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산전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
임산부에게 일어나는 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변화, 즉 외적인 변화. 배가 불러오고, 그와 더불어 온 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졌다. 그래서 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임신이 되기 전 마시기 시작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는 그야 말로 지친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해주는 보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임산부에게 하루 한 잔의 커피 정도는 허용된다지만, 유아업계에 종사하는 동생이 온갖 겁을 주고 또 주었기에 내 사랑 아바라는 잠시 멀리하기로 했다. 커피만 아니면 되는 줄 알고 그 즈음 홀짝 거렸던 밀크티의 카페인 함량이 더 높은 줄도 모르고. 허허.
두 번째 변화는 보이지 않는 내적 변화이다. 한 달에 한번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경험을 이미 이십 년 가까이 하다 보니 호르몬 따위에 내가 지겠소냐 했건만, 괜히 호르몬 때문에 울고 웃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기도 하고, 마냥 기분이 좋고 설레기도 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조울의 기세가 점점 더해진달까. 어쩌면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갔을 수 있는 말이 가시가 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무거운 돌처럼 느껴지다니. 호르몬의 영향에서 조금 비껴간 후에야 그랬을 수 있었겠다 싶은, 그러나 당시엔 너무도 버거웠던 나날들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의 축하와 전에 없던 관심이 고마웠다.
그래서 오히려 정확히 알지 못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수도) 내가 왜 임신을 내키지 않아했었는지.
어느날 저녁, 예배당 뒤편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감은 눈 안으로 눈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예상하지 못한 눈물에 당황하는 한편 그 이유를 정신없이 찾고 있는 중에 깨달았다. 아, 내가 두려운 거구나.
신체의 변화 뿐 아니라, 이제 내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노선을 탄 거였다. 덜컥 출발은 했는데 여전히 나는 확신도, 준비도 없는 상태였다. 이전에 나의 삶이 백점짜리는 아니었지만 이 후에 펼쳐질 삶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으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출산시대, 대한민국의 존망을 이야기하며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이야기해대지만, 막상 그 사건(!) 한 중간에 놓인 여성, 그리고 나의 변화와 삶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생의 기쁨과 변화에 대해서 축복하지만, 그로 인해 잃을 수 밖에 없는 기회비용에 대해서, 그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 누구도 보상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막연히 두려웠다. 이게 두려움 때문이었구나.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었구나. 조용히 그 두려움을 마주하며, 이미 시작된 이 여정에 용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며칠 후, 가까운 동료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여행에 관심이 많지만 당장 업무가 많기도 하고, 배가 불러오니 조심스럽기도 한 때였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언니 동료는 평소 나의 모습을 보고는 어느 정도 안정기가 되었으니 언제쯤 여행이 가능할 거다, 혹은 출산 후 이때쯤 여행이 가능할 거라고 각을 잡아주었다. 아직 싱글인 동료 역시 함께 하면 좋은 여행지를 추천하며, 어쩌면 출산 전 혹은 출산 후 여행이 더 즐거울 수 있다고, 출산 전에는 이렇게 출산 후에는 저렇게 여행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림을 그렸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이미 마음만은 인천공항에 다다른 대화였다.
즐거운 대화를 마음에 품고, 지방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가 그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풀어냈다. 어쩌면 출산 전에 여행을 한번 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출산 후에 갈지도 모르겠다. 출산하고 가게 되면 혹 시간이 되면 아이를 봐줄 사람은 있나 너스레를 떨었다. 주방을 오가며 내 얘기를 듣던 엄마가 툭 하고 단단한 한마디를 내셨다.
애엄마가 어딜 간다고? 말도 안 돼. 그런 나쁜 엄마가 어딨어.
나는 아직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막연하게 즐거운 대화에 ‘엄마’의 책임감으로 지난 평생을 살아온 진짜 엄마가 등판하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어디 배 부른 임산부가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가나, 만약 가서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아니 애를 낳고 나서는 애를 봐야지 가긴 어딜 가, 그럼 애는 누가 보고, 애아빠는 출근해야 하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 묵직한 한마디 안에 줄줄이 이어지는 이런 말들이 소리없이 쏟아졌다.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나쁜 엄마가 되어버렸다.
아이유의 노래가사처럼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길로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못내 서러워 엉엉 울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서운하고 서러운 건지 당시에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호르몬과 뒤엉켜 눈물로 흘러내릴 뿐이었다. 눈물범벅된 얼굴을 훔쳐내며 마음속으로 새겼다. 안가 이제. 집이건 엄마한테건 안가.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 간다. 두고 봐.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유퀴즈 온더 블럭>에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출연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진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이 임산부의 '안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정 빼고 다 하세요!' 아이를 위한 태교, 안정도 중요하지만 산모 본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산부의 삶의 질에 왜 관심을 안 갖는거냐고 되물었다. 서럽고 서운했던 내 마음을 위로하는 한마디였다.
뱃속의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야 그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만하겠는가. 물론 잘 알지 못하고,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누구보다 생명을 나누고 있는 엄마야말로 아이를 위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소중한 아이의 생명 만큼이나 지난 수십년 가꾸어온 나의 삶 역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이제 막 마주한 새생명을 품다가 지난 나의 삶이 한순간의 멈추거나 뒤바뀐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어렵지 않겠는가.
출산 후 겪는 산후우울증만큼 무서운 것이 산전 우울증이리라.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 없는 것. 드라마틱한 안팎의 변화와 주변의 시선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나’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태교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그래서 산모돌보기일 것. 몸에 좋은 산해진미를 챙기는 것 이상,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배려 이상, 평소보다 더 높은 온도의 따뜻한 말이 아낌없이 전해져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