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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Apr 18. 2021

핀란드에서의 결혼, 그리고 독일로 이주

코로나 시국에서의 험난한 여정, 로맨스는 개뿔 ①

결혼을 하고 독일로 완전히 이주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몸도 마음도 참 힘들고 바빴던 해였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고 이는 핀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당시 내가 가진 취업 준비 거주 허가증은 6개월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거주 허가증이 만료되기 전에 취업을 해서 취업 거주 허가증을 받던지 아니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국민도 일자리를 잃고 안 그래도 핀란드에서 외국인에게 어려운 취업이 더 힘들어진 이 상황에서 나는 취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고 내 거주 허가증이 만료되기 전에 남자 친구가 있는 독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 살려고 한다면 공부, 취업, 결혼 등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주 허가증을 받을 수 있고 그곳에 장기로 머물 수 있다. 아시아 친구들끼리 얘기하기도 했는데 유럽에 살게 되면서 EU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지금은 핀란드 대학에서도 학비를 받기 시작했지만 EU 시민권이 있으면 여전히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 게다가 유럽 내에서 이동도 자유롭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 90일 이상 머물게 되면 그 나라 관청에 등록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절차도 정말 간단하다. 반면 EU 시민권자가 아닌 우리는 학비를 부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주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 독일에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나는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핀란드 거주 허가증으로는 독일에 한 학기 동안 머물 수가 없다고 해서 독일 거주 허가증을 또 신청했었다. 이래저래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든다. 그랬더니 또 나보고 왜 핀란드와 독일 거주 허가증 두 개나 가지고 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하하 어쩌라고. 게다가 학생은 비자를 매년 연장해야 했는데, 그 해의 비자 연장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 바로 다음 해의 비자 연장 시 제출해야 할 재정 증명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음 1년의 재정 상황을 계획해야 했다.




아무튼 그래 일단 독일로 이주하는 건 오케이. 그런데 어떻게?


내가 EU 시민권자라면 그냥 옮기면 되겠지만 나는 독일에서의 거주 허가증을 또 신청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핀란드 거주 허가증으로 남자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지만, 이 마지막 거주 허가증이 만료되면 핀란드를 포함한 솅겐 국가에 머물 수도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이 어려운데 취업 준비 비자를 연장할 수 있겠냐고 핀란드 이민청에 물어봤지만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게다가 독일에는 커플 비자가 없 함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놈의 비. 자. 때문에.


결혼식(이라기보다는 혼인 신고)은 핀란드에서 하기로 했는데 내가 핀란드를 사랑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간단하고 편리한 절차 때문이었다. (복잡한 행정 처리와 담당자 케바케로 악명 높은) 독일에서의 혼인 신고를 알아봤는데 더 많은 서류가 필요했고 둘 다 독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담당자에 따라서 통역사를 데려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독일에서 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독일의 많은 국제 커플들은 독일의 복잡한 혼인 절차 때문에 북유럽, 특히 덴마크에 가서 결혼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찾아봤는데 수요가 많아서인지 덴마크 현지 웨딩 업체들이 꽤 있었다.

그에 비해 핀란드에서의 혼인 신고는 매우 간단했다. 자국 대사관에서 혼인 관계 증명서만 발급받아 영어로 번역 후 대사관 인증을 받으면 서류 준비는 끝이었다. 그 서류와 여권을 들고 'Digital and Population Data Service Agency'이라는 관청에 직접 방문해서 서류 접수를 하면 되었다.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결혼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는다. 그 후에 온라인으로 결혼식 날짜를 예약한 후 당일 방문해 짧은 결혼식 및 혼인 신고를 완료하면 바로 혼인 확인서를 받게 된다. 참고로 덴마크와 같이 핀란드에서도 핀란드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혼인 신고 및 결혼식을 할 수 있다. 마치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이 스웨덴에서 결혼한 것처럼.


작년 3월 초 유럽 내 국경이 닫히기 전에 남자 친구가 핀란드로 와서 서류를 제출한 후 함께 독일로 돌아와서 결혼 및 독일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국경이 다 닫히고 하늘길도 닫혀버려 미리 예매했던 핀란드행 항공편도 취소가 되어버렸다. 예약해 두었던 호텔도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는다고 예약을 취소해버려서 결국 결혼식 날짜만 동동 떠 있었다. 게다가 서류를 제출한 후 일정 기간(4개월) 내에 결혼식을 하지 않으면 그 서류는 효력이 없어져 다시 서류를 준비해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4월로 예약해두었던 결혼식 날짜를 취소해야만 했다. 결혼식 날짜는 남편이 내게 처음 고백했던 날로 정했었지만 이런 시국에서 고백했던 날이고 뭐고 로맨스는 개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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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오로라를 찾아 떠난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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