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서 완벽한 사랑스러움의 비밀

by 통통샤인머스캣

누구나 천진난만한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못난 부분에 주목하지만, 우리는 원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잠시 아기의 미소를 떠올려보라. 생존을 위해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적 미소라고들 하지만, 대가 없이 순수한 감성적 미소에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반응한다. 아기였던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도 분명 그 시절에 그런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은 존재로서 완벽하다’고 했었다. 스피노자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존재 그 자체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도 알고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며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는 태도를 마음 깊숙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면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다. 그런데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는 노력, 즉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더 많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보상 욕구들이 더 커진다. 자기 스스로 채워야 할 그 빈자리를 남이 대신 채워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관계에 집착적으로 매달릴 수 있다. 남이 그런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그런 기대를 갖고 있는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며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자신을 긍정하지 않은 채 타인을 긍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신문 기사에서 혐오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극히 혐오스러움‘의 줄인 말인' 극혐이야'며 자신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배타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쏟아붓는다.극한 혐오감은 상대방을 적절히 의미 부여하지 못하고 타인의 다양성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어쩌면 자신의 공감능력이 바싹 메말라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언뜻 보면 자아이미지가 확고한 것 같지만, 혐오라는 지나친 감정에는 자신과 나와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와 비슷한 모습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며, 상대를 지나치게 공격하며 매도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자신에게 있는 좋은 면보다 자신의 단점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극히 혐오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자아이미지는 불안정하며 극단을 오가는 그런 부정적인 경우를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의 요소가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있음을 알고 당황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 자아이미지를 수용할 때, 남의 불편한 점도 이해할 수 있는 관용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런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고, 타인을 혐오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받는 불필요한 상처는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공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한 단계 거쳐야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처럼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놓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존재다.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며 세워가는 마음매력 리모델링

자아이미지의 긍정은 어떤 수준까지 이뤄져야 할까? 현재 자아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을 갖춘 자신의 모습에서 변화하고 싶은 모습인 이상적인 자아이상(ego ideal)의 기대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내 모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을 수용하고 이를 토대로 어제보다 조금 낫게 바꾸는 것이다. 완전 재건축이 아니라, 부분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정도가 적절하다는 말이다.


일찍이 노만 빈센트 필은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다. 반성하고 사고하고 노력하는 것이 참된 자기 자신이다’는 말로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참된 내 모습은 무엇인가? 타고난 사랑스러움을 바탕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향해서 조금 개선시키며 완성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자신만의 마음매력을 발휘하도록 자신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자아이상을 염두에 둔 참된 내 모습을 찾게 되면,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당장은 조금 부족해도, 남에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와 같이 외적으로 보여지는 그런 탁월한 조건이 없을지라도 자아이미지를 아름답게 바꾸는 여정을 시작하며, 자신에게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고마움을 추려내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겠나?’ ‘내가 뭐 그렇지,’ 자조적인 내면의 언어가 올라와도 개의치 않고, 자아이미지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자아이미지를 회복하려는 태도를 가지려는 오늘의 결심이 매우 중요하겠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라며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신과 동일한 존중의 가치를 부여하셨다. 이런 논리가 가능한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처럼 창조했다는 성서의 근본적인 믿음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자라도 하나님과 동격의 대우를 받을만하다는 말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성찰을 다시 하게 된다. 사람을 그런 가치로 존중하고, 우리도 자신을 그렇게 대우하면서 그런 가치에 합당하게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참된 도덕적 가치에 따라 살게 된다면, 우리 안에 어쩌면 고귀한 신의 형상이 이뤄질 것이다. 귀하게 여기면 귀하게 되는 법이다. 품격 있는 사람의 수준을 어디까지 높을 수 있는가? 삶의 질을 논할 때 품격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보다 더 큰 혁신은 없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 대한 대우를 하나님을 대하듯 그렇게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의 차원으로 보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인권이고 뭐고 없었던 2천 년 전 당시에 상당히 파격적인 선언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태인의 종교 지도자들이 어느 날 불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데려와 “모세 율법에는 이런 사람을 당장 돌에 쳐 죽이라고 나와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거냐?”’면서 즉결처분을 피하게 될 발언을 할 경우에 100% 말의 올무에 빠질 것을 예상하며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했다. 군중들이 어떻게 대답할까 지켜보는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면서,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게 함으로, 그들을 조용히 물러가게 하셨다. 예수님이 그런 여인에게 다가가 전한 말은 더욱 인간적이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말라며 공동체로 돌아가 삶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다. 당시 극혐의 대상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는데, 예수님은 유태인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극혐의 당사자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뭘 하는지 모릅니다.'라며 최후의 순간에도 극혐의 무리들을 변호하셨다.


스피노자의 존재 자체로 귀하다는 말과 같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존엄한 가치가 있다는 말은 바로 나를 좋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가치 있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이미지에는 창조주가 만든 명품으로서의 본래적 기대, 즉 자아이상이 숨어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 욕동을 가진 것은 우리가 욕망을 갖고 태어난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실 원래부터 괜찮은 사람이고, 충분히 뭔가에 도전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는 재능과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있는 기본적인 선량함,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이유 없이 친절할 수 있는 타고난 선한 본성 등이 그런 조물주의 형상 일지 모른다. 자아이미지에는 자신의 타고난 선한 잠재력의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선하고 현명한 자아를 찾아내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이루며 보다 풍요롭고 품격 있게 삶을 만끽할 책임이 있다.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는 마음매력의 리모델링 작업은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자아이미지를 긍정성을 구현하는 삶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적절한 자아이상을 바탕으로 나의 이상적인 모습과 일치된 행동을 해나가면서 우리의 가치관대로 도덕적인 선택을 해나갈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품격 있게 지켜내며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고 소박한 일들에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때, 일상적인 경험이 의미 있고,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오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아이미지를 긍정하며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다스려 나간다면,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마음매력적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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