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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Dec 09. 2023

출장, 그리고 트라우마(3)

이젠 뭔지도 잘 모르겠는

두통은 계속됐다. 아주 강력한 편두통이 머리를 지배했다. 휴가가 없어 그렇게 머리가 아픔에도 출퇴근을 강행했다. 편두통약을 먹어도 아팠고 자고 일어나면 더 아팠다. 이명도 계속됐다. 지하철 안내방송이 삼옥타브로 갈라져 들렸다. 당시 우리 팀은 별도의 업무 공간에서(별도 층에 마련된 특수공간?이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했다. 12월을 맞이해 막둥이가 dj를 자청하며 크리스마스 가곡을 틀었는데, 맙소사. 이명으로 고통받는 내 귀에는 귀신들의 삼중주로 들려서 당장 꺼달라고 메신저를 보낸 기억도 있다.


이렇게 아팠으면 병원에 가서 mri라도 찍어봤을 텐데 당시엔 그런 생각을 못했다. 한 달도 안돼 몸무게가 5킬로가 빠졌다. 너무 꽉 끼어서 다리 혈액순환을 방해하던 청바지를 입고 다녔을 정도였다. 연말업무와 아픈 몸의 콜라보레이션은 그나마 살아있던 내 입맛도 죽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물어 동네 한의원에 갔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뒤통수를 만지자마자 '우와, 완전 왼쪽이 무너졌네. 아직도 이 정도인 게 신기하네.'라는 말을 남기고 10번의 도수치료를 받으랬다. 


이명은 양방치료를 병행했다. 당시 내 이명은 조금 특이했는데, 고개를 숙일 때 귀에 피가 쏠리면서 귀가 먹먹해지는 그런 현상이 늘 있었다. 그렇게 양쪽 귀가 먹먹하고, 소리가 두세 개로 갈라져 들렸다. 동네 병원에서는 내 증상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며 큰 병원으로 가랬고, 그렇게 대학병원에 가게 됐다. 다행히도 이명 역시 한두 달 만에 좋아졌다. (후유증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몸이 좋지 않을 경우 끼익 끼익 소리가 날 때도 있고, 2-3년 동안은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면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그럴 때는 대충 사람들 입 모양을 보고 대답하거나, 대화의 맥락을 모르니 웃고 말았다.) 


도수치료를 7회 정도 받으니 두통이 사라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가펜으로 떡칠을 해도 낫지 않던 두통이 사라졌다. 편두통인지, 뭔지도 모를 두통이 사라지니 다시 입맛이 돌고(살이 금세 쪘다.), 이명도 어느 정도 원인을 알고 치료를 받으니 점차 좋아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렇게 지옥 같고 고통만 안겨준 출장은 마무리가 되었다.


Q. 갈 때는 두 발, 돌아올 때는 거의 네 발로 돌아온 것은? A. 나

하지만 내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은 말 그대로 '여행'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트라우마가 시작된 거다. 출장은 고사하고, 2박 3일 동안 '타지'(타국 아니다. 타 지역이다.)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도 내 세포들이 두려움에 가득 차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가령, 2박 3일 동안 저 남쪽으로 갔던 회사 워크숍에서 TF로 활동하다 편두통(또냐)과 급체로 중간에 혼자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아오기만 하면 다행인데, 며칠 동안 하도 구토를 해서 시골 산골짝 병원에 가서(또냐...) 링거를 맞고 X레이까지 찍었다. 이제는 부모님도 너는 왜 그러냐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고, 어디만 가면 아픈 몸뚱이 탓에 나조차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어딜 가든 아플까 봐 바들바들 떨고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회사에서 출장의 '출'만 나와도 두 눈을 부릅뜨게 됐다. 해외는 말할 것도 없다. 2019년 연말, 나 홀로 남아 일을 하는데 본부장님이 다가왔다. '내년에 방콕에서 글로벌 미팅이 있는데, 거기 고로케가 가게 될 거야. 가서 잘해보라고!' 그때 나는 겉으론 감사하다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코로나가 터졌다. 글로벌 미팅도 취소됐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 출장의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힌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경험담 중 하나가 됐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웃을 일이 아냐. 아주 심각했다고.'라고 외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도 편두통을 달고 살지 않았으면 그냥 아팠던 해프닝으로 넘겼을 터인데, 편두통 환자다 보니 이제는 이 머리 아픔이 또 다른 독한 증상까지 끌고 오지 않을까 온갖 걱정에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한심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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