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와서 오늘 아침 날씨가 나쁠까봐 걱정하며 잠들었다. 다행히도 아침에는 비가 그쳐 있었다. 비온 뒤에 더욱 청명하고 맑은 하늘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날씨에 기분 영향 진짜 많이 받는 1인. 하루를 잘 시작해보자!
기분좋게 힘내서 아이 등교시키고 5일째 오전 공복 운동을 클리어했다. 인스타로만 소식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던 언니가 최근 한국에 왔을 때 두 번이나 실제로 만나면서 너무 마음이 잘 통해서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거의 매일 카톡을 주고 받는다. 서울에 사는 친한 동생과 나, 미국으로 돌아간 사라 언니, 이렇게 세 명이 단톡을 하면서 마운틴 클라이밍이라는 복근운동(및 전신운동)을 매일 해서 올리는 챌린지를 하고 있다. 겸사겸사 서로의 일상도 공유하고 운동하는 모습에 자극도 받으니 좋다.
점심으로는 그릭 요거트와 베이글, 과자와 커피 등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으며 겨울 분위기 나는 팝송도 듣고 보고 싶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들 리뷰 몇 편 감상했다.(티비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오랜만에 문을 다 열고 환기시키며 청소를 했다. 방바닥을 닦으며 드는 생각이 살아가는 데 그렇게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좁거나 작아도 다 적응하며 살게 된다는 것. 시골살이하며 11월까지는 윗채에 있다가 너무 추워져서 좀 더 난방이 잘되는 아랫채 작은 공간으로 내려와서 지내는 중인데 방 하나, 거실 겸 주방, 화장실 뿐이지만 딸과 둘이 지내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고 청소하기도 편하다.
청소하고 개운해진 기분으로 하교하는 아이 픽업하러 차를 몰고 나갔다. 그런데 세상에나~! 하늘 무슨일이니. 아니 구름이 대체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하늘과 구름에 압도당하는 경건함이 든다고 해야할까. 나는 정말 자연앞에서 작디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나라 시골 한 구석에서도 내 존재가 이렇게 미미하게 느껴지다니.
딸아이가 "엄마, 우리 오늘 집에 도착하면 바로 산책할까?"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시골에 와서 아이는 자주 주변을 감상한다. 감성이 건조한 아이라고 생각되서 걱정했었는데 나름으로 자연을 감상하고 느끼고 자기만의 방식과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저녁 무렵 옥상에 올라가 지는 해와 변하는 노을빛을 본다던가 마당에 있는 흔들그네에 앉아 하늘을 본다던가, 동네를 산책하며 아는 개들을 다 방문해서 쓰다듬어 주고 인사하고 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고입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슈가 많아서 아이에 대한 실망감과 끓어오르는 화에 이성을 자주 잃었다. 어쩜 이리 내 기준에 못미칠까. 왜 이렇게 수동적일까 등등. 생각해봐야 울화가 치밀고 혈압 터질 것 같아서 이제는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기 않기로 했다. 내 입에서 나쁜 말들만 쏟아져 나오니 차라리 입을 최대한 닫아보자 닫아보자.
좁고 옹졸한 내 속을 탁 트인 산과 들을 보며 달랜다. 마음이 좀 넓어지는 기분도 들고 일단 시야가 너무 편안하다. 빽빽한 건물 사이가 아니라서 바로 옆에 벽을 두고 붙은 아파트 한 칸이 아니라서 뭔가 내 바운더리가 널찍해졌다. 무엇보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고 교통 체증이 거의 없어서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도 차분히 생각하며 돌릴 여유가 있고 조바심이 들지 않는다. 잘못된 길임에도 뒷차들때문에 겁먹고 떠밀리듯 하염없이 갔다가 되돌아 오지 않아도 된다. 여유롭게 천천히 운전하니 들판도 보고, 저 멀리 산의 능선들도 보고,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하늘과 구름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뭉게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니 <구름 공항> 그림책이 생각난다. 그리고 고래를 닮은 구름도 발견했다.
아이 밀착 케어하면서 엄마 노릇하고 운동하고 책읽고 글쓰는 단순한 생활이지만 하루하루가 흘러 일주일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 연말이 되니 지인들의 SNS에 성과를 내고 어떤 자리에 오른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온다. 나는? 뭐가 되지 않아도, 성과를 내지 않아도, 어떤 시험에 통과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단은 지금의 내 생활이 좋다. 언젠가 또 무엇이 되고 싶고 하고 싶어지면 그때 열심히 하면 되겠지. 당분간은 느리게, 욕심없이 평온하게 사는 여유를 충분히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