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 떠나다. - <돌아와, 라일라>
한 소녀가 버스정류장에 홀로 앉아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인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를 응시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표정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 쓸쓸함에 이끌려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정류장 이름이 ‘라일라’이다. ‘돌아와 라일라’라는 제목과 함께 라일라의 여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라일라가 떠난 길
에바 린드스룀의 그림책에는 상징적인 요소가 많다. 『돌아와, 라일라』 역시 상징성이 강한 그림책이다. 라일라가 다니면서 마주하게 되는 장소, 그리고 거기서 발견하는 물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뜬금없이 길에서 에어매트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걸 이용해서 호수를 건넌다. 오솔길에서 누가 놓아둔지 모르는 달콤한 산딸기 요구르트를 마시게 되기도 한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만나게 되는 기회나 이용할 수 있는 수단, 그리고 얻게 되는 어떤 보상 같은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모닥불은 주변으로부터 라일라를 지켜주는 따듯한 어떤 것, 우산은 비와 같은 슬픔을 막아주는 것, 낭떠러지는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궁금했던 표지의 그 장면에는 “너만을 위한 정류장”이라고 쓰여 있다. 라일라만을 위한 정류장에 서는 버스라면 그녀에게 적합한 장소로 데려다 줄까 아니면 라일라가 가야할 길을 잘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줄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읽게 되는 그림책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어
그림책에서는 라일라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라일라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문이 닫혀 있었다면 돌아오는 용기에 더불어 문을 두드리거나 여는 용기까지 더 끌어내야 했을 것이다. 문을 열어놓은 그 배려는 환대와 다름없다. 돌아온 라일라의 마음은 여행으로 충만해졌기를.
내게도 이런 환대의 공간이 있다. 충분히 방황하고 그림책 글쓰기 모임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준 이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가끔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후의 내면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마음의 안전장치인가. 아마 마음놓고 떠날 수 있는 것은 돌아왔을 때 나를 환대해 줄 사람과 아늑한 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찾는 여행이 필요해
아이들이 나이가 많아지고 생각이 커지면 저 너머를 상상하기 시작할 것이고 부모를 떠나고 싶은 때 반드시 온다. 매일 머무르던 익숙한 공간, 좁은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던 순간들이 언제부터인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처음은 아마도 사춘기 무렵이 될 것이다. 라일라가 집을 떠나 험준한 산, 광활한 사막, 넓디넓은 바다를 여행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 세상을 배우고 세상을 알아갈 것이다.
라일라처럼 아이들이 떠날 때 따듯한 집안을 지키고 있을 어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이의 선택을 믿어주고 기꺼이 응원해 주는 어른, 언제든 돌아오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계속 탐색하며 떠나보고 무얼 만날지 기대하며 다녀보아야 겠지. 그림책 속의 라일라는 나이자, 나의 친구이자, 나의 아이들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나를 알기 위한 여행,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떠났다가 잘 돌아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