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침묵'을 강요하는 국정교과서

서경식 교수의 「시의 힘」과 김무성 대표의 연설

by 고승혁

*이 글은 사견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란 거죠♬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_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국민일보


정기국회가 열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했다. 때마침 나는 서경식 교수가 쓴「시의 힘」을 읽고 있었다. 책 커버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시는, 문학은, 역사 앞에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있었다. 문학을 전공했고 신문기자로 일하는 나는 근본적으로 '떠벌이'기 때문에 '침묵'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침묵을 강요하는 김무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는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27종(역사부도 10종 포함)이나 되는 다양한 역사 교과서를 없애고자했다. 역사 앞에서 '정부'외에는 모두 '침묵'을 지켜야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근본적으로 '떠벌이'기 때문에 침묵을 강제하는 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72년, 나트랑 근처 적 진지 공격 중 진격하고 있는 베트남 주둔 한국 병사들. LA타임즈


군대에 있을 때였다. 장교들은 짬이 날 때면 폭이 좁은 부대교회로 우리들을 불러 '정훈교육'을 실시했다. 말이 좋아 교육이지 실상은 조악한 세뇌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베트남전에 관한 교육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진 전쟁을 홍보하는 것이 세뇌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갸우뚱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얀 스크린에는 한국군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이 재생됐다. 남의 나라에 총을 들고 들어가 남의 나라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전쟁에서 졌지만 패배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수차례 교육을 받고 나니 중대원 절반이 베트남 전쟁을 이긴 걸로 알고 있었다. 자학의 역사와 부정의 역사는 깨끗이 지워졌다. 화면에는 오직 늠름한 긍정의 역사만이 가득했다.


교육의 클라이막스는 전쟁 이후였다. 베트콩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대는 한국군의 모습이 지나가더니 급작스레 베트남의 병원과 학교 몇 곳이 스크린에 나왔다. 금관악기의 웅장한 선율을 배경음악 삼아 유명 성우가 힘 있는 목소리로 한국군의 성과를 설명했다. 우리 군대가 베트남에 병원, 학교, 교량 등 여러 시설을 지었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이 고마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월남전이 끝난 후 베트남사람을 비롯해 한국과 미국 장병들이 파킨슨 병과 비호지킨임파선암 등 18개 후유증과 19개 후유의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현재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군대가 베트콩을 많이 죽여서 자랑스럽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동영상은 한국군이 베트콩에게 학교를 지어줘서 그들이 고마워 한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플롯이 엉망진창이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학교와 병원이 필요한데, 사람을 죽이고서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


뉴라이트 안병직 교수. 연합뉴스


일본의 극우와 우리의 뉴라이트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베트남전 교육은 일제가 조선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하고 성노예 삼아 강간했지만 학교도 지어주고 병원도 지어줬으니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고마워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와 똑같았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뒤 현재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안병직 교수는 2002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제시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역사인식은 문제가 있다"며 "신작로가 뚫리고 기차가 다니고 학교와 병원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가 한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인간은 오간데 없고 돈과 효율성만 남아있었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경제에 도움만 된다면 인간성을 짖밟은 범죄 조차도 부수적인 실수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을 폭력적으로 수단화하는 게 정당화 것이다. 집단살해, 윤간, 생체실험, 고문의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지어준 학교와 병원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었다.


서경식 교수. KBS


우리를 끝없이 비인간화하는 이 시대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시와 문학의 힘이 절시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_서경식


일본의 유명 소설가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문학을 언급하며 "거기에 거의 서정시 형태로 된 그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 있었다"고 했다. 서경식 교수는 「시의 힘」에서 "시란 무엇인가,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태도가 아니다. 효율이라든지 유효성이라든가 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이 길을 걸으면 빨리 목적지에 닿을 테니 이 길을 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요컨데 이것은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 같은 원리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 「시의 힘」p110


시는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과 다른 원리로 움직인다. 경제성장에 유효하고 효율적이라면 집단학살이든 윤간이든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태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작으냐. 정말 얼만큼 작으냐……"며 나즈막히 읇조렸다. 김지하 시인도 "아직 동 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에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있다고 노래했다. 시인은 역사 속에서 거대함과 배부름이 아니라 작음과 목마름을 건져냈다. 나는 아직까지도 독재정권 아래서 '한강의 기적'운운하며 '경제 성장과 번영'을 찬미했다는 시를 본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시는 자학의 역사관과 부정의 역사관으로 뒤범벅 되어있었다. 김무성 대표가 역사모임 대신 문학모임을 했다면 국정시집을 발간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을 게 분명했다.


서경식 저「시의 힘」.트위터 side_table
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_서경식


서 교수는 정희성 시인이 2000년대에 쓴 시 한 편을 소개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제목이었다. 정희성 시인은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며 "저항은 어떤 이들에게는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도 빼앗겼다"고 탄식했다. 여기에서 "우리 같은 얼간이들"이란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상처입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시의 주어가 '소외된 사람들'이란 점은 시가 왜 자학과 부정의 역사관으로 얼룩졌는지 밝히는 핵심이다. 정희성 시인은 본인의 시를 해설하면서 "유신에 반대하던 나의 벗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다"며 당시를 "폭압적인 시대현실"이라고 회상했다. 당연하게도 "상처입고 소외된" "얼간이들"에게 역사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폭압적인 시대현실을 긍정적인 역사로 술회할 수 있는 '주어'는 과연 누구일까.



교육의 근본은 칭찬이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_김무성


김무성 대표의 연설에는 그토록 중요한 주어와 목적어가 빠져있었다. '누구를' 칭찬하고 '누구의'미래를 긍정하자는 것인지 나와있지 않았다. 친일과 독재에 부역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미래를 긍정하자는 것인지, 민주화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미래를 긍정하자는 것인지 분명하게 쓰여있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는 이미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논란이 될 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건전한 사고를 가진 국민기업(교학사)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느냐"며 뉴라이트 교과서를 옹호한 바 있다. 이 교과서를 쓴 공주대 이명희 교수는 일제의 철도건설 등 수탈사업 대해 "일제의 압재 속에 있긴 하지만 우리의 삶을 어떻게 향상시켜왔는가를 배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4.3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좀 학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등 평소 '일제'와 '독재' 치하에서 사람들이 좀 학살당했어도 '근대화'됐으니 긍정해야된다고 말한 인물이다. 김무성 대표 본인도 친일파인 아버지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애국자라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쯤되면 그가 피하고 싶은 자학의 역사, 부정의 역사의 주어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어디에선가 상처입고 소외된 얼간이들을 위해 침묵을 깨고 있을 터였다.


참고

1.[전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교섭단체대표연설… “고통분담 통한 사회적 대타협 운동 벌여야”

이전 02화"막내야, 라디오 요약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