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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Jun 22. 2020

전업주부는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나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음을

워킹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는 워킹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유난히 많은 빨래를 개려다가 '영화를 보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어.'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IPTV로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틀었다. '역시 나는 김지영이랑 안 맞아.'라는 말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맙소사. 첫 장면에서 오열해버렸다. 김지영의 후줄근한 티셔츠, 손질 안 된 머리, 손목 아대, 화장기 없는 얼굴. 예쁨과 젊음이 옅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얼굴로 그 꼴을 하고 있으니 더 와 닿았다. 


일부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던 거울을 봐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더 싫었나 보다. 1년여 상투만 틀다가 결국 댕강 자른 머리칼도, 교복 같은 두 벌의 저지 원피스들도, 2년째 닳지 않는 립스틱도... 일하던 시절의 나와는 다르다는 모든 외적인 증거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괜찮았었는데 안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비슷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던 친구들이 복직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회사생활이 어렵다며 상담해오던 후배가 나보다 경력이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여태껏 비슷한 길을 걸어온 친구들과 옛 동료들은 나의 강력한 준거집단이었다. 그들과 같은 '부류'의 여성이라는 사실은 자부심이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퇴사를 한 후에도 그들과 같은 '부류'라고 믿었다. 여전히 직업에 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퇴사 전부터 꽤 오래 생각해온 일이었고 막바지엔 코칭까지 받아 구체화시키기도 했다. 원래 대기업의 해외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던 나는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제 나이답게 반짝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전혀 새로운 계획을 갖고 퇴사했다. 코칭의 끝에 작성한 계획표 안에는 '아이'도 있었다. 대학원 입학부터 커리어 시작까지 공백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에 본격적인 공부 시작 전에 아이를 낳으려 했다.


아이가 돌 정도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전문 학사 과정을 마무리 한 뒤에 바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돌이 지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길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수순'은 3개월의 출산휴가와 12개월의 육아휴직을 부여받은 나의 친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지금 당장 잃게 될 회사도, 월급도, 커리어도 없이 계획과 다짐뿐이었던 나에게는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떼어놓을 충분한 동기도 명분도 없었다.


내 삶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꽤 괜찮은 삶이라는 징표와도 같았던 그 '부류'에서 이탈하고 다는 느낌 '아이를 키우는 당분간'의 끝이 나에게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살갗에 매섭게 와 닿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일하는 여성의 삶을 당연히 여기고 동경하며, 육아만 하는 여성의 은 실패한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스물여덟에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가 말했다. "난 네가 일에 욕심이 많아서 결혼을 안 할 줄 알았어. 하더라도 서른다섯에는 하려나 했는데 이렇게 일찍 시집을 갈 줄은 몰랐다." 임신 소식을 전했던 그날도 나는 엄마에게 축하를 받지 못했다. 많은 말을 참아낸 뒤 심란한 표정의 "그래?"가 전부였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여자 홀몸으로 아등바등 키워냈던 자식의 행보에 대한 '실망'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엄마의 실망을 연거푸 확인했을 때 왠지 내가 실패했다는 선고를 받은 듯 느껴졌다.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여성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들의 글들을 보면 일과 육아의 양립이 한국 여성 공동의 목표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들의 심리에 대해 다룬 책에서는 늘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지 말고 개인의 삶을 지키라.'는 조언을 건넸다.


또 이름 없는 댓글창의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엄마들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왜 그 뻔한 기사에 달리는 뻔한 댓글들 말이다. '남편한테 기생하는 여자들', '집에서 놀고먹는 여자들', '애만 키우는 게 뭐가 힘들다고' 등등. 별생각 없이 마주하게 되는 말과 글이 나에게 은연중에 '여자가 아이만 키우는 것은 실패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었다.


그게 나의 세상이었다. 여성의 일할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여성들이 수행하던 주부의 역할은 성이 도맡아 하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에서 나는


당연히 워킹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는 워킹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엄마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던 관성이었다. 나의 것이 아닌 그들의 이상을 꿈꾸었다.




'이상(理想)'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앞에 단서가 하나 붙는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는 단서는 괜히 은 것이 아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고통이 끝난 뒤에 따뜻하고 묵직한 아이가 '턱' 하고 내 가슴에 올려진 순간부터 인생의 차원이 바뀌었다. 단정 짓는 것을 늘 경계하지만 단 한 가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아이를 낳기 전엔 낳은 후의 어떤 것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육아가 어떤 것인지, 아이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엄마로서 어떤 엄마일지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 아이를 낳고 난 뒤의 삶을 계획했었다.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맞벌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양식을 따르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점점 확고해지는 생각은 육아의 형태에는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그 하나뿐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육아관도 제각각이다. 각자가 처한 경제적, 물리적 상황도 제각각이다.


그 많은 값들이 곱해져 만드는 수가 어찌 집마다 같을 수가 있을까?


여태까지 살아온 것처럼 세상의 기준에, 또는 내 엄마의 기준에 맞춘 값을 산출하려면 내 아이와 나의 나다움은 정되어야 하는데 그게 바람직한 길일까?


엄마가 된 후 알게 된 것들과 느낀 것들을 되새기며 이상적인 삶을 새로 그려본다. 그 이상 속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예쁜 딸과, 연인에서 동반자가 된 남편이 함께한다. 그리고 그 이상 속에서 나는 당분간 일이나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아이의 밥을 챙겨주고 집이 집 다울 수 있게 가꾸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런 삶을 일컬어 실패한 삶이라고 하든 말든 육아와 살림에만 집중하고 싶다.

'육아와 살림에 몰입해 나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는 것' 그게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다.


나만의 세계에서 일하지 않는 엄마, 전업주부가 된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세상이 당신 삶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순간 어쩌면 당신은 가장 당신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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