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를 연신 까대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에 둘째를 다시 갖는 문제에 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내가 과연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남편이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던 차였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벅찬 데 우리가 두 아이를 키우며 무사할 수 있을까?'
"하기야 하겠지. J 때도 어떻게든 하긴 했잖아."
내 반응을 기다리던 남편이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의 평서문을 던졌다.
"그치. 하긴 할거야. 어떻게든."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출산과 육아는 아주 고약한 성미가 있다. 해 보기 전엔 단 1%도 짐작을 할 수 없고 닥치고 나면 어떻게든 해 내야만 한다. 첫째의 출산으로 그것을 알고나니 더 두려워졌다. 힘듦의 정도가 가늠이 안될 만큼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번 둘째를 가졌을 당시에는 앞 뒤 안 재고 가졌지만 잃고 나서 한 번 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떻게 둘째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남편이 요새 철이 들려는 지 나이가 먹은 건지 생각이 많아지고 말도 많아졌다. 내 별 거 아닌 반응에도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J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긴 한데, 이렇게 사는 것을 바라진 않았던 것 같아."
묵직한 직구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담으려고 했던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저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분명히 행복하지만, 그 행복은 정말 낳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정도로 큰 것이지만, 포기하고 체념해야 하는 것도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고, 어른답게 선택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그 부모 됨의 과정 속에 나는 인생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철이 들어감을 느끼지만 마음 한 구석이 항상 저릿하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살기를 바랐던 것일까?'라는 물음 때문에.
이 기억을 모두 안고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아이를 낳을 것이다. J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는 없으니깐. 하지만 '만약에' 과거로 돌아갔는데 J라는 존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출산과 육아가 내 일상에 미칠 영향은 100% 알게 된다면...
나는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