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도탄과 불안으로 잠을 설쳤을 것이다. 1일 천하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충격과 어이없음,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할까. "사과해요!!! 우리한테!!!"
분노의 기운을 아침 공복 운동에 쏟고도 마음이 잡히지 않아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천장호 출렁다리로 갔다. 오늘은 많이 추웠는데 쨍하게 차가운 겨울을 실감하게 하는 날씨였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시퍼렇고,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의 물결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얼굴이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오히려 정신을 좀 맑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걷자. 천천히.
주차를 하고 출렁다리까지 걸어내려오면서 둘러보니 몇 년전에 왔을때와는 또 다르게 많이 정비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스릴넘치고 무서운 그물장치 놀이 미션도 있고 천장호에 살았을 것 같은(?) 공룡 캐릭터 설치물도 곳곳에 만들어놓았다.
천장호를 보고있으니 깊은 물속에 뭐가 살았을까 궁금해져서 동화를 막막 써내고 싶은 마음은 생기는데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창작해낼 재주가 아직 없음이 비참하구나. 그저 혼자 속으로 상상의 나래만 펼쳐본다. 네스호 괴물같은 신비스런 생명체가 밤만 되면 유유히 달빛에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이곳엔 전설이 있다. 불임인 여자에게 아들을 얻게 해줄 정도로 영험한 바위가 있다. 개인사로도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소원바위"에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아들은 이미 있으니 다른 소원을 빌건데 내게도 신비한 기운을 전해주세요. 플리즈.
바위에 두 손을 대고 바라는 바를 간절히 간절히 마음속으로 전하며 바위의 영험함이 나와 내 가족에게 묻어오기를 바래본다.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냐고.... 엊그제는 다락골 성지까지 무릎꿇고 기도드리고 온 나란 인간)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을 온 우주가 도와주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소원바위에서 내게로 신비한 힘이 덕지덕지 붙어왔기를.
예전에 왔을때는 반대쪽 길로만 가봤는데 오늘은 나무 데크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 볼 생각이다. 천장호 주변도 감상하고 카페 하이디란 곳도 궁금했기에 칼바람맞으며 묵묵히 걸었다. 군데군데 나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친화적 형태로 데크길을 이어나간 것이 보였고 나무들이 많이 황량해진 지금보다는 봄가을에 참 근사한 길이었겠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다음에 또 와보면 되지 뭐.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 현재의 내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온 발걸음이니까 이또한 좋지 아니한가.
길 끝에 이르니 내가 찾던 장소가 보인다. cafe 하이디.
3층 짜리 건물인데 읍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인지 1층은 사무실, 2층은 알프스 갤러리, 3층이 카페인 구조다.
야외로 나가니 사방이 트여있어 주변 경관이 너무 잘 보였다. 청양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산들도 보이고 23일부터 시작될 얼음축제가 시작되면 주변이 하얀 얼음왕국으로 뒤덮여 그 나름의 매력이 또 있을 것 같다.
주문한 카푸치노를 찍고 싶었는데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서 커피 사진이 없다. 머그잔도 크고 카푸치노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호로로록 마시니얼었던 몸이 서서히 녹았다. 커피 인증샷은 놓쳤지만 다행히 건물 중앙 천정에 길게 드리워진 조롱박으로 만든 샹들리에 사진은 건졌다.
자리에 앉아 <소년이 온다>를 꺼냈다. 오늘은 이 책을 다시 읽는데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다른 일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슬픔과 무기력에 잠식당한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서... 수시로 고이는 눈물을 수습하기가 힘들어 자꾸만 멈추어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책을 읽다가 딸 픽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나왔다.
허한 마음을 먹는 걸로 채우자. 떡볶이를 만들어 치즈를 잔뜩 올리고 딸과 마주앉아 배부르게 먹었다. 울려면 힘을 비축해둬야 하니까.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애끓는 심정이 나오는 마지막 장은 결국 또 꺼이꺼이 오열하며, 눈물 뚝뚝 떨구면서 읽었다.
오늘 아들의 수시 2차 마지막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어젯밤 계엄령 선포에 군제대 연기 소식에 몇 번이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에 애가 시험을 보러갈 수 있는 상황일지 그것도 걱정되고, 이러다 전쟁나는거 아닌가 싶어 걱정되고 나라가 망하겠구나 싶어 절망했다. 뒤척이며 겨우 잠들었다가 눈뜬 아침 계엄 해제된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2024년 12월 3일의 악몽같은 밤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떡볶이를 먹고 조금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 바라본 저녁 초승달과 별은 유독 아름다웠다. (달 사진은 사람 눈처럼 담기지 않아 늘 안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