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개를 숙이는데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덜컥 겁이 났다. 고개를 좌우로, 위아래로 돌려 보니 이석증이 있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어지러움이 지속되었다. 같은 자세로 있으면 괜찮다가도 옆으로 누워 핸드폰을 볼 때는 같은 자세로 있어도 어지러웠다. 어디선가 어지러움은 노졸중의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글을 봤기에 다음날 서둘러 병원을 방문했다. 일부러 신경과가 있는 종합병원을 찾아갔는데 평일 낮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신경과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남편은 아내를 부축하면서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안 좋은 소식을 들었구나. 저런 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마음도 먹먹하겠지. 몇 분간 진료실의 벨은 울리지 않았다.
한참 만에 들어간 나는 혹여나 큰 병이 아닐지 걱정이 된다고 말을 했다. 의사는 뇌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는 지금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 큰 병은 아닐 거라고 안심시켰다. 의사는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심전도 검사는 그날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었는데 별다른 이상소견은 없다고 했다.
며칠 후 혈액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빈혈 수치가 평균보다 조금 높지만 이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대신 염증 수치가 높다며 몸살 기운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몸에 열이 나거나 근육통이 없었기에 그런 건 없었다고 대답했지만 염증 수치가 높으니 일단은 잘 먹고 잘 자고, 커피를 줄이라는 뻔한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어지러움에 좋다는 약을 처방받았다. 다음날부터 그 약을 먹었는데 졸리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정도가 심각했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져서 의자에 앉은 채 한 시간 정도 잠에 빠졌다. 비몽사몽 한 채로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다음날부터는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아서인지 건강한 식단으로 밥을 먹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8시간 수면을 지키지 않아서인지 어지러움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휘청거릴 정도로 어지러운 게 아니니 당장 큰일 나는 건 아니라서 병원에 또 가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어쩌면 이석증인데 증상이 약하게 온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가 친절하게 잘 설명해준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검사를 해보더니 전정기관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어지러움에 좋다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 약 역시 졸릴 거라는 주의를 들었다.
원인을 모르니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으로 별별 병명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어지러움 증상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원인은 저혈압, 빈혈, 뇌의 이상, 전정기관 이상 등이 나왔다. 뇌와 전정기관 이상은 아닐 테니 저혈압과 빈혈의 원인일 텐데 나는 둘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걸 치료할 수 있을까. 치료법은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술과 커피를 줄이는 것. 그리고 충분한 숙면과 건강한 식습관이란다. 어찌 보면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게 제일 어려운 게 아닌가? 커피 중독인 나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니 너무 가혹하다. 제대로 세끼 챙겨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운동 먼저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날 저녁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하는데 평소보다 컨디션이 떨어져 있어서 조금만 힘을 써도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이렇게 근력이 이렇게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몸이 힘들기에 운동을 하다가 중간에 멈췄다. 가만히 벽을 보고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게 다 노화 때문인 거 아닐까? 엄마가 버릇처럼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허리야.’라고 했지. 엄마가 그렇게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나이가 돌이켜보면 지금 내 나이다. 그러니 그저 나이가 차서 아픈 건 아닐까?
세상에서 과연 몇 명이나 술과 커피를 안 마시고 삼시 세 끼를 영양소 골고루 챙겨 먹으며 매일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하고 8시간 이상 자고 있겠냐고? 인간의 몸이라는 게 본디 40살까지만 쓰게 되어있는 것이니 이게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내가 원인을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 이유가 이 모든 게 그저 노화라서 그런 것 일지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이 죽을 나이가 됐다고 아이고 이제 죽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듯이 나도 어찌 됐든 조금이라도 활력을 되찾아보려고 이래저래 애쓰고 있다.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팔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늘을 향해 휘적거려 본다든지. 하루 커피 3잔을 1잔으로 줄인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