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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Jun 29. 2020

보도국을 달음박질치는 마음

안산 유치원에서 집단 식중독으로 해버거병이 발생했다


녹음실에선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녹음실은 한 평쯤 되는 작은 방인데 모든 벽을 회색빛 방음재로 마무리했다. 손바닥으로 벽을 쓸어보면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방음재의 솜털이 느껴졌다. 기자들은 좁고 어두운 이 방에 홀로 들어가 뉴스를 읽었다. 누군가는 화끈한 목소리로 프로야구 순위를 읽었고 누군가는 낮은 음계로 아들이 죽어 어머니가 울었다는 산업재해 기사를 읽었다. 모든 방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모든 칸이 꽉 차 기자들이 줄을 서면 그래서 화장실처럼 보였다. 누군가 입에 물고 있는 이야기를 내려놓고 나오면 다음 기자가 새 소식을 읽으러 들어갔다. 뉴스 한 꼭지는 보통 1분 30초 분량인데 신문기자 출신인 나는 처음에 녹음 시간만 50분 넘게 걸렸다. 시옷이 틀렸고 미음이 어긋났으며 히읗이 떨어져 나갔다. 지금은 15분 정도면 해결한다.

창문이 있는 녹음실


가끔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날이 있다.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100여 명의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렸다. 이 중 15명이 이른바 '햄버거병'이라고 불리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대여섯 살 먹은 유치원생 5명이 투석을 했다. 손바닥 만한 작은 배에 구멍을 뚫어 가느다란 줄을 넣었다. 붉은 혈뇨가 멎지 않았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어머니의 글이 올라왔다. "엄마가 미안하다. 너를 그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픈 아이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도 흐느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럴 때 세상이 드라마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상황을 견뎌내겠다는 결연한 목소리. 아이가 언제 아팠고 어떻게 병원에 갔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기자에게 소상히 전하는 부모의 목소리는 마른 흙처럼 단단했다. 사실을 확인하겠다고 괴로운 이야기를 재차 묻는 기자를 무슨 마음으로 견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픈 질문을 뱉고 나면 하루가 착잡했다.


우리 회사 뉴스는 8시에 시작하는데 이 소식은 8시 30분쯤 잡혀있었다.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하니 5시가 넘었다. 기사를 쓰니 6시가 되었다. 그런데 교육부가 학부모에게 사과했다. 기사를 고치니 6시 30분이 넘었다. 녹음을 시작하려데 대통령이 전국 유치원 전수 조사를 명령했다. 가까스로 한 줄 추가해 녹음실로 뛰어갔다. 7시였다. 뉴스는 1시간 뒤 시작하고 내 기사는 1시간 30분 뒤 나온다.


녹음실에서는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익숙하지 않은 말이 많았다. 난생처음으로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았다. 글씨 모양만큼이나 낯선 병을 아이들은 견디고 있었다. 차분히 대통령이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는 문장을 읽는데 전화가 울렸다. 부장이었다. 기사를 톱으로 올리겠다는 이야기였다. 7시 20분이었다. 톱기사는 뉴스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니 남은 시간이 30여분밖에 없었다. 고친 기사를 한 번에 읽고 편집실로 달려갔다. 달음박질쳐 철제 계단을 오르니 텅텅 금속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봤다. 20분 남았다. 환자 가족의 목소리. 보건소의 설명. 시청의 해명. 소리를 넣고 영상을 입히는데 텔레비전에서 뉴스 시그널이 나왔다. 앵커가 "시청자 여러분, 뉴스룸을 시작합니다." 말하고 30초 뒤 영상이 나와야 했다.


30초. 30분. 3시간이 아니라 5일.
무려 5일 전이었다. 확인해보니 안산의 유치원에 집단 식중독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5일 전에 제보돼 있었다. 선배가 제보를 갈무리해 관계자 연락처를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귀를 열어놨더라면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충분히 취재해 깊게 전달할 수 있을 터였다. 30초·30분을 아끼려 보도국을 달음박질 칠 일이 아니었다. 3년 전 겨울이 생각났다. 집 앞에서 미스터피자 가맹점 점주들이 텐트를 치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있어서 익숙한 출근길 풍경으로만 느껴졌다. 이들이 회사의 갑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 건 한참 뒤였다. 기자라고 명함을 파서 다니면서 눈 앞의 일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30초. 30분. 5일이 아니라 1년을 당길 수 있는 일이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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