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 2
“나는 너가 여자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냐?”
내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얼음장이 된 채 당황하여 못 들은 척 했다. 그는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또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가 여자로 보인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냐?”
그리고 더러운 손을 다시 나에게 뻗었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장난 프린터처럼 끽끽거리며 앞장선 그를 따라 간신히 방을 나갔다.
나는 하얗게 얼어 붙은 채 그가 계산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 와중에 심지어 저녁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거리로 나왔다. 이제 빨리 들어가시라고 인사를 하는데
또 그 더러운 손은 나에게 향했다. 길 한 가운데였다.
그는 반복해서 나에게 수치스러운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가 여자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냐?”
못 들은 척 했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느끼며 지하철을 탔다. 노트북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밤을 꼴딱 새웠지만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잠했다.
바뀐 건 오로지 나 하나 뿐이었다.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에 접속하는데
그에게서 텔레그램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제 술자리 막판부터 기억이…”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어제 자신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이 텔레그램을 나에게 보낸 이유는 뭘까.
나에게 어떤 대답을 기대하며 보낸 걸까.
그의 속을 알 것 같았다. 나를 한 번 떠보는 것이겠지. 정말로 원하는 게 뭘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수치스러워서 고통스러웠다.
지금 내가 어떻게 대응하나,
지금 내가 뭐라고 답장하나,
어쩌면 이게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답장을 썼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어제 내게 수 차례 더러운 짓을 했는데 기억나십니까.”
그리고 전송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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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difficulties grow miracles.” - Jean de La Bruyere
역경은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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