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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May 01. 2021

핀란드에서의 스몰 웨딩

코로나 시국에서의 결혼식 ②

지금의 내 남편은 독일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났다. 핀란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에 핀란드가 아닌 타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핀란드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인연들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독일에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는 데이트 어플을 사용하곤 했었는데 점점 그 가벼움과 뻔한 패턴에 회의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물론 데이트 어플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커플들도 있다), 독일에 가면 이런 어플이 아닌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가기 전에 어플을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 

교환학생이 확정된 후 학교를 통해 집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신청자가 많으면 집을 제공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서 집을 따로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핀란드 친구가 자기가 예전에 같은 도시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머물렀던 집이 있는데, 집주인과 아직도 가끔 연락을 한다고 해서 혹시 그곳에 머물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다행히 집주인의 딸 방이 비어있다고 해서 그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그 와중에 학교에서도 집을 제공받았다. 고민을 하다가 집주인에게 이미 간다고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공받은 집은 같이 교환학생을 가게 된 다른 친구에게 양도했다.

그렇게 독일로 날아가 도착한 그 집에는 집주인 외에 스페인 남자애가 한 명 더 살고 있었다. 나는 교환학생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 도시를 먼저 탐방해보고 싶어서 조금 일찍 도착했었고, 초반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 스페인 하우스 메이트와 집에 놀러 온 그 친구들과 함께 같이 어울려 놀곤 했었다. 그런데 종종 놀러 오던 그 친구 중 한 명이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독일에 가면 혹시 독일 남자를 만나게 되려나 했는데 스페인 남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만약 학교에서 제공받은 집을 선택했다면 과연 우리는 만날 수 있었을까.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그렇게 우리는 독일과 핀란드를 오가며 함께 2년의 시간을 보낸 후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하기로 했던 4월이 지나가버렸고 5월 중순쯤 코로나와 관련된 새로운 규정이 공지되었다. 꼭 필요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 핀란드 입국이 허용될 것이고 다행히 결혼도 그 이유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던 우리는 핀란드 출입국 심사부에 메일을 보내 입국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며 입국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 후 부랴부랴 가능한 결혼식 날짜를 다시 확인해 예약했고, 비행기도 예약했지만 결국 호텔은 예약하지 못해 에어비앤비를 예약해야 했다. 결혼식을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춰서 준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또 만났다. 핀란드 입국 가능 여부에만 온 신경을 쓴 탓에 독일 출국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것.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했는데 핀란드 거주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핀란드행 비행기 탑승이 가능했지만 남편이 제지당해버렸다. 핀란드에서 결혼식 예정이라고 확인 이메일을 보여주었지만 종이 문서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은 이메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이메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그 이메일을 출입국 관리소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확인이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우리는 거의 30분 동안을 기다려야 했고 우리 때문에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출입국 관리소에서 허락을 했는지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고 무사히 핀란드로 날아갔다. 그리고 막상 걱정했던 핀란드에서는 이메일을 보여주자마자 아무 문제없이 둘 다 입국할 수 있었다(하여튼 독일은 이래저래 피곤하게 깐깐하다). 저녁 비행기였기 때문에 헬싱키 시내에 도착하니 밤 12시.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우리는 에어비앤비에 체크인 후 기차역에서 산 햄버거를 먹고는 바로 뻗어버렸다.




결혼식은 공항에서 이동하기 편한 헬싱키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핀란드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탐페레에서 하기로 했다. 결혼식 당일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탐페레로 향하는데 여행의 피곤함과 결혼의 설렘이 동시에 몸을 감싸며 몸이 조금 붕 뜬 기분이었다. 탐페레에 조금 일찍 도착해 기차역에서 천천히 걸어서 결혼식을 하게 될 관청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잠겨있었다. 응? 설마... 코로나로 문을 닫은 건가?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순간 다시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전화를 해 보니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 예약 시간 5분 전에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 앞에 결혼식을 마친 커플이 활짝 웃으면서 나왔다. 축하 인사를 건넨 후 이제 우리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증인을 서 줄 핀란드에 살고 있는 고마운 친구들도 곧 도착했다.

우리의 결혼식에 할당된 시간은 30분이었지만 결혼식은 5분 정도로 정말 짧았다. 주례 선생님이 혼인 서약서를 읽고 서로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 우리가 대답을 한 후 반지를 교환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났다. 결혼식이 끝난 후 주례 선생님은 우리의 이름이 적힌 미리 준비된 혼인 증명서(핀란드어, 영어)를 바로 전달해주셨다. 주례 선생님, 친구들과 사진을 찍은 후 독일 비자 신청에 필요할지도 모를 추가 서류를 요청해서 받은 후 관청을 나섰다(로맨틱할 틈을 주지 않는 이놈의 서류 작업).

이렇게 핀란드에서의 결혼식이 끝났다. 준비 과정도 매우 간단하고 합리적이었고 결혼식도 허례허식이 전혀 없는 담백하고 심플한, 그야말로 핀란드다운 결혼식이었다. 물론 결혼식 이후 가족 및 지인들과 함께 피로연을 즐기는 커플도 있고 코로나로 인해 이는 어려워졌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우리 둘만을 위한 최대한 심플한 스몰 웨딩을 하고 싶었다. 결혼은 당사자 의 일이므로.

결혼식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 무언가 미션을 완료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렇게 무사히 결혼식이 끝났고 우리는 드디어 법적인 부부가 되었다.

 

핀란드의 금속 공예가가 제작한 심플한 로즈우드 결혼 반지 그리고 짧고 간결했던 핀란드에서의 결혼식
결혼식 후 받은 핀란드 혼인 증명서와 스페인 혼인 신고를 마치고 받은 가족 수첩.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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