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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Nov 29. 2024

[100-82] 흐르는 물처럼, 바다처럼 그렇게

 그런 날이 있다. 애쓰고 애쓰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어김없이 그 예감이 맞았을 때. 인생이 내 무릎을 확 꺾어놓는 일들이 한번씩 이렇게 생길때마다 힘이 빠진다. 나에 관한 일이면 어찌어찌 방법을 찾고 수습을 하고 마음도 다시 다잡고 극복을 할텐데 자식에 대한 일은 그게 안된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남편과 수시로 카톡을 주고 받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마인드 콘트롤을 하는데 결론은 부부가 마음이 잘 맞고 의지가 되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가족이 되어 사는데 두 사람의 결실인 자녀를 키워내는 일에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동갑내기 부부친구같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수다 떨듯 많이 나눈다. 우리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본인들이 노력하지 않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더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할만큼 했으니 나중에 애들에게 원망은 안 들을 것이라며 위로를 주고 받았다.


 기분이 가라앉고 센치해져서 연애 시절 들었던 노래들을 감상했다. 듣는데 한결같이 가사가 어쩜 다 그리 마음을 후벼파는지...사십대 중반이 되니 인생의 단맛짠맛쓴맛까지 다 보게 되는구나. 부모로 살면서 인생 공부를 아주 쓰디쓰게 하고 있어서 함께 전우애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건지, 아니면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길래 빚 받으러 온 자식들만 주셨나 싶은 속상함에 신세한탄을 한참했다. 그랬더니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남들도 그럴 거라고, 단지 내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위로해준다. 그래, 인생이 다 그런거지.


 지나고 나면 아쉽고 기억이 흐려져서 그때 그 시절은 또 좋았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그러면서 살아가는거지. 겨울밤 추억의 노래들과 시 한편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무서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한 번 뿐인 모든 그때와 모든 나이가 아름다운 절정임을 모르고 지나치지 말아야겠다. 지금, 여기, 함께, 우리인 것이 소중함을 잊지 말자.


 안되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법. 그저 마음을 편히 먹고 흘러가는대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은 바다가 많이 보고 싶다. 철썩이는 파도와 시원한 바닷 바람에 걱정근심을 다 실어보내고 가벼운 마음이고 싶다. 흐르는 물처럼 걸림없이, 넓은 바다처럼 다 끌어안을 수 있게 너른 마음으로 인생을 살자고 다짐해보는 밤이다.

 주말에 대천이라도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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