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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샤인머스캣 Apr 19. 2021

감자를 싸들고 부산연극제를 다녀왔다

공연 예술계에 바치는 찐감자,복길잡화점의 기적

원래는 부산문화회관, 부산박물관과 유엔기념공원을 산책하려는 일정으로 집을 나섰다. 부산문화회관 주차장에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 보니 전시회라도 있는가 했는데 연극제가 있다고 한다. 부산연극제라니 코로나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었구나. 당일인데 자리가 있으려나 줄을 서서 기다렸다. 1시간 전부터 현장판매 시작되어 다행히 2층 앞자리 한가운데 자리를 배정받았다.


극단 따뜻한 사람의 복길 잡화점의 기억

 

얼마 만에 보는 연극무대인가? 거리두기 좌석으로 거의 만석인 듯했지만,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바로 앞에서 예매한 커플이 심사위원 뒷좌석이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심사를 하는 자리인가 보다. 부산연극제라 함은 3개의 경연작을 심사를 하고 7월에 열릴 대한민국 연극제에 부산 대표작을 결정하는 중요한 무대.


 배우들은 무대가 오르기 전 얼마나 설렐까? 생각했는데 심사라면 떨릴 것 같았다. 이 연극은 2번의 무대 중 마지막 무대 아닌가. 소극장 이런 곳에서 가까이 보다가 2층에서 멀찍이 보게 되니 꼭 뮤지컬 보는 느낌이었다.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인한 생경한 풍경이다.


무대에 빈 의자를 보고 있으니 저 의자에 앉게 될 배우들이 기다려졌다. 관객들처럼 그들도 이 무대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다 쏟아부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한파는 길었으니까.


 시놉시스는 평생 부인을 고생만 시키다 결국 부인의 치매진단으로 정신이 돌아온 남편 경석의 개과천선 이야기를 담는 듯했다. 그는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으로 기억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내 연화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치매 잡는 해병처럼 만물상에서 일했던 기억을 통해 일상의 기억을 찾아 돌리려고 기획한다. 부인의 현재 시간 오리엔테이션이 1978년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인생사 누구나 찬란했던 시절이 없지 않겠지만, 그는 유독 영화 국제시장의 남자 주인공처럼 억척스럽게 좌판에서 사탕을 팔다가 아내와 결혼하여 만물상 가게를 차렸고 현재의 잡화점을 아내와 함께 일구었다. 아들 복길의 말에 따르면 밖에서는 손님에게 그렇게 친절할 수는 없었다고. 그래서 단골손님들도 많았겠지만, 일만 하다 보니 집에 와서는 짜증과 울화 표출로 상처 입은 가족들이 피해자로 나온다. 아들은 복길 잡화점의 현재 사장으로 대형마트에 밀려 직원 감축을 해야 했던 소상공인. 살 궁리를 위해 불여시 김주임과 함께 왕사장인 경석을 설득하려고 이를 꾸미려는 찰나에 정신 못 차렸다는 소리만 듣게 된다.


 어쨌든 무대가 다 좋았는데 발병 이틀 만에 아들조차 못 알아보는 부인의 드라마틱한 경과는 그러려니 봐야 했다. 원래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장애가 먼저 나타나고, 인지기능 저하, 공간 감각이 사라지고,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순서로 병이 진행된다. 흔히 간. 장. 사라고 한다. 시간. 장소. 사람 순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데, 자신의 외동아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설정이어서. 그런데 끝에 가 보니까 반전이 나오면서, 조금 이해가 되었다.


 치매 환자들을 볼 수 있다 보니 의학적 고증을 하면서 보게 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무대를 봐서는 연화는 혈관성 치매의 경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편마비나 발음장애, 안면마비, 연하곤란, 편측 시력상실, 시야장애, 보행장애 등과 같은 여러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하지 않았기에 그렇고, 수전증처럼 운동장애가 먼저 오고 인지기능을 저하를 겪는 파킨슨병 치매도 아닌듯했다.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짠했기에 성격 변화가 두드러지는 전측두엽 치매도 아니었고,  예쁜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극 중에서 경석이 연화에게 왜 이상증세를 알리지 않았냐고 타박하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알츠하이머형 치매라면 워낙 천천히 진행되기에 본인은 잘 모를 수 있다. 가족이 관심을 갖고 알아차려야 하는데 생계를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왔으니 가족으로서 너무 무심한 것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경석이 알았어야 할 치매 초기 증상 3가지

