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뉴스 9입니다. 정부에서 집값을 부양하기 위해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양도세를 면제하고 취득세를 인하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가계부채는 1,000조를 돌파했습니다…“
부모님은 지주택 실패 이후 부동산 얘기 꺼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수천만원을 손해 보고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했다. 게다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집값이 쭉 하락하는 것을 지켜본 아버지는 부동산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앞으로는 부동산에 미래가 없어. 그냥 나 사는 집 하나 있으면 그걸로 되었지.”
그런 집에서 쭉 자란 나 또한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시큰둥했다. 그랬던 나에게 여자친구와의 연애는 아주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부동산 재테크 공부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녀 또한 나처럼 부동산에 큰 관심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음에도 그녀는 참 남달랐다. 부동산 세미나가 열리는 강의실, 또는 청약 설명회나 모델하우스 등이 우리의 주된 데이트 장소였다. 세미나를 듣다 보니 ’확정일자‘도 몰랐던 나도 서당개 몇 개월차에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청약 통장 만들었어. 자동이체도 20만원씩 걸었고.”
“잘했어, 그리고 적금도 걸어놔. 월급 들어오면 다 자동으로 빠지게 날짜 세팅하구.”
“어어, 알려준대로 쓸데 없는 보험도 해지했어.”
“적금은 내가 알아보니 국민은행거가 좋더라. 이율이 3.9프로였어. 어차피 예금자 보호 5,000만원이 되니까…”
그녀는 뭔가 달랐다. 차를 가지고 데이트하자던지,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자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푹 빠졌다. 함께 있으니 나도 성장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서 들은 풍월을 회사에서 읊으면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곤 했다. 나도 그녀에게 들은 내용이지만 동료 파인애플 대리 앞에서 전문가마냥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파인애플 대리는 입을 딱 벌리고 듣곤 했다.
“무슨 투자 세미나같은 거야? 그 여자친구 좀 이상한데??”
대부분의 친구들, 심지어는 부모님마저 도끼눈을 뜨고 나에게 충고했다. “여친 따라서 투자 세미나를 다닌다더라”라는 말이 돈다고 했다. 소문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제는 “여자 따라 다단계 사기에 가입했다더라”고 변주되기 시작했다. 나는 언짢았지만 여자친구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아니 그래도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평판이란 것도 있고…“
”난 우리가 같이 살아갈 때 탄탄한 안전망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한테는 그게 돈이야.“
”그거야… 맞지. 방금 ‘우리가 같이 살아갈 때’라고 했어?“
”응, 내 결론은 집을 사야 한다는 거야.“
지금 집을 사?
부모님이 경천동지할 얘기였다.
“그리고 그 때가 분명히 올거야.”
“그 때?“
”응, 집을 살 때.“
그녀는 말을 흐렸다. 그러나 단호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우리 둘이 열심히 벌자.“
그 때 결심했다. 그녀와 남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엄마,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도 패기가 넘쳤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돈도 없던 아들이 부모를 소환했다.
”나 결혼하려고요.“
”결혼?? 지금 라임이 너 얘기니?“
그녀랑 남은 여생을 보내자. 가진 것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녀를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그녀를 꽉 잡고서 그녀는 내 것이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졸업한 대학교의 동문회장 예식장을 예약했다. 호텔도, 강남의 화려한 예식장도 아니었지만 저렴했다. 예식 날짜가 정해지자 이제는 각자 부모님에게 얘기할 차례였다. 부모님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허락해 주셨다.
“라임씨, 결혼 축하해요!!!”
예식장에는 파인애플 대리, 빨간펜 부장, 망고 부장, 심지어 두리안 상무까지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 나중에 축의금을 확인해 보니 두리안 상무는 5만원 넣고 온 식구가 밥을 먹고 갔다.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공항에서 아내의 머리에 고정된 수십개의 머리핀을 뽑아주며 신혼여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신혼은 달콤했다. 전세집을 얻어 야식을 해 먹고 청소를 같이 했다. 생전 집에서는 안 해 본 집안일이었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즐거웠다. 하루 하루가 꿈결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깨를 볶던 신혼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곧 있으면 티비에서 무한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아내가 고향만두와 감자칩, 귤을 세팅해 놓고 소파에 앉았다. 우리 부부에게 토요일 저녁 같이 무한도전을 보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했습니다. 사실상 ‘빚 내서 집을 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소파에서 뒹굴거리던 나와 달리
아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내가 귤을 까고 있던 손을 멈추고 귤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았다.
“여보, 지금인 거 같아.”
“지금?”
“응, 지금.”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리는 지금 우리 부부의 앞날을 바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뜨거운 2014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