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모임 세 번째. 창조성을 왜 회복해야 하는가
03 1코노미인에게 창조성 회복이란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창조성(creativity)을 다룬다.
창조성 회복이 1코노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내 안의 검열관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티스트 웨이의 창조성 회복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면의 검열관이라는 방해자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실질적인 문제를 맞닥뜨렸을 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는다. 최고가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어. 자신이 없으면 할 필요가 없어. 이미 잘하는 사람들 있으니까 나는 안될 거야. 순수 예술, 사업, 취미 등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검열관은 나타난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형편없는 것이 당연하고 또 괜찮은 것이다. 검열관을 인식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나답게 살 수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나를 찾지 못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그 색을 입지 못하고 다른 옷을 입는다면 불편함과 불만이 생기고 나아가 인간은, 나는 무엇인지 고뇌하기에 다다른다. 답을 얻기 위해 삶을 되돌아보거나 명상을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나를 찾기 위해서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나 찾기 위한 실마리를 알려준다. 내가 원하는 것(=나)을 찾아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티스트 웨이가 나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 염려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을 찾고 나면 누구나 내면에 있는 아티스트를 깨닫고, 방법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라 여겨진다. 이런 과정을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내 결과물로 이어진다.
작가들 사이에는 인생 키워드라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이 궁금한 것이나 마음속에 품은 질문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인생 키워드가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선택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다. 내 글에는 언제나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선택을 통해 올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과연 올바른 답만을 도출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넓게 받아들인다.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예술이나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창조성을 키워야 한다고 느낀다. 호불호가 명확하고, 파악이 빠른 나는 세상에 정보가 충분하기 때문에 무엇을 대할 때나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새로운 것을 대할 때도 선입견에 맞추어 이해하다 보니,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이미 머릿속에서는 정리를 하고 있다. 넓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창조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
아티스트 웨이는 워크북이고, 창조성에 대한 개념, 회복을 위한 방법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비록 저자가 그 효능을 증명하기 위한 사례나 현상도 언급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그 방법을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 ‘아티스트 웨이’가 창조성 회복을 가져올지가 명확할 때 그 과정이자 결과인 창조성 회복의 효과가 의미가 있기에, 형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게으른 사람은 창의성 회복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테드 강연 중 게으름과 창의성(originality)을 다룬 내용*이 있다. 학생들이 강연자에게 투자를 요청하려고 찾아왔지만, 강연자는 일의 진척이 너무 느린 것을 확인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다. 몇 년 뒤에 사업은 성공했고 심지어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흥미를 느낀 강연자는 창의적인 사람을 분석한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이 적당히 게으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빠르게 진행해버리면 창의성이 발현되기 전에 끝이 나고, 너무 미루면 기한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적당히 게으를 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게으르고,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테드 강연을 들었을 때 내 이야기를 듣는 듯하여 공감을 많이 했다. 나태함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좋아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 페이지를 하려면 아침에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뭔가 써야 하고,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2시간씩 시간을 내서 돌아다녀야 한다. 과연 규칙적으로 이런 미션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창의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개념이 비슷하게도 다르게도 느껴진다.
* 애덤 그랜트, 독창적인 사색가의 놀라운 습관들, TED2016.
허락된 게으름과 두려움으로 인한 게으름
혹시 창의를 가지고 오는 게으름은 스스로가 허용한 게으름이 아닌가. 자발적으로 생각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당장에 하지는 않아도 됨을 인정하기에 누리는 게으름 말이다. 난 내가 게으를 때 두렵고 불안했다. 문제를 회피하는 기분이 들었고 곧 자책을 했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이렇게 게을러도 괜찮을까. 게으름까지도 포용을 해야 할까. 그런 딜레마에 빠져 불편하고 힘들었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내가 직시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루는 게으름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 게으름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즐기거나 자발적으로 유지하는 게으름과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억지로라도 아티스트 데이트를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필요한 까닭은, 지금까지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비효율적이고 목적 없는 돌아다님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웨이가 창의성을 얻기 위한 초보자를 위한 지침서라고 생각한다면 두 개념이 상충하지는 않을 것이다
쉬는 시간의 의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꼭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고, 체력이 고갈되면 비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왔었다. 꼭 쉬는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아티스트 웨이에서 추구하는 것은 나와 질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모닝 페이지나 아티스트 데이트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일부이다.
책에서 모닝 페이지를 반드시 손으로 쓰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손을 움직이다 보면 아날로그 자체의 힘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말로는 꺼낼 수 없어도, 글로 쓰니까 가능한 말들이 있다. 욕, 억울함과 같은 내면의 생각들. 이 작업들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주어진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창의성이나 창조와 같은 능력들은 외부보다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구분하고 또 나를 발견하고 격려하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아티스트 데이트의 목적 또한 일주일에 2시간이라는 형식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일주일마다 정해진 시간을 위해 꼬박꼬박 잘 기획하고 챙겨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미술관을 가도 괜찮고 혼자 산책을 해도 좋고. 나와, 나 자신과 만나는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을 하지 않거나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충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알뜰한 사람, 게으른 사람, 목적 지향적인 사람 여유를 누리는 사람 관계없이 각자 자신만의 일상이 있다. 자기 삶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부분, 발전할 수 있는 부분에서 시작하여 걷다 보면 창조성으로 향하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규칙이 주는 힘
자기만의 방식이 이미 있는 사람이 아티스트 웨이의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다. 반면 그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일주일에 2시간씩 한다고 정하는 원칙이나 의식이 필요하다. 오늘 이 모임에 나오기 전까지 귀찮은 마음이 컸다.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왔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가지 말까 고민했다. 막상 와서 앉아 있으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이 경험을 한 것이 마음에 든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강제적인 규칙이 있어야 그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아티스트 웨이는 그러한 규칙이다.
아티스트 웨이가 내 성향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창조적일 수 있다.
내 안에서 답을 구한다.
내 주변에는 모닝 페이지를 몇 년 동안 쓴 사람이 있다. 그분은 꼭 세 페이지씩은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모닝 페이지를 좋아한다. 오히려 나에게 이 책을 이제야 봤냐면서, “어법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도 돼.” 란다.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었을 때 이런 모닝 페이지가 큰 의지가 되었다고 한다.
매일매일 아침에 회사에 가자마자 모닝 페이지부터 시작했단다. 오히려 직장인이라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쉬웠다고 했다. 모닝 페이지를 쓸 때는 내면에게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혼자 답을 찾고. 밖에서 멘토를 구하고 조언을 찾으려고 하면 휘둘리는 경우가 생기는데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과정을 몇 개월 이상 쓴 사람들이었다면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 창조성을 회복하고 있는 중임을 알고 있는가.
창조성이란 무엇일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만이 창조성일까? 잠깐 뜬구름을 잡아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밥만 먹어도 에너지가 생긴다. 존재하는 모든 활동에 창조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창조성 회복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저자는 내내 모닝 페이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닝 페이지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고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그치든 침대에 누워있든 이 모두 창조성 회복을 위한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활동을 창조성 회복이라고 인지하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지.
1코노미인이 되고 싶다 - 창조성
03 1코노미인에게 창조성 회복이란
04 나는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가
킴은 2~3년 동안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관계와 생각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빠르게 읽고 나눠야 했던 개념들이 혼란스러워, 지금은 모임을 쉬고 글을 정리하고 있다.
그 당시에 몰랐던 이야기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