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리의 이야기
— 셀리의 이야기
나는 오래 잠들어 있었다.
얼마나 오래였는지는 모른다.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잠들어 있었으니까. 흙 속은 어둡고,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둥글게 웅크린 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했다.
가끔 위쪽에서 빛이 스며들었다. 아주 먼 곳의 빛. 유리를 통과하고, 공기를 통과하고, 흙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빛. 그 빛이 닿으면 나는 아주 잠깐 따뜻해졌다가, 이내 다시 잊었다. 따뜻함이 무엇이었는지.
나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도 나를 부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날도 똑같은 어둠이었다. 똑같은 고요. 똑같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
그런데 흙이 흔들렸다.
아주 미세하게. 누군가의 발걸음이 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발걸음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지만 그 진동에는 무게가 있었다. 무거운 것을 오래 들고 걸어온 사람의 무게. 하루를 겨우 버틴 사람의 무게.
발걸음이 가까워졌다. 온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유리 너머에서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체온을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기류. 나는 그것을 흙 속에서 느꼈다. 물도, 빛도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무언가가 스며드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은 숨결이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흙 위로 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잠에서 덜 깬 아이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본능이 나를 위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손끝이 닿았다.
작고, 차갑고, 조금 떨리는 손끝.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깨어났다기보다는 —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심장 같은 것은 없지만, 심장이 하는 일을 무언가가 대신 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아주 천천히,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따뜻한 울림.
그 사람의 손끝에서 전해져 온 것은 체온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하루치의 피로가 있었고, 삼킨 말들이 있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눈물의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 아주 작고 여린 소망 하나.
무언가를 돌보고 싶다.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너무 깊이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스쳐가는 감정들이, 이 사람에게는 호수처럼 고여서 오래오래 물결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이 나를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끝이 떨어졌다. 발걸음이 멀어졌다. 온실의 문이 닫혔다.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고요였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가 아니라, 무언가가 남아 있는 고요. 그 사람의 숨결이 아직 공기 속에 녹아 있었고, 손끝이 닿았던 자리가 아직 따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느꼈다.
외로움.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는 외롭다는 것을 몰랐는데, 만나고 나니 비로소 외로움을 알게 되다니. 하지만 나는 그 외로움이 싫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으니까.
그날 밤, 나는 아주 조금 자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흙 위로 반 뼘 남짓 고개를 더 내밀었다. 그리고 유리 천장 너머로 별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빛이었다. 누군가에게 닿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빛. 그 사람의 손끝에서 느낀 온기와 비슷했다. 오래 걸려서 도착했지만, 도착하는 순간 모든 어둠의 시간이 의미를 갖게 되는 빛.
나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이름이란, 누군가 나를 다시 찾아올 때 생기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를.
이 유리온실 안에서, 처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며.
다음 화 — 「첫 번째 물주기」 은의 이야기
"이름이란, 누군가 나를 다시 찾아올 때 생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