아. 네가 안 씹어서 다행이야. 그래도 우리 맛있게 먹자.”

공감에 대한 반응으로 공감이 일어난다. A는 자신이 돌을 씹은 것 때문에 걱정하는 B를 걱정해서 달래준다.

2번 대화:
A: (돌을 씹는다)
B: “이런.. 괜찮아? 이빨 안 아파?”
A: “안 아프냐고? 당연히 아프지! 내가 이가 약한 거 몰랐어. 왜 이런 곳을 오자고 했어?”
B: “뭐 내가 알고 그랬어? 내가 돌을 넣은 것도 아닌데 왜 나보고 뭐라고 해? “

B 가 공감 반응을 했는데, A가 책임을 묻는 질문을 한다. 그러자 B가 책임 대화로 바로 전략을 바꾸어 방어하고 공격한다.

3번 대화:
A: (돌을 씹는다)
B: “아니 조심성 없게 그걸 왜 씹고 그래? 돌이다 싶으면 뱉어야지 그걸 왜 미련하게 씹어?”
A: “이가 상했을 수도 있는데 걱정을 해줘야지 왜 나한테 뭐라고 그래?”
B: “아니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걱정이 되어서 하는 소리자나!”

이 경우가 흥미롭다, A가 돌을 씹은 것에 대한 B가 화가 어이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A가 돌을 씹는 것에 대하여 자기 내면의 움찔 (즉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내 안의 고통)이 존재하며, 이 불편한 마음이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초래한 A에게 탓을 한다. 왜 나를 불편하게 하냐고 묻는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보고 자기 안에 느껴지는 아픔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다룰까? 고통은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연민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 연민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