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졔리 Jan 06. 2024

나아가게 하는 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나치가 벌인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이나 영화는 많다. 하지만 이렇게 본인이 직접, 그것도 가장 힘들고 무서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학적 이론을 창시한 그의 이야기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직접적이었다.


왜인지 유명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건 몇 년을 망설였다. 그가 겪었을 무겁고 아픈 이야기들이 내 심장을 송곳 찌르듯이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었고, 지금은 읽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야 읽게 되어 후회스러우면서 그래도 이번에 읽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 안에서 자행되는 일들에 대해 그곳에 붙잡힌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순서는 작가이자 닥터인 프랭크의 직업적 소명으로 인해 우리에게 꽤나 많은 설득력을 준다. 그리고 그의 짧고 끊기는 듯한 죽기 직전의 불안감으로 휩싸인 분위기 속에서 썼을 글들은 강압적이고 긴장감 흐르는 수용소의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져 나까지 손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 51p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곳에서의 생활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내가 가진 모든 소중한 물건들을 빼앗기고, 좋은 신발, 옷들도 물론 빼앗긴다. 남은 건 내 몸뚱이 하나밖에 없다. (머리카락도 모두 밀어져 그저 목각인형 같을 모습이 그려진다) 자는 곳은 춥고, 좁고, 더럽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희망도 없이 보상 없는 일을 해나간다. 나중에는 혹독한 노동에 발이 부어 신발이 들어가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신발 끈도 없어 철사로 신발 끈을 대신한다. 밖은 추운 겨울이라 발이 동상에 걸리고 동상에 의해 발이 썩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점점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그들과 작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상상된다. 무기력해지고 그게 특별한 일이란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끝은 죽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초월해 원시적 상태로 돌아가 매일매일을 배고픔에 허덕인다.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생활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자꾸 부류가 나뉜다. 나뉜 부류 중 하나는 가스실로 들어가 죽음을 맞는다. 나뉘는 기준은 모호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비정상적인 규칙들을 지켜나가며 나 자신의 영혼도 달래야 한다. 환청에 시달리고 정신이 나빠져 사람들은 많이 죽는다.


그리고 이런 반복된 지옥 속에서 프랭크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지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현재 우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들이다. 나라나 기업이나 모든 조직에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맡은 일을 해나가는 대체품들이다. 그건 사실이다. 산업혁명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는 우리의 일이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점점 우리는 나이를 들면서 일하는 시간보다 여가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자주 앓는다.


프랭크는 그런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안정도 아니고, 약도 아닌 바로 ‘시련’과 ‘고통’이라고 한다. 혹은 ‘책임감’이라고도 한다.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게 나를 구제해 주는 것들이었다니! 이 깨달음으로 인해 나는 이 책에 대한 추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현재의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다. 한 유대인이 작가에게 자신이 꿈을 꿨는데 며칠 뒤에 전쟁이 끝나고 탈출할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꿈에서 나온 날짜가 지나고 변하지 않는 상황을 비관하여 심신이 약해져 죽었다.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내가 건강한 마음을 가지려면 내 안에 긴장이 필요하다. 심한 긴장은 좋지 않지만 긴장이 아예 없는 삶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미래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거나 삶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기분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고 하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던 책이다.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내 마음속에 작은 긴장을 불어넣는다. 기분 나쁜 긴장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을 나아가게 해야겠다는 기분 좋은 떨림의 긴장 말이다.



23.12.19


작가의 이전글 요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