 가족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치매 초기 증상 중 하나는 기억력 장애이다. 단순한 건망증 정도는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되는 심한 단기 기억장애가 온다. 이때 장기기억은 보존된다. 특히 어떤 단서와 힌트를 줘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 장애. 극 중에서 경석이 1978년 그 날에 당신 생일에 우리 코끼리 앞에서 사진 찍은 것 기억이 안 나?라고 힌트를 주는 것처럼. 1978년은 장기 기억이기에 초기 병의 특성상 장기 기억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늘 해오던 익숙한 일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극 중에서 연화가 끓인 된장찌개에서 리모컨이 나온 장면처럼, 가정주부가 음식을 잘 못 만들고, 음식의 간을 못 맞춘다던가. 평생 해오던 계산하는 일에서 실수가 반복될 때 의심할 수 있다. 이 부분은 극작가분이 잘 그려냈다.


 마지막으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지금이 몇 월인지 잘 모르거나, 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길을 헤매거나 잃어버리는 경우처럼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지남력이 상실될 때 치매 초기 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겠다. 사람에 대한 지남력 상실은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니라 말기 증상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치매 초기 증상을 겪는 발병 후 3년 정도까지는 최근 일이나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중기인 발병 후 8년까지 시간과 장소 지남력 저하, 표현력,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게 되고, 옷 입기. 몸단장, 식사하기, 전화하기 등 간단한 일상생활 동작 수행에도  어려움이 벌어진다. 대략 말기(8~12년)에는 대부분의 기억이 상실되어 사람에 대한 지남력이 상실되고, 자신의 얼굴조차도 못 알아보고 심지어  거울을 보며 인사하는 단계. 대소변 가리기 것조차 안 되는 상태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치매가족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던져주는 시사점

경석의 손녀인 소리는 화장 가르쳐 주는 엄마가 없다고 말하며 이런 것으로 기죽이지 말라는 귀여운 캐릭터. 이번 생은 글렀다고 말하는 딸은 중학생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매력적인 복덩이.


아들 복길은 병으로 부인을 사별한 가장이었다. 아버지에게 치매를 간병하는 것이 쉬운 줄 아느냐며 왜 지금 와서 이러냐며 아버지가 어머니에 잘해주려는 그런 변화에 울화통이 터지며 엄마를 병원에 모시라고 성화다.


복길잡화점의 기적은 고령화 사회에 우리에게 닥칠 치매 진단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이 보면서 치매가 남일같이 않게 와 닿았을 것 같다. 치매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등의 인지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스스로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가 된다. 치매 진단을 받고 난 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경석이 연화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지며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보듯이.

치매예방에 대한 칼럼은  전에 다룬 적이 있어 참고하시면 되겠다.

https://brunch.co.kr/@sangsooleemd/81


평생을 일만 하다 살아온 가족의 비극이 어째서 잡화점의 기적이 펼쳐질까? 그 기적이란 다름 아닌 00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00은 누구일지. 극을 보시면 풀리리라. 1978년의 시공간은 두 사람 모두에게 되살리고픈 아름다운 장면의 기억이 머무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경석은 아내에게 고생만 했구려. 자네가 있어 행복했다는 독백을 하며 사랑했던 부인과 보냈던 가장 빛났던 순간을 회상한다. 교련복을 입고 다닌 경석을 기억하며 교련복을 간직했던 연화. 경석은 그 교련복을 입고, 연화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을 바라보고 웃음 짓는 젊은 시절 연화의 모습이 무대 위쪽 장치를 통해 비치는 장면. 그렇게 우리 마음속 기억이 소환되어 만나는 장면은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건강하고 살고 싶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이 필요하겠다. 미래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면, 나의 미래를 아름답게 바꾸는 통찰력에 대한 칼럼도 읽어보시면 좋겠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1956465&memberNo=23841638&navigationType=push


무대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내 삶의 무대에서 내려올 것이다. 주인공으로 책임지면서 살았다면, 누군가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의 자발적인 반응이 좋았던. 서커스 장면의 웃음도 선사했던 아름다운 연극이었다. 치매라는 문제에 대해 이런 연극 한 편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과 사회적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 만든 스태프들(연출 허석민)과 배우들을 칭찬해 주고 싶다. 공연 예술계에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진 깊은 맛의 찐감자를  바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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