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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금 Sep 15. 2024

오래오래 여유롭게, 된장찌개

된장찌개는 매번 실패작이었다.

그저 뜨거운 물에 된장을 푼 거 같은 느낌의 국이랄까.

퇴근하는 길, 집에 애호박도 있으니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실패할까 두려운 나는 이전에 먹어봤던 된장찌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고깃집에서 먹었던 된장찌개에는 국물이 눅진했고, 대부분의 재료들이 으깨져서 형제를 알아볼 수 없었다.

국물이 눅진했던  된장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감자.

국물에는 항상 포슬포슬한 감자가 으깨져 있었다.

유레카. 된장찌개에 감자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사실이겠지만,

그 순간 내게는 너무나도 진실이었다. 얼른 마트에 가서 감자 한 봉지를 산다.

생각보다 감자가 동그랗고 예뻤다.

이거 참 썰어 넣기 아까울 정도다.


집에 와서 예쁜 감자의 껍질을 벗겨내고 깍둑깍둑 썰어준다. 양파도 깍둑깍둑 썰어준다.

새송이 버섯도, 애호박도 깨끗하게 씻어준다.

준비 완료.

이제 필요한 건 차분한 마음, 넉넉한 인심이다.


내가 밖에서 먹었던 된장찌개들은 꽤 짰다. 그러니 된장을 듬뿍 넣자.

코인육수 한알을 넣고, 된장을 듬뿍 풀어 넣었다.

뭉치지 않도록 숟가락 두 개로 으깨주는 건 기본. 그리고 감자를 먼저 넣는다.

냉동실에서 발견된 오래된 소고기도 조금 넣어준다.


그리고 끓인다. 기다린다.

감자가 포슬포슬해져서 눅진한 국물이 될 때까지.

마음이 급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아는 잠시 내려놓는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었다. 글을 쓸 때 내가 하나의 이야기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내 이야기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다.)

회사 일이 내 멋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순간들,

글이 내 뜻대로 써지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드는 순간들,

그 모든 게 어쩌면 내 통제욕에서 나온 혼자만의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된장찌개도 마찬가지. 된장찌개를 통제하려는 것 대신 조금 멀리서 차분히,

이 된장이 물을 다 흡수해, 자작한 찌개가 될 때까지 공간을 마련하기로 한다.

자연스러운 된장찌개를 만든다.

그 사이 밥을 하고, 이리저리 정리를 한다.


얼추 찌개 속 감자가 익었다고 생각한 순간 애호박과 새송이버섯을 넣고 좀 더 끓여준다.

남편이 퇴근을 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을 때 두부를 넣어준다.


사실 아직도 글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잘 안되고 있는 건, 내가 뭔갈 잘 못하고 있다는 거겠지.

된장국을 된장찌개로 바꾸려는 마음처럼, 나를 바꿔가보기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변화시키는 게 어려운데, 그 어려운 걸 해내보기로 한다.

된장국에서 된장찌개로 변화시키기로 다짐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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