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 回光返照

글 김작은, 사진 @am_i_being

by 김작은
회광반조: 해가 지기 직전에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현상이다. 죽음 직전의 사람이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촛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한 차례 크게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 한 예이다. 불교의 선종에서는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선하여 진실한 자신, 불성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촛불이다. 오감 중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이 네 가지 감각을 이용해서 느낄 수 있어서일까. 환해지는 순간, 작은 불꽃의 화르륵 소리가 나며, 뜨겁고, 탄 내가 난다. 확고하게 죽음의 미래를 알면서도 자신살아있노라고 주장하는 형태가 확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살아있노라고 확실히 삶으로 외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외쳤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기도 찾아왔었다. 그때 나는 이 단어를 떠올다.


회광반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무얼 해야 할지 찾지 못해서 나의 심지는 밀랍으로 덮여 있었다. 시간과 타인들은 내가 무얼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듯 밀랍을 파헤치고 나의 심지를 드러냈다.


가족 구성원에서 벗어난 시간과 타인들은 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교회나 군대, 일터까지 확장됐다. 수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과 선배들, 동료, 선임들을 만나며 ‘차이’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내 행동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자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거울이 되어 ‘나’를 바라보게 했으며 그것이 ‘심지’를 발견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겨우 드러난 심지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처음 불씨를 붙인 것은 집 앞 골목에서 아저씨 두 명이 싸우는 사건이었다. 동네가 시끄러워 사람들이 웅성대며 나오기 시작했고, 엄마와 나 역시 집 앞으로 나와봤다. 산책시키던 강아지의 배설물 때문에 벌어진 다툼이 육탄전까지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싸움이었다. 별게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몸이 약한 엄마가 뛰어들어 말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엄마가 다치실까 두려워 서둘러 싸움을 말리고 엄마와 함께 집에 들어왔다. 무모한 행동이었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싸우는 주체들보다 방관하고 있는 주민들을 비판하며 분노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외면하며 방관했는지를 돌아봤다. 그때 불씨가 살아난 것 같다.


나의 밀랍을 벗겨내는 칼은 '타인에 대한 인식'이었고, 불을 붙인 불씨는 ‘타인과의 조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에 붙은 불은 '깊은 관계라는 감정'으로 더 크게 타올랐다. 그 감정은 가족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고, 친구의 변치 않는 우정이었으며, 한 사람에게 집중한 연애 감정이었다. 스스로에게 불꽃이 없어도 함께 있기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온 힘을 쏟았던 6년의 연애는 가장 화력이 좋았다. 엄청나게 활활 태우는구나, 나에겐 이 시기가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때구나, 그 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 활활 타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 불이 꺼진 것이다.


타야 할 심지와 타버린 심지. 타야 할 심지는 소망을 보게 하지만, 타버린 심지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늘 양립하는 감정과 상황이 존재하게 된다. 어찌 살아야 할까. 함께 삶을 고민하는 형이 있는데, 그는 삶을 '몸부림'이라고 표현한다.


어쨌든 현재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말 그대로 몸부림을 치다 보니, 불이 꺼진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탄 부분은 흑연처럼 삶의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했고, 덕분에 나는 모든 경험의 흔적들을 남기기로 했다. 지나간 일기들로써.

분명 지나간 흔적들에는 아픔과 상처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지나가 버렸다는 상실까지 더했다. 바라보고 있자니 아직 다 타지 않은 심지까지도 발견했다. 나는 아직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심지를 모두 태워 회광반조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요즘 떠오르는 욜로족의 삶처럼 마냥 즐기기에는 그 간의 인류 역사는 단순하지만은 않았으니, 재미도 중요하지만 진지함만큼은 잃지 않고 싶어서 글을 쓴다. 삶을 살아가며 선을 향해 사는 것도, 즐기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모든 것이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잘 해낼 수가 없다.


커다란 영생에서 보자며 찰나의 인생 자체가 회광반조의 촛불처럼, 태양처럼 몸부림을 치는 건 아닐까.


담담하게. 진지하게. 가득 찬 질량으로 무중력의 세계인 마냥 부유하며. 그리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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