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으니까 너도 바람피워...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by 모노화

사실 정선으로 오고부터 자연이 아무리 좋다 한들 외로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산골에서의 삶이 적막하고 외로우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난 그것을 감수하고 받아들일 각오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맞닥뜨리자 그게 그렇게 녹녹지 않았다.

더구나 일거리도 없는 심심한 겨울이 되자 그 적막과 외로움이 나를 시폰 천으로 말아 감듯 점점 조여들었다. 밤에는 더더욱...

원래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형이었다. 도시에서는 12시나 한 시까지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등등하면서 늦게 잤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자고 아침에 8시 9시에 일어나면 오전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일을 거의 못하고 흘려버리고 만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은 시골 생활에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겨울밤이 길지만 산골의 겨울밤은 도시에서 느끼는 거보다 두 배 이상 더 길게 느껴진다. 더욱이 늦게 자면 밤이 더욱 그랬고 그 시간 동안 스며드는 외로움과 고독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그다지 좋은 게 아니란 걸 눈치채게 되었다.

그 와중에 혼자 지내는 산골에서의 기나 긴 밤 동안 내 인생의 여정에 느닷없이 발을 들여 논 민호에 대한 생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까지 예상 밖의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장면 같았다.

'오! 이런 인연도 있군!'

그 의외의 인물이 정선까지 찾아와 같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그건 사실이었는데도 그가 떠나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꿈만 같았다.

그가 떠나고 그는 내게 얼마나 길고 긴 여운을 남기고 간 것인지...

한동안 그날 밤 함께 있었던 시간들을 일일이 낱낱이 반복해서 되새기는 일이 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 덕분에 외로움이 조금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그날 민호가 다녀간 후로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민호와 더 이상 가까워지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외 민호가 나를 좋아하는 지도 확인하지 못했을뿐더러

민호에게 여자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는 등등.

민호가 정선까지 온 것은 단순한 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민호가 워낙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먼저 말하기를 기다려야 할 거 같았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은 하고 싶지 않은 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그에 대해 궁금한 점도 없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또는 어떤 상황에 있다는 사실이 나와 무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든 없든 그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민호가 닿을 수 없는 손 끝 보다 더 멀게 느껴지면서 외로움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남편과는 법적으로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 현실적으론 이혼이나 마찬가지 상태임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올가미에 옭아 매여져 있으며 바늘구멍만 한 빛도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너무나 소름이 끼쳤다.

아무래도 나는 남편이 너무 무서운 거 같았다.

모든 사유가 내게 명백히 유리한데도 행동을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뱀처럼 찢어진 눈으로 나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독기 서린 눈과 어떤 말로 후비면 더 깊은 상처가 생길까를 계산하는 비열한 입꼬리를 생각하면 사지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무섭다.

산골에서 혼자 살면서도 전혀 무섭지 않은 이유는 이 세상에 남편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없는 세상은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두렵고 무서운 존재는 남편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이룬 내 삶을 한 순간에 파괴했고 아내로서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정을 해체시켰다. 세상에 이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륜이 도파민 중독이고 쾌락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나이에 그게 '사랑'이고 '자유'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돼지 아이큐 수준이거나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

불륜이 아니라면 부부생활이 극단으로 치닫고 깨질 위험은 그리 많지 않다.

나이를 불문하고 부부사이가 멀어지는 단초는 불륜이다.

성격이 안 맞는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물론 만 명에 한 쌍쯤 있겠지.

애초에 다른 세상에서 살다 가 만났기 때문에 성격이 안 맞는다는 건 당연하다.

성격은 살면서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한다면 존중감이 생기고

존중감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이니까...

부부라는 것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두 사람이 결혼함으로써 파생되는 관계란 얼마나 넓은가

그런데 그 넓은 관계를 파생시켜 놓고 무책임하게 바람을 피우고 주변의 많은 인간관계를 파괴 내지는 어정쩡하게 만들어 놓았단 말이지

바람이 그렇게 좋고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한번 권유해 보시라

'너무 좋으니까 너도 바람피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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