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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Dec 01. 2024

[100-84] 오른손도 왼손도 모두 행복하기를.

                                         

타고나는 재능과 부단한 노력 그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할 때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고, 긴 시간을 들여 노력했음에도 그에 비해 결과물이 미비한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하는 일에서도 어떤 일은 쉽고 능숙하게 해내는데, 어떤 일은 열심히 한다고 애를 써도 잘 안된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재능이라고 부르며 ‘재능이 있고 없음‘으로 판단하곤 한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게 된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논리를 왼손과 오른손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책 <왼손에게>를 읽고 나면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항상 오른손으로 무거운 짐을 들다가 빨개진 오른손을 보고 문득 화가 난 것처럼 보인 어느 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티 나게 고생하는 오른손과 묵묵히 애쓰는 왼손을 모두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라는 표현에서 나는 오른손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왼손 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언제 오른손이고 왼손일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생긴 건 똑같은 데 왜 차별 대우를 받을까

 <왼손에게>는 왼손과 오른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표지는 하얀 바탕에 여백이 많고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연필을 한 자루씩 쥐고 있는 모습이 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뫼비우스의 띠‘나 ’에셔의 도마뱀‘ 그림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게 이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묘한 느낌을 주는데 두 손의 뗄 수 없는 관계와 서로의 연결감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봤다.      


  “정말 참을 만큼 참았어.”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얼마나 화가 났길래 시작부터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하나. 게다가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채 누군가의 분노가 느껴지는 저 문장만 달랑 적혀있다. 궁금증이 점점 커져 얼른 페이지를 넘기니 힘을 아주 세게 주어 연필을 꽉 쥐고 있는 오른손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서 화가 나 있는 감정이 전해진다. 다음 페이지에는 그 오른손이 힘주어 ’왼손에게‘ 라는 제목을 쓰고 있는 장면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른손은 왼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들어보니 억울한 것이 많다. 숟가락질, 양치질, 가위질, 빗질 등 할 일이 많고 바쁜데 왼손은 별다른 일 없이 있다가 핸드크림을 바를 때만 스윽 다가온다. 시계나 팔찌, 반지 등 화려한 장신구도 왼손 차지다. 손가락이 5개인 것과 모양이 똑같은데 왜 둘의 상황은 이다지도 다르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불공평해요!”     


공평과 공정은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해야 오른손이 공평하다고 느낄까. 먼저 공평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공평하다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평과 같이 언급되는 개념으로 공정이 있다. 공평과 공정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는데 공정에는 ‘올바름’이라는 판단이 개입된다. 살다 보면 각자의 사정과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일체의 것을 다 배제한 채로 똑같기만을 바라는 것은 ‘불공정한 공평‘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오른손잡이 입장을 생각하고 쓴 책이다. (왼손잡이라면 반대로 ’오른손에게‘로 이해하면 되겠다.) 매니큐어를 바르는데 오른손은 왼손을 예쁘게 잘 칠해주었지만 왼손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손톱 밖으로 삐져나가고 흉하게 칠해버렸다. 생긴 것은 똑같지만 그동안 왼손은 손을 쓰는 일을 별로 하지 못해서 연습할 기회도, 조절하는 방법도 터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오른손이 고의로 그랬다며 왼손을 나무라고 탓하며 싸운 것은 공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옳다고 볼 수 다.    

 

 공평과 공정을 설명하는 유명한 그림이 하나 있다. 한쪽 장면에는 키가 다른 학생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누어 주고 공평이라고 써 놓고, 다른 장면에는 키가 작은 학생에게 더 높은 의자를, 키가 큰 학생에게는 낮은 의자를 주고 공정이라고 써있다. 따라서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품고  오른손은 왼손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연습의 기회를 주거나 왼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을 해야만 아는 것이 있다


 싸움이 벌어지고 오른손이 다쳐서 붕대를 감게 되었다. 다들 ’하필‘ 오른손을 다쳐서 어떡하냐고 걱정한다. 왼손은 최선을 다해서 오른손이 해오던 일을 해보지만 “오른손처럼 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다. 타고난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타고나는 부분이 재능으로 발휘될 때는 좋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좌절감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타고남'이란 단어 자체가 공평하지 못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오른손 역시 깨달음을 얻는다. 그동안은 자기가 혼자 모든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려운 곳을 긁는 일, 모기를 잡는 일은 서로가 도와야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왼손 같은 입장이고, 어떤 면에서는 오른손이다. 그러니 혼자 잘났다고 우쭐댈 것도 아니고, 나는 재능이 없다고 주눅 들어 있을 필요도 없다. 연대하고 협심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 많다. 또한 세상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채롭고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구차하게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내 상황을, 내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왼손이 오른손에게 “고마워.”라고 한 것은 정말 용감하고 마음이 넓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에서는 “이제 오른손이 대답할 차례다. 내 친구 왼손에게.“라고 끝났다. 오른손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더불어 왼손도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왼손일 때, 또는 오른손일 때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자. 말을 해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용기 내어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두 손 꼭 잡고 살아가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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