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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Dec 16. 2023

한 밤의 달리기

달리기와 편두통,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말은 비루했다.

2020년 우연히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의사가 블로그에 적어 놓은 듯한 글이었는데, '두통과 달리기'에 대한 글이었다. 요약을 하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 토피라메이트(*편두통 예방약으로 나도 한 때 복용했다. 이 얘기는 이제 몇 주 뒤에 곧 나올 것이다.)를 복용한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났고, 운동도 그냥 나긋나긋한 운동이 아니라 심박수 140 정도의 땀이 날 듯한 운동이 효과가 있다 했다. 그래서 3-40분 정도의 달리기를 추천했다. 


지금은 그 글의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카톡에 링크를 보내놨는데 20년 데이터라 그런지 찾기가 어렵다.) 어쨌든 운동으로 유발되는 두통이 아니라면, 호흡이 가빠질 정도의 운동을 주 3회씩 꾸준히 하라는 게 요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수영, 줌바댄스, 그리고 홈트 등 운동을 매일 꾸준히 30분 이상 한 사람이었지만 달리기는 내가 접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고, 2020년만 해도 코로나로 흉흉했던 때라 늘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편두통이 더 잦아진 것 같은 해였다.


달리기, 그래 달리기다. 달리는 거다. 당시 다른 글을 찾아본 결과 심박수 140은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의, 그리고 심장박동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를 의미했다. 편두통이 치료만 된다면야, 완치는 아니더라도 예방 정도의 수준이라면 할 만했다. 평소 나는 요가나 몸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운동에 별로 부담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다행인 건 나름 실행부대 같은 면도 있어서(우유부단할 때가 더 많다.) 바로 달리기를 실행했다.


빨간 박스를 친 날은 달리기를 했던 날이다. 4월 둘째 주에는 4번, 셋째 주에는 2번, 넷째 주에는 1번 달렸다.


그렇게 주 3-4회를 목표로 달렸다. 저녁 8시 무렵에는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인적이 드문 공원이 나올 때까지는 경보하든 잰걸음으로 걷다가 생각한 지점이 나오면 달리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났고 귀에는 음악소리뿐 아니라 심장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마스크를 벗고 바람 냄새를 맡았다. 여름날의 공기가 코 끝을 스쳤다. 4월 초임에도 바람이 찼고, 패딩을 세 겹이나 입고 나갔는데도 추웠다. 


실제로 편두통이 약간 오려고 한 날, 기분 나쁜 그 느낌과 뭉근하고 욱신거리는 그 느낌이 온 날, 약 먹고 그냥 누워있을까, 아니면 무리수를 두고서라도 한 번 달려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이건 정말 모 아니면 도였다. 머리에서 편두통의 시그널을 보낼 때, 괜히 운동한다고 깝죽거렸다가 두통만 더 심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중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했지만, 지금 나는 '달리기와 편두통' 셀프 임상 실험 중이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나가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그날 뛰고 오니 미미했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건 기적이었다. 너무 기뻤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늘 생리 전, 중, 후에 편두통이 와서 생리기간에 거의 약을 몰아먹던 내게 4월에는 호르몬으로 인한 편두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출근하는 일정이 많아지면서 내 러닝 요일도 금, 토, 일로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달리려 노력했다. 그랬다. 조금 더 효과를 보고 싶었다. 달리면 몸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아마), 두통도 예방한다니, 얼마나 좋은가! 러닝화를 사야겠다. 러닝복도 사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날들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썼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많이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부터 수영, 복싱 등. 복싱은 20대 중반, 과외하던 학생이 살이 쭉쭉 빠진다고 같이 하자고 하도 꼬드겨서 시작했는데, 그때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꽤 고생하다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아뿔싸. 달리기의 기본도 모르고 그냥 뛰다가 4월 24일 오른쪽 무릎을 다시 다쳤다. 한쪽 다리로 겨우 집에 돌아왔고, 의사 선생님의 만류에 달리기 실험은 중단되었다. 


이렇게 중단됐다. 사실 2022년 작년에, 20년의 테스트가 아련하게 기억나, 유튜브에서 대충 보고 '슬로우 러닝'이라는 것을 시도하다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발바닥, 종아리까지 아작나 치료에 거의 100만 원을 쓰고(...) 다시 달리고 있지 않다. 달리기는 꼴도 보기 싫다. 최근에야 교정학원을 다니면서, '달리는 것도 방법이 있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배워서 다시 뛰자, 생각하는 요즘인데 생각해 보면 심박수 140에 숨이 차고 귀에 심장소리가 들리는 운동이 달리기만 있는 건 아니고, 수영도 비슷하니까... 다시 수영을 다녀볼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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