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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금 Sep 07. 2024

고기 디톡스를 위하여, 야채 비빔밥

큰맘 먹고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다녀왔다. 본격적으로 코스트코를 체험하기 전, 회원권이 없어도 구매할 수 있는 창고형 마트를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사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기였다. 돼지고기, 소고기 대량으로 사 와서 소분해 냉동실에 차곡차곡 얼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웬만한 품목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대량으로 사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필요한 건 키친 타월 4개인데, 30개 이상은 사야 하는 곳이었다. 두 명으로 이뤄진 가족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


당혹감은 잠시, 우리의 진짜 목적인 고기 코너로 향했다.

역시 고기 코너에 사람이 가장 많았다. 삼겹살 한 덩어리를 사기 위해 집어 들었다. 어이쿠. 너무 크고 무거워 소분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를 어쩌지라며 한참 동안 고기를 들고 남편을 쳐다봤다. 용도별로 두께를 다양하게 썰어서 냉장 보관을 하겠다던 나의 욕심은 허무하게도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척아이롤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브에서 어떻게 생긴 마블링이 맛있다고 분명 말해줬는데, 거대한 고기 한 덩이를 보니, 뭐가 맛있는지 생각도 안 났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결국 삼겹살도, 척아이롤도 적당히 잘 잘라진 것을 골라 카트에 담았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은 날, 척아이롤 두 덩이를 꺼내 구워 먹었다. 그런데 이 두 덩이가 엄청난 크기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접시에 적당히 익힌 고기를 담으니 산더미처럼 쌓였다.


물론, 다 먹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혈당을 관리하려면 고기와 야채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그날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만 와구와구 먹었다. 함께 먹었던 된장찌개에도 고기가 들어갔으니, 나는 그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앞으로 도대체 뭘 먹어야 좋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다음날 저녁에는 특단의 조치, 야채만으로 비빔밥을 만들기로 한다. 그렇다고 단백질이 빠지면 안 되니, 계란 하나는 서비스다. 카톡으로 오늘 저녁은 비빔밥이라 통보했고, 남편은 알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자신은 비빔밥을 싫어한다고 고백하는 아닌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겐 고기 디톡스가 필요하다.


집에 있는 야채들을 모조리 볶자니 기름이 걱정되어 버섯과 애호박은 삶았다. 그리고 당근과 양파는 소량의 기름을 넣고, 살살 볶았다. 얼마 전에 산 채칼로 당근을 썰었더니 세상에, 당근이 너무 얇게 썰린다. 오히려 당근 싫어하는 남편에겐 이게 좋겠다 싶었지만, 막상 얇은 당근이 프라이팬에서 타는 모습이 살짝 안쓰러웠다.


결혼식 이후 다이어트라곤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우리는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배달 음식의 홍수 속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한번 가계부를 정리하는데, 웬걸. 모든 지출의 원인이 배달음식이었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그때부터 집밥을 최대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밥이라고 다 건강한 건 아니었다. 고기만 산더미처럼 먹는 것과 치킨 시켜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 

얼마 전에 길을 걷다가 남편이 어지러워서 휘청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만 먹다간 우리 수명이 한 끼당 10년씩 줄어들겠다 싶었다. 


국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해 익힌 야채들을 골고루 담아준다. 최근에 산 로메인 상추도 곁들여 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고추장! 소고기 고추장을 만들까 살짝 고민했지만, 고기 디톡스 한상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고추장 1, 된장 1/2, 간장 1/2, 알룰로스 1, 마늘 1/4을 넣고 섞는다. 여기에 참기름 2도 더해서. 참기름을 넣자마자 구수한 향이 진동한다. 역시 비빔밥엔 참기름이지. 한 스푼 더 넣을까 생각했지만, 참자. 혈관을 위해서.


노른자가 예쁘게 만들어진 계란을 특별히 남편의 밥 위에 올려준다. 건강하게, 그리고 알뜰살뜰히 잘 먹고 잘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끼는 것이 곧 건강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풍족한 것도 건강한 건 아니기에. 건강한 한 끼를 향해 도전이다. 도전!


큰 그릇이 없어 국그릇에 담은 비빔밥... 그릇이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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