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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더러운 짓을 했는데 기억나십니까”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 3

by 찬란



“나에게 더러운 짓을 했는데 기억나십니까”

​​

나의 대답에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텔레그램으로 답장했다.


“엥, 전화할게.“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전화를 받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냐, 기억이 안난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랬다면 사과한다.”

​​

그는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일단 사과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억도 안날 정도로 술을 먹었다는 사람이 목소리가 아주 또렷했다. 그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몸이 무너질 것 같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침묵하자 그는 내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 자꾸 말을 걸었다. 괜찮다는 내 대답이 듣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가 돌연 작전을 바꿨다.

“내가, 너를 나중에 도와줄 수 있지 않겠냐?”


​이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빛이 번쩍하듯 그 잠깐의 순간 내 눈앞에 내 미래가 그려졌다. 앞으로 지옥이 될 나의 회사 생활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나의 커리어, 회사 안에서의 인정을 볼모로 삼아 협박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의 회사 생활을 도와줄테니 여기서 그만하고 침묵하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먼저 이 상황을 벗어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생각하자, 생각. 생각해야 해.”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했다. 여성노동자를 도와준다고 쓰여진 한 센터에 전화했다. 얼굴 모를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순간 안도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에게라도,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녀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이것이 성추행이 맞는지, 문제가 맞는지 물어봤다.

“제가 당한 일이..성추행이 맞나요?”

센터의 상담하시는 분은 덜덜 떨리는 내 목소리와 달리 차분했다.

“매우 위중한 정도의 성추행입니다.

반드시 법적 조치를 취하기를 권합니다.”

그녀는 ‘매우 위중한 정도‘ 라는 말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그 말은 한 줄기 동아줄 같았다. 그녀는 나와 전화를 끊기 전,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간에 꼭 후속으로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때였다.

내 노트북에서 메신저불이 깜빡거렸다.​​

놀랍게도, 그였다.

​​

“저기, 업무상 문의할 게 있는데 전화 가능해?”

​​​

그 순간, 확신했다.

나는 이제 그가 이 회사에 있는 한

절대로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You may not control all the events that happen to you,

But you can decide not to be redced by them.” - Maya Angelou

시련이 너를 통제하게 하지 말고

너가 시련을 통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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