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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Jan 15. 2021

핀란드의 신박한 기상캐스터

반려견과 함께 전하는 핀란드의 날씨 정보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서 사는 것 중에 좋은 점으로 많이 언급하는 하나는 자신의 외모, 옷차림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외모나 옷차림에 민감해 서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지만 다른 나라를 여행하거나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도 핀란드에 도착한 후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느낌에 오히려 당황한 적이 있다. 동양인이라 눈에 띌 만도 한데 다들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앞만 보고 나를 그냥 지나쳐갔다. 처음에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나중에 익숙해지니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니 몸도 마음도 편해져 옷에 내 몸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게 아닌 내 몸에 편한 옷을 입게 되고, 보여주기 식으로 옷을 입지 않게 되니 옷 가짓수도 점점 적어지고 심플해졌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웬만하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명품백 하나 없었고 유행에 둔감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옷을 사댔고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옷장에 쌓여있던 입지도 않는 옷들을 박스에 담아서 핀란드로 다 배송시키면서 생돈을 날렸고 그 옷들은 핀란드의 집 옷장에 그대로 쌓여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옷들을 중고 가게나 옷가게에 기부한 후 최소한의 옷들만 가지고 있고, 캐리어를 포함해 박스 여러 개에 담길 정도로 많았던 내 모든 옷들은 매우 단출해졌다.




핀란드인들의 패션은 편안하고 실용적이면서 심플하게 입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옆 나라 스웨덴 사람들처럼 모두 모델처럼 패셔너블하고 화려하게 차려입지 않고 무난하고 깔끔한 스타일이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지 않고 마음에 든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이 신박한 기상캐스터 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나 편안한 복장으로 날씨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서 ‘와, 이 분 뭐지?’ 하며 신선한 느낌으로 보고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 강아지가 슬슬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와 자유롭게 기상 캐스터 아저씨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다리 사이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다시 어슬렁거리면서 아저씨를 쳐다보는 모습은 마치 둘이 산책하다가 방송국에 잠깐 들러서 날씨 정보를 알려주고 다시 나가서 산책을 계속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영상들을 더 찾아보니 여름에는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반려견의 남자 친구와 함께 두 마리가 같이 출연하는 방송도 있었다. 또 진행하는 분위기도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중간에 혼자 빵 터져서 웃으면서 끝나는 방송도 있고 재미있게 CG를 이용한 영상도 있었다. 이런 신박한 기상캐스터라니! 뉴스 방송의 틀을 깨는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고 방송에서도 핀란드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잘 반영된 것 같아서 참 바람직하고 좋은 컨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보면서 마음이 참 편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상캐스터의 날씨 정보는 어떨까?


핀란드 'MTV3' 방송에서 날씨 정보를 알려주는 기상 캐스터 뻬까 뽀우따(Pekka Pouta)와 그의 반려견(사진 출처: MTV Uutiset).


포털 사이트에 '기상캐스터'를 검색해보면 여전히 몸매, 원피스가 상위 검색어를 차지하고 있다. 날씨 정보보다는 기상캐스터의 외모나 옷차림이 더 관심거리가 되고 기사화되고, 그래서 방송사마다 경쟁하듯 더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방송하는 기상캐스터들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과 마음이 불편했었다. 여성만을 고용해 날씨 정보보다는 눈요깃감으로 전락시켜버리는 방송사와 그런 방송사의 흐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여성 기상캐스터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핀란드 기상 캐스터를 보여주면서 한국의 기상캐스터들에 대해 이야기하니 콜롬비아 출신인 남편은 콜롬비아를 포함한 남미 쪽에서도 기상캐스터는 비슷한 이미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JTBC에서 대기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기자가 '날씨 박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기존의 기상캐스터들과는 다르게 몸매를 부각한 옷이 아닌 바지를 입고 날씨에 관해 좀 더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모습을 보니 눈도 마음도 편하고 날씨 정보에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조금씩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긍정적인 기대감과 바람을 가지게 된다. 핀란드의 기상캐스터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되 성역할 고정관념과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JTBC 날씨 박사가 진행하는 날씨 정보(사진 출처: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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