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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za Jan 21. 2024

06. 가짜 솔직함

 늘 그렇듯 침대에서 인스타 돋보기 란을 구경하며 굴러다니던 중 우연히 ‘이효리가 요즘 요가수업 안하는 이유’ 라는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왜 요가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제가 그렇게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다른 잘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제가 가르치려면 더 배우고 가르쳐야할 것 같아요.’   


 그녀의 솔직함에 무척 놀랐다. 저런 사람도 저렇게 자기의 말을 뒤집는구나. 공인이어서 더 어려웠을 법도 한데, 자기의 틀림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진짜 솔직함이 오히려 멋져보였다.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 생각의 파동이 더 커졌다. 부부 이야기였다.     


 ‘나는 오빠랑 밥을 먹고 싶었는데 오빠가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그럼 왜 나랑 결혼했어? 이런 말이 나오는데 그게 정말 솔직한 걸까요? 나는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그건 슬픈 거예요. 자기의 마음을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슬프다고 말하면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오히려 그걸 분노로 포장하기 쉽지만 결국 그게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게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알고 있던 내용이고 여태 그렇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저 내용을 보고 참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의 출처를 찾아보니 그렇지 않았던 나의 생활이었다. 그 출처를 확인하고야 비로소 생각이 멈췄다. 내가 정말 솔직한 사람이었나.     




 오늘 고백하고 싶은 가짜 솔직함은 선명함을 뒤집어쓴 두려움이다. 선명함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선 그어둔 지 오래라 (누가 됐든) 말을 뒤집는 게 참 별로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 자신에게 별로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선명함이란, 명확하게 선택하고 분류하며 어느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을 확실히 하는 삶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살면서 선명함의 혜택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척하면 그런 삶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따금은 그 벼린 선명함이 가끔 내 균형을 위태롭게 하는 것 같다. 요즘엔 더더욱 그렇다. 대다수의 일들이 나의 예측에서 벗어난다. 그것까진 괜찮은데 대부분의 일들을 실패하는 걸 묵과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건 좀 어렵게 느껴진다.     


 ‘알쓸인잡’ 에서 심채경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경계를 조금 희미하게 두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란 존재를 너무 촘촘하게 가둬놓으면 쉽게 무게중심이 흔들릴 수 있어요. 내가 여러 곳에 발을 걸칠수록 무게중심을 찾기 쉬워요.’ 맞는 말이고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지만, 저런 류의 말들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걸 없애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의 선명함을, 지향하는 올바름의 경계를 지우면 결국 뭐가 나를 구성하지?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기보단 무너지기를 선택하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무너지고 다시 쌓고 말 것 같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그래도 나의 선명함의 정체가 두려움이란 걸 알고, 필요하면 이따금은 저런 말들이 사는 동네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저런 사고방식은 타인에 대한 몰이해에도 도움이 되었다. 선명함의 역기능은 타인에 대한 배타감 (排他感) 이다. 선명한 척하다가 종국엔 우유부단하게 굴며 변명을 덧붙이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차라리 말이라도 앞세우지 말지 참 비겁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한때 무척 아꼈지만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습들도 끝내 그들을 놓게 된 이유들도 한 사람 안에 있는 건, 그들의 경계가 보다 넓기 때문이라고 비로소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변한 것도, 속인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경계를 가진 사람에게서 이런 저런 날씨를 만난 것뿐이라고, 다만 나의 경계는 그들과 달랐고 그들은 솔직해지는 법을 몰랐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곳에 있지 못하게 되었구나 생각하였다. 그러자 조금은 덜 슬퍼졌다.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좀 더 배려할 줄 알고, 내 분계선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알려줄 수 있는 진짜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솔직함은 참 쉬워 보이는 미덕이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그를 자기의 장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욕망을 잘 숨기는 게 나이스한 태도로 여겨지는 걸 보면, 역시 단순한 기본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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