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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 Jul 04. 2024

밝히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내가 임신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이유

밝히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tinaflour, 출처 Unsplash


임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세편에 걸쳐 나눠 쓰는 건, 아무래도 그 일이 내게 쉽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낯선 이에게도 새생명을 잉태했다는 소식은 축하할만한 소식이지만, 오히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쉽지 않다. 나와 상관 없는 이들이야 순수하게 그 자체만으로 축하할 수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경우, 임신 이후 벌어질 여러 사건들에 대해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


임신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린 후, 나름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을 담당하시는 중간리더와 조용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는 내게 출산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매우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질문이라 느껴졌다. 사실 임신 자체야 모두가 환영한다지만, 그 이후의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결정이기도 하고,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되물었다. 혹시 권고사직 같은 거냐고. 

이런 말은 돌려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앞에서는 임신을 축하하고 뒤에서는 중간리더 통해서 출산 이후 사직을 권고하는 게 이 직장의 룰이라면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누구보다 나의 임신소식을 듣고 오빠처럼 축하해주던 분이기에, 이런 질문에 더욱 화가 났다. 나의 역질문에 그는 당황하며 절대 아니라고, 나의 의중을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답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의 답은 간단했다.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어요. 그게 전부였다. 

공적인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간 후, 그는 이건 그저 개인적으로 부연하는 거라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던 그의 아내가 출산 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출산 후 복귀를 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아내를 배려하지 못했다고, 모유수유를 하던 그녀는 유축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화장실에서 유축을 하고(결국 먹이지 못하고 버렸다고 한다), 몸조리가 다 되지 않은 채 업무의 복귀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강도의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고. 그래도 꽤 긴 시간 남편인 자신이 육아를 전담했지만 둘 다 다시 바빠지고 나서는 어려움이 많았고, 여전히 그러하다고. 그게 현실이라고 그저 조금 힘들거라는 말과 함께 위로를 더했다. 지나보아도 감사하고 다정한 응원이었다. 


그런 그가 같은 부서의 다른 분들에게 임신 사실이 전해졌냐고, 청소년들을 만나는 내게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물었다. 나는 답했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물론 누군가는 예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공식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그리고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다고. 만약 그 소식을 듣는다면 누군가는 과하게 나를 배려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전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나의 업무능력(?)에 대해 임신을 탓할 것이라고. 나는 그게 너무 싫다고 말이다. 

나의 대답을 듣고 아내의 말을 빌어 그가 답했다. 그렇게 말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탓할 거라고. 그러니 좋은 소식을 알리고 필요한 배려를 받는게 낫지 않겠냐고.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럴 수 있겠다고 답했다. 



둘.

 

그와의 대화를 마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부서 사람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여름 시즌에 연중 가장 큰 프로젝트를 하는 우리 부서에, 임신 소식을 전하게 되면 프로젝트에 대한 집중도가 흐트러질 것만 같았다. 무리가 될 수는 있지만, 아주 만에 하나 아이를 잃는다 하더라도 그건 나의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보다는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기도할 뿐. 

대망의 프로젝트 당일. 2박 3일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익숙한 장소가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3년여 간의 팬데믹을 마치고 거의 처음 진행되는 대형, 야외 프로젝트였다. 감사하게도 전체 총괄자인 나에게 개인 방이 주어졌고, 눈치껏 방에서 쉴 수 있었지만, 첫날은 그럴 분위기가 전혀 아니긴 했다. 

첫째 날 저녁, 우리 팀 리더가 응원 차 방문했다. 잠깐의 인사를 마친 채, 첫째 날 저녁 프로그램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문득, 팀장님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눈을 못 마주치고 어딘가 어색해진 표정. 아니나 다를까 리더가 나에게 오더니 아직 말 안했냐고 물었다. 역시, 그가 소식을 전한 모양이었다. 하필 행사 첫날, 굳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 역시 팀장님의 눈을 피해 그날 밤 모든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행사이니만큼 밤늦게까지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작 첫날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팀장님은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자 나를 서둘러 방으로 보냈다. 모르는 척 방에 들어와 바지단추를 풀고 바닥에 누웠다. 나쁘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마지막 날도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가고 오는 45인승 버스에 어쩌다보니 학생들 가득에 성인은 나 하나여서, 갈 때 올 때 약간의 이벤트가 있기는 했지만(출발하고 나서는 버스 뒷창 유리가 깨져서 가는 길에 차를 세우고 뒤에 앉은 아이들을 다른 차로 옮겨 태웠다. 돌아오는 차에서는 한명이 멀미를 심하게 해서 바닥과 의자좌석에 묻은 토사물을 치워야했다. 마스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나도 같이 게울 뻔 했다...) 그래도 무사히 프로젝트가 끝났다. 뒷정리를 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팀장님이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어딘가 촉촉한 목소리였다. 내 걱정이 많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축하를 전했다.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감사인사를 하고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 무리를 했는데 괜찮을지 걱정이 되어 왔다고 말했다. 감사하게도 걱정 말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이후로도 나는 팀장님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에게 임신사실을 한동안 비밀로 했다. 누군가는 알아차렸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배가 많이 불러올 때까지. 



셋.

나의 임신 사실은 (공식적으로) 7개월 가까이 되어서야 알려졌다. 이번 행사를 마치고, 명절이 지나고,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날 아침,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전했다. 간식을 먹던 팀원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봤다. 몇 개월이라고? 출산 경험이 있던 팀원들은 그럴 것 같았다고 웃으며 축하했고, 남자팀원들은 전혀 몰랐다며 누구 이야기냐고 웃으며 되물었다. 태명을 묻고, 예정일을 묻고, 입덧은 괜찮았는지, 상태는 어떤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그럴 줄 알았다며 본인의 경험을 떠올리며 아낌없는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따뜻하고 뭉클했다. 





넷 


이후에도 나는 임신소식을 잘 알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참을 먹고 웃고 떠들다가 집에 가는 뒤통수에 대고 아 맞다. 나 임신했어. 내년 초에 출산해. 잘가. 라고 말하고 집에 가거나 - 

야, 요즘 몸매 보니 임신해도 되겠다. 라는 말에 그냥 웃고 집에 가서 며칠 뒤 카톡으로 말하거나. 

지나고보니 진짜 별로다. 왜 그랬나 모르겠지만, 아주 만약에 또 임신을 하게 되도 임밍아웃이 쉬울 거 같지는 않다. 


© joshua_hoehne, 출처 Unsplash


저출산 시대를 지나며 두가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젊은이들이 임신을 꺼려하는 이유,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이 젊은이들의 임신을 기다리는 이유. 고작 임신소식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수없이 고민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하는 사회의 살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임신은 엄청난 용기가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일임을 너무도 잘 알겠다. 너무도 다정하고 가족적인 공동체에서조차 임밍아웃은 쉬운 일이 아니거늘. 맡고 있는 책임이기도 하고, 이제껏 해왔던 업무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고,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되어 버린 사회 자체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젊은이들에게 임신을 권하는 이유는,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며, 인생의 젊은 날에만 가능한 제한된 일인지 잘 알고 때문이리라. 


나도 모르게, 그 두 입장을 다 이해해버렸다. 부디 젊은이들의 작은 마음에 걱정 없이 인생을 그려갈 수 있게끔 더 나은 토양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미 그 삶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더욱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새 생명을 함께 품고 자라게 할 수 있는 토양을 일구어주시길 부탁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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