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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Dec 14. 2024

너는 사랑할 수 있어?

이십 대의 마지막

이십 대의 마지막이 보름 정도 남았다. 이제는 이십 대가 아닌 서른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득 드는 질문은, 나는 나의 이십 대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꽤 많은 사랑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나의 이십 대를 사랑했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꽤 많은 도전과, 꽤 많은 실패를 겪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나의 이십 대를 절실히 사랑했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십 수년을 아팠던 정신병이 나았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공황 발작이나 꽤 지독한 우울증 증세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나의 이십 대를 온전히 사랑하였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아직도 나에게는 사랑은 어렵다. 어쩌면 나는 제대로 사랑을 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사랑은 상처와 귀결되었다. 사랑은 나에게 빚을 지게 만들었으며, 때때로 생활고에 시달리게도 만들었고, 깊은 상처와 우울을 주었다. 서로 다쳐 울다 지쳐 서로를 안고 자는 날이 많았고, 서로의 몸에 상처를 내게도 만들었다. 비단 이성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꿈을 사랑하였으나, 꿈은 나를 배신했다. 음악가의 꿈, 예술인의 꿈, 여러 꿈들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였으나 내가 배운 것은 꿈과 노력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극 소수의 행운아들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꿈은 나에게 꽤 많은 것 들을 앗아갔다. 돈을 빼앗아 갔으며, 건강을 앗아갔다. 이제는 육체노동도 하지 못하는 허리와 목, 다리를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 통장에는 3천만 원 이상의 빚이 있다. 올 2월에 본가에서 독립하면서 받게 된 전세대출 7천2백만 원을 제외한 금액이다. 꿈에 몰두하여 친구를 잃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우정은 결국 그 우정의 빚을 바라게 만든다. 이전에는 꽤 선명하였던 우정인 것 같았으나, 이제는 그 빛이 상당히 바래졌다. 문득 연락을 하기도 미안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선명했던 추억이 어느새 그들에게는 가끔 술 한잔과 함께 떠오르게 되는 바랜 기억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했을까?


하는 질문에 잠시 머뭇 거디라가 나는 대답한다. 그래, 나는 사랑을 했다.


어쩌면 나는 열렬히 사랑을 했다. 나의 이십 대 전체가 사랑스럽지는 않았을 수 있으나,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려 노력했다. 모든 삶의 종결을 마주하리라 양화대교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았을 때마저, 나는 사랑하려 했다. 꿈이 나를 할퀴고, 과거의 상처가 칼날이 되어 나의 목 끝을 겨누어도, 나는 단 한순간도 사랑하려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더 나은 내일을 마주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고자 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까딱하면 공황 발작이 괴롭히는 그에게 내일을 마주하라는 것은 폭력이었기에, 그저 오늘 하루, 눈을 뜨고 다시 감는 그 순간들 정도만 살아내고자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좋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때는 몰라서 그저 나쁜 기억으로만 남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그 모든 순간들 앞에 나는 최선을 다 했다. 나의 최선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 주리라는 것은 욕심이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후회만 남기고자 나는 내달렸다.


사랑은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했던 사랑은 피비린내였다. 내가 받은 사랑은 피비린내가 났다. 그 모습과 향기를 모르는 사람이 코를 가져다 대었을 때 흠칫 뒷걸음질 칠 수도 있는 피비린내가 났다. 나는 피 흘리는 와중에도, 당장 오늘 밤,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었을 때 삶을 마무리하자 다짐하였을 때도 사랑을 했다. 나는 누군가가 안을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사람일지라도, 다른 부서진 이를 볼 때 그를 안으려 했다. 최소한 그가 외롭지만은 않기를 바랐다. 같이 울고, 같이 그 피비린내를 나누었다. 치열한 향기가 가득한 방 안에서 우리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바라보다 창 밖을 보았다. 새벽 네 시의 방 안에서 밝게 비추는 달을 보면서 우리도 두 개의 불빛을 피웠다.


살아가자, 우리 하루만 더 살자, 그리고 그 하루가 또 우리에게 칼날을 겨눌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달로 가자 속삭였다. 그렇게 나눈 꿈은 어쩌면 서로가 그렇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각자의 신에게 드린 기도가 아니었을까, 아주 작은 울음소리도 들으시는 그에게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드리는 기도였을까 싶다.

슬프게도 그 사랑은 서로를 부수었다. 더 잘게 부수었다. 서로의 상처를 헤집어 놓고 서로 안타까워했다. 망가진 사람이 망가진 사람을 살린다는 말.

 

영화 "The Guilty"의 마지막 대사

“Broken people save broken people”

라는 말은 영화니까 가능했던 말이었을까. 망가진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죽여버리고서야 멈출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부서진 가슴을 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가 빛을 보았다. 서로가 더 이상 서로의 우리가 되어 주지 않기로 한 몇 달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는 서로가 이전보다 덜 망가졌음을 보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하였는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가 조금씩은 더 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옅은 미소와 어색한 웃음으로 가득 찬 삼십 분 남짓의 대화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가 이전보다 훨씬 더 평온해졌음을 알았다.


하나의 사건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나의 이십 대를 관통하는 사건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상처를 받았고, 당연히 부서졌고, 당연히 무너졌다. 당연히 죽음의 문 앞에 서 미친 사람처럼 그 문을 두드리며, 그 문을 열기를 읍소했다. 그러나, 살았다. 그러나 살아내었다. 그리고 이제 이 십 년을 보내야 하는 순간이 가까워지고, 모든 날들을 톺아보며 모든 순간에 인사를 건네었을 때, 그 모든 망가진 순간들이 망가진 나를 도왔음을, 전부 망가졌던 날들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지금의 나는 생존했다. 그리고 지금 치열히 살아내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기로 하였으나 수십 통의 이력서가 거절당하고, 무직인 상태로 한 달가량을 견디며 나는 다시금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단 한순간의 기록도 놓치지 않기로 한다. 단 한순간의 기록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의 남은 이십 대의 보름에 대한 예의일까 싶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서른이 되었을 때, 괜한 부담을 가지지 않기로 한다. 서른이 되었을 때, 괜한 힘을 주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는 늘 그랬듯이 무엇인가를 만들 것이다. 늘 그랬듯이 무엇인가를 기록할 것이고, 늘 그랬듯이 무엇인가에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사랑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서른이 되고, 마흔까지 또 십 년의 마라톤을 달린다. 나는 눈앞에 출발선이 아른거리는 이 마라톤을 사랑할 것임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사랑을 놓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비참함과 고통의 인고의 시간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그 틈 사이의 아름다움을 놓지 않을 것이다.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나, 그 삶을 살아내는 나는 아름답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거나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대의 삶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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