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마포도 미분양이던 시절이었네
“우리가 과연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여보. 청약통장 부은 거 보여줘.”
아내가 나의 청약통장 개월수와 납입금액을 확인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많아서, 당첨 가능성 있을거야.”
“응, 그런데 여보. 우리가 몇 억씩 하는 돈을 갚을 수 있을까?“
아내가 멈칫했다.
“나, 좀 무서워.”
“여보…“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은…나도 무서워. 진짜로.”
“당신도 그래? 난 당신은 안 그런 줄 알았어.”
“…아냐.”
아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도, 정말로 무서워…”
아내가 내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은 미분양의 성지 마포였다. 얼마전까지 험한 동네였다가 이제 막 재개발을 거의 끝내가는 터였다. 부동산 사장님은 아주 깍듯했고, 얼마 남지 않은 미분양 물건을 웃으며 권했다.
“요 짝 마포 이 동네가, 앞으로 천지개벽 할거에요. 두고 보세요.”
입주를 코앞에 두었는데도 미분양 물건이 몇 개 남았다고 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아내는 남은 미분양 물량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었다. 꼼꼼히 구조와 향을 체크하는 그녀의 옆에서 나는 괜시리 발로 돌멩이를 툭툭 찼다. 미분양이라고 하니 모든 게 안 좋게만 느껴졌다. 괜히 너무 비싼 것 같은데. 30평대가 7억이라니. 미분양이 난 것도 놀랍지 않지. 직장이 가깝다 해도 너무 언덕인 것 같기도 하고.
“잘 봤습니다. 사장님, 연락 드릴게요.”
공덕역 쪽으로 걸어가 꼬리곰탕을 먹었다. 유명한 맛집이어서 그런지 기가 막혔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곰탕을 먹으면서도 유독 말이 없었다. 곰곰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숟가락질을 연신하면서도 생각에 잠긴 그녀의 입모습이 귀여웠다. 괜시리 말을 걸었다.
”단지가 워낙 커서 이거 하나만 봐도 지치네. 피곤하지 않아?“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보람차네.“
”미분양이라는데 불안하지 않아?“
”아냐... 여기 정말 많이 바뀔거야.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는 어떻게 이렇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난 언제쯤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오늘 본 여기, 단지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내가 어이없어 하면서 웃었다.
”이름 벌써 까먹었어?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여기 만한 데가 없지요. 강북 최고 입지 아닙니꺼.“
경희궁 자이 옆 부동산 사장님은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분양가가 너무 높은 건 아닌지…”
“어휴 이만한 입지 없습니더. 역세권에 대단지에. 이름부터 기가 막히지요.”
30평에 7억 5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금액.
그리고 미분양.
남들은 사지 않겠다고 거절한 물건들이다.
그걸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요즘은 대출도 잘 나온다 아닙니꺼. 은행 이자도 이정도로 낮은 적이 없네요. 제 말 들으세요, 새댁. 경희궁 자이 정말 괜찮습니더.”
“네, 그렇게 생각해요.”
아내는 여전히 곰곰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또 올게요.”
영천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갈현동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쫀득쫀득한 밀떡이 기가 막혔다. 감탄하며 연신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물어 볼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
“어? 떡볶이? 역시 나는 쌀떡 말고 밀떡ㅍ…”
“아니 떡볶이 말고, 경희궁 자이.”
“아…좋긴 한데, 미분양이고, 7억 5천이면…가격도 너무 비싸서…”
“맞아. 정말 좋은 아파트야. 그런데…중도금 대출을 70% 받아야 하는데…금액이 부담스럽긴 해.“
그녀가 조금 시무룩해보였다.
이럴 때 내가 능력이 있어서,
아무 아파트나 골라! 50평으로 가자.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거 알지.
그렇지만 우리에겐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밤에 뜬 눈으로 누워 한참을 뒤척였다.
7억의 70프로면 거의 5억.
갑자기 불황이 찾아온다면?
우리 둘 중 한 명이 실직한다면?
임신 출산으로 아내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 여긴 우리가 얻으면 체할 수 있어.
우리가 5억을 대출받는다는 건 무리였다.
아무리 대기업 맞벌이 부부라 해도.
옆에 누운 아내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였다. 우리는 누운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내는 내 생각을 다 읽은 것 같았다. 아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여보, 이 두 곳은 우리에겐 무리인 것 같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응, 욕심 부리지 말자. 그리고…“
그녀가 생긋 웃었다. 아내가 웃으면 나는 항상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가 그렇게 웃을 때는 항상 좋은 일들이 생겼다.
”은평구에도, 곧 청약하는 아파트가 있어. 녹번역 일대가 다 개발된대. 모델하우스 가보자.“
녹번역 일대에 새로 짓기 시작한 아파트들이 있다고 했다. 응암역에서 자란 우리에게 익숙한 동네였다. 모델하우스가 지어지기도 전이었다. 작은 사무실에 가서 사전 상담에 등록하라고 했다. 사전 상담에 이름을 등록하면 ‘이름표’를 준다고 했다.
“사전 상담에 오신 분들께만 이 혜택을 드려요. 나중에 혹시 서류가 미비하거나 해서 빠지는 물건들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물건들을 재추첨할 때 우선순위로 연락을 드리거든요.“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내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줍줍물건 추첨할 때 한 번 더 기회를 받는다는 거야.”
아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설문지에 이름을 적어 내고 사전 등록을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청약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뜨거운 2015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