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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Oct 26. 2024

널브러진 기타, 어른이 되지 못한 나.

“미친 소리야.”


낡은 책 방에서 갑자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나에게 마음속으로 소리쳤던 말이다.


어떤 의미로 이 말을 나 자신에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아마 불안함이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본다.


답이 나올지는 모른다.



나는 충동적인 사람이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고 랩을 하고 싶어 했다.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하고, 언젠가는 드렁큰 타이거와 같은 음악가가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음악을 10년 가까이 사랑했다.


그리고 이 음악으로 나에게 그 어떠한 비전도 보이지 않자, 나는 음악을 포기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아마 그때보다 나는 음악을 더 사랑한다.


방에 홀로 앉아 멍하니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틀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나는 문신이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


특별한 비전과 혹은 나에게 재능이 있어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 철부지 시절부터 문신을 받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연장선으로 나는 중학교 이후로 들지 않았던 그림을 위한 연필을 들기 시작했고, 문신 기계를 들고 사람들의 몸에 그림을 그렸다.


3년 가까이 그렸다.


그리고 나에게 남아 있던 것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심해진 우울증과 조현 증세, 공황장애뿐이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도전했고, 보기 좋게 전부 다 실패했다.


아, 남아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문신으로 꽤 가득한 나의 양 팔과 다리, 목이다.



나의 도전과, 나의 사랑의 결말은 여느 슬픈 결말의 짝사랑 영화, 혹은 드라마처럼 다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와는 달리 삶은 엔딩 크레디트가 없다.


실패가 나에게 노크한다면, 이제는 그 실패의 결괏값을 나의 어깨에 지고 다시금 자욱한 매연이 가득한 현실이라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삶이리라.



그런데도 다시 글을 쓰고 싶고, 심지어 책을 출판하고 싶다니.


이미 수차례의 실패의 짐을 어깨에 맨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일 것이다.


미친 소리이며, 어쩌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이제는 완전히 실성했구나 하며 내뱉는 조소의 축약이 이 글 서두에 쓴 말이었으리라.



심지어 앞 길도 어둡다. 나에게는 지금 수 천의 빚이 있으며, 퇴사를 하여 현재는 백수이고, 취업 제도에 선정되느냐 아니냐가 나의 앞으로 수개월을 가를 것이다.


과연 내가 지금 꿈을 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사실 내가 얼마나 초라해지고 가난해져도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에 따라 갈리겠지.



이미 수많은 작가가 글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수차례, 수십 번 유튜브와 매체에서 떠들어댔지만 지금 나의 마음속에 이 열망이 차오르는 것은 그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스물아홉의 어린아이의 치기인지.


혹은 아직 끓어오르는 창작욕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척박해진 땅을 보기 싫어 그 땅에 누워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이상주의자의 독백인지.


아니면 방 한구석에서 입에 담배를 물고 머리를 쥐어 짜내며 글을 완성해가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가 지금 동경하는 것인지.


지금의 나는 이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나는 가래가 끓어오르는 기침을 억지로 참아가며, 음악을 틀고, 창가에 놓은 재스민 화분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며 노트북을 켜고 글을 적을뿐이다.


어느 글은 솔직하고, 어느 글은 불쾌할 수 있겠지만, 조심스레 생각을 다듬어 자판을 두드린다.



6평 작은방 안에서 나는 소리는 오래되어 가끔 지지직거리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와, 타닥 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뿐이다.


잠시 후 외출할 때는, 나는 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까?


잠시 후 사람들과 만날 때는, 그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애매한 재능이라는 것은 저주받은 것이지만, 혹여나 나에게 그 애매한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저주를 기쁨으로 맞으리라.


글을 쓰는 것이 예술이라면, 예술은 결핍과 탐닉으로써 발전된다면,


나는 충분히 결핍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숨소리 하나를 눈을 감고 탐닉하리라.


실패의 기록에 다시 흉터 하나를 내 마음의 칼로써 새기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실패의 흉터마저 나는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온몸으로 맞으리라.


나는 추구해야 살아갈 수 있다. 나에게는 이상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 결과의 열매가 어떠하던, 나는 감사하며 맞으리라.

값싼 기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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