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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za Jan 07. 2024

03. 내가 이렇게까지 F였다니

 나는 나를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 스스로를 궁금해하고 또 정의내려왔다. mbti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스스로의 결과값을 알고 있었다. (그게 이제서야 유행한다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서도) 이 외에도 각종 자기검사를 섭렵했으며, 유료검사도 여럿 해봤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지에 대한 자가 피드백에도 부지런한 편이었다. (물론 늘 현명하지는 못했지만) 생각이 많은 만큼 스스로의 이런저런 습성에 대한 결론을 많이 내렸다. 많이 읽고, 생각을 쓰고,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규탄(!)했다. 스스로와의 대화에 부지런한 편이었다. 이전에도 적은 것처럼 적지 않은 피드백을 거치며 안정된 스스로와의 관계였고,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현재의 스스로는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스스로의 성향에 대해 내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이성의 관성으로 일을 하고 감정의 결과를 선망하는 사람이구나.


 오랜 기간 스스로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직장 생활 연차가 올라가면서 (대개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결정적인 상황에선 감정을 배제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이성이 감정의 중화제로는 확실한 역할을 한다 믿었고 그래서 일을 할 때는 본능적으로 이성의 도구를 꺼내들었다. 그래야 내 말에 힘이 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래도록 다정함을 선망해왔고 여전히 그렇지만, 감정은 공적인 조직 내에선 소통을 제외하곤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소통은 중요한 역량이다. 다만 조직은 보통 결과를 요구하고, 대개 소감문보다는 잘 정리된 보고서가 모두를 발빠른 경로로 안내한다. 윗분이 뭐라 하신다면, 그걸 들으면서 마음에 담아두는 쪽보단 수렴하여 얼른 수정해 마치는 게 원하는 결과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더 어렸을 때는 기분이 태도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게 일에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걸 안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느 정도 알 건 다 아는 연차의 직장인이자 어른이 되었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걸을 때도 양발로 걷는데, 왜 반대의 속성값들을 모두 챙기는 건 늘 어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성의 영역에서 진정성 있는 공감을 하긴 또 쉽지 않다. 가끔은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는 건가 궁금했다. 신체에서도 편한 쪽만 쓰면 반대쪽이 약해지는 것처럼, 논리의 알고리즘을 따르면서 진정성 있는 공감을 챙길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정 어린 공감보단 단호한 설득이 쉬워졌고, 어느 순간 내 공감은 쥐어짜는 수준에 가까워졌다. 자연스럽게도 그 공감의 질은 나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원래 내리던 결과값을 선택하고 싶어했다. 그걸 잃는 게 곧 내 정체성을 잃는 것처럼. T에 가까워지니 반대쪽이 참 좋아보였다. 감정이 주되던 시절의 나는 현명하진 않았지만 반짝반짝 빛났고 그 순간을 만끽하던 사람 같이 느껴졌다. 나는 T의 절차를 따르면서 사고를 마쳐두곤, F 의 결론을 바보 같다 생각하면서 결국 그걸 고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T에 가까운 F라고 정의 내렸다. 그런 생활을 하다 일을 멈추고 아프리카로 오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징징대는 게 좀 어렵게 느껴졌다. 그때는 징징대기보단 거 화를 냈다. 한국에서는 불만을 얘기할 때는 보통 화가 났던 것 같은데, 이 곳에서 불만이 생길 때는 자주 슬펐다. 분노와 슬픔에서 벗어날 때 그들의 경로와 속도는 모두 다르다. 분노는 급하게 일어나고, 그만큼 빨리 가라앉고 원인 역시 외부요인이  많기 때문에 빠른 정리가 가능했다. 그 감정의 출구 역시 가까웠다. 이따금은 도구로도 쓰이는 나름 활용적인 감정이기도 했다. 설득에 있어서는 꽤 유용했기 때문이다. 화를 잘 냈던 만큼 그 감정을 다루는 게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진짜 슬픔은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슬플 일이 많지 않았고, 그 희소성 탓에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감정이었다. 일부러 영상이나 활자매체를 통해 살균된 슬픔에 들어갔다 오곤 했다. 그 시간들을 좋아했다. 그 무해하고 정제된 슬픔들 속에 푹 담가져 있다 나오면 자기반성과 성찰이 완료되어 있었다. 슬픔은 나쁜 감정이기보단 다차원적인 성장의 치트키이자 무료할 때 틀어두는 색다른 플레이리스트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날 것의 슬픔은 최근의 슬픔들과는 사뭇 달랐다. 습했고 진했으며 오래도록 사람을 잠식시켰다. 원인은 미상이거나 나 자신이었다. 분노에서 벗어날 때는 남 탓 상황 탓을 하면 빠르고 쉬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픔은 오래도록 잘 지내온 스스로를 가장 미워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길은 멀고 쉽지 않은 길이어서, 나는 차라리 슬픔에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만, 다행히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수개월이 지나자 슬픔의 청연도 걷혔다. 유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지난 후였다. 나는 스스로가 오래도록 감정과 무기력함에 이렇게 다시 압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F였다니! 그 원인이 상황이었는지, 나의 무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벽돌은 깨졌다. 스스로의 유약함이 사뭇 충격이었고, 심지어 그 무기력감이 언제든 다시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간만에 느껴본 완전체 F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언제 내가 다시 감정의 축에 매달려 있다가 결론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까. 비록 익숙하던 무균의 슬픔은 아니어서 오래도록 앓았지만, 여전히 내게 슬픔은 낭만의 분기점 근처인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더라도, 그 기세에 미리 압도당하지 않고 기꺼이 올라타봤으면 좋겠다. 감정적인 판단이 두려워서 이성을 무기로 쓰는 사람보다는, 그 감정 역시 어렵지 않게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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