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은 마음이 느긋하여 좀 늦게 일어났다. 아이 픽업을 안 해도 되니 등하교 시간마다 긴장하며 운전하던 주 5일의 고단함에서 좀 놓여날 수 있다. 매주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힘들어서 이번주는 본집에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몸은 매우 편안해 졌는데 문제는 도둑맞은 내 집중력이 특히나 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보내게 한다는 것이다. 느긋함이 산만함으로 치환되면 안되는데 말이다.
인스타그램의 지인들 소식 좀 보고 내 게시물에 댓글 좀 달고, 궁금한 것들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책을 또 주문하고 먹을 것도 주문하고 그러다보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거기에 써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브런치를 시작하고는 관심 작가들의 글을 읽는 시간도 추가되어 폰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엄청나다.
집중 시간이 너무 짧아지고 산만해지니 각잡고 앉아서 진지모드로 써야하는 중요한 글쓰기 과제를 계속 회피하고 있다. 데드라인이 내일인데 어떡하지. 모범생들은 벌써 제출했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기며 글을 쓰는걸 보면 질투도 나고 조바심이 드는 동시에 '비교될 것 같아서 하기 싫다'는 마음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잖아~~ 증맬루.
부정적인 생각은 지워버리고 나에 대해 다시 쓰겠다고 결심한 게 며칠이나 되었다고 또 이러는지 참. 나약하디 나약한 내 유리멘탈이 야속하다. 될 때까지 그냥 한다는 마인드, 못난 나라도 인정하자던 셀프 가스라이팅 효과는 그새 다 사라져 버린건지. 개선이 필요한 나쁜 습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은 카페인 충전이 필요했다. 이제는 중3인 딸도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서 드립백을 넉넉하게 내려 두 잔을 만들었다. 시골집 살림은 세트로 갖춰진 게 없이 이리저리 급조하다보니 하나씩 중구난방으로 모아놓은 식기들이 많다. 뭐 어떤가. 시골살이 하면서 바뀐 마음가짐이 욕심 버리고 소박하게 생활하기와 허용 범위 넓히기.
'괜찮다, 이게 뭐 어때서. 이만하면 됐지 뭐.'의 태도로 상황을 마주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심하게 단조로운 생활도 익숙해졌고 식사도 두 사람 분만 만들어 먹으면 되니까 재료들을 어떻게 소비할지, 뭘 넣고 어떤 요리로 만들어 먹을지의 규모가 바로바로 그려진다. 장을 많이 보지 않아도 되고 과일이며 반찬, 간식과 주식의 메뉴를 생각하기도 쉽다. 그럼에도 충동구매로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잦은 나쁜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밀키트도 너무 잘 나오는 세상이 되었고 식단을 위한 재료들도 정말 다양해져서 내 구매욕을 자꾸 자극한다.
오도이촌이 아니라 오촌이도(5일을 시골, 2일을 도시)의 생활로 두 집 살림이 되다보니 나는 나대로 딸과의 생활, 남편은 남편대로 아들을 챙기며 둘이서 사는 생활이 되었다. 처음엔 힘들고 낯설었지만 이제는 제법 서로 적응이 되었다. 같이 있을 때 서로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고 소홀하거나 함부로 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자주 통화하고 메세지보내고 하면서 가족간의 소통이 더 많아졌다. 걱정하고 신경쓰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 같다. 역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는 배움과 깨달음을 찾아낼 수 있다.
어제 저녁 '만다라차트 64가지 인생질문' 활동에서 주로 나온 질문이 소비와 행복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결국 반복해서 내가 답하게 되는 것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가족을 위한 소비와 여유를 갖고 싶어서 라는 것.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가족과 여행을 많이 다니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것.
후회되는 일은 지금 낭비하고 있는 시간과 충동구매, 그로 인해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이 도돌이표로 계속 돌아왔다.꼭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싶다'는 마음에 지배당하고 뭔가를 살때 느끼는 그 찰나의 쓸데없는 만족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시골살이는 활동 범위도 좁아서 옷도 몇 가지로 돌려 입고 있다. 이전의 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남들이 아무도 신경안써도 나 스스로 무성의해보이고 단순해보이는 게 싫어 이렇게저렇게 바꿔입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의 의복 패턴이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재벌인 마크 저거버그와스티븐 잡스가 선택하는 시간도 아까워 같은 옷만입는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그동안 쓸데없이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고 과하게 구입해놓아서 잉여로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참 많았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된다. 어떨때는 내가 온라인에서 주문해놓은게 너무 많아서 배송지연이 되어도 뭐가 오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진짜 개선이 시급하다.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해가면서도 왜 자꾸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누리려고 했을까. 내 안에 결핍과 욕구불만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었나. 왜그리 소유하려고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작심 3일이더라도 반복해서 마음을 먹으면서 바꿔 나가야지 이대로 살다가는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소비 습관과 돈에 대한 태도가 몹시 걱정된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그것이 정말로 없어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본 후에 구입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같이 연습해야겠다.
12월과 1월에는 옷을 사지 않기! 라는 엄청난 목표를 세웠다. 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알고리즘의 노예였으며 충동적으로 사는 저렴한 옷들의 값이 합쳐진 카드값이 엄청났다는 사실, 박리다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굳이 많은 양을 샀던 어리석은 소비 습관을 자각하면서 내가 '사지 않기'를 얼마나 참아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후회되는 지출을 줄이고 조금씩 저축액을 늘리기, 투자 공부도 해서 노후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며 달라져야만 한다.
덧) 결국은 글쓰기 과제를 내일로 미뤘다. 아무리 데드라인 이펙트가 있다지만 앞으로는 정말 이러지 말자. 어차피 내겐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무식하게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성장형으로밀고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