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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Dec 23. 2023

친구를 찾아라

좀처럼 찾기 힘든 오프라인 편두통 친구들...

대학시절 포함 나의 20대 시절, 주변에는 편두통을 앓는 사람이 없었다. 없던 건지, 아니면 내가 못 찾은 건지, 다들 말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두통'이라는 걸 느끼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나는 편두통이 정말 특이한, 생로O사나, 명O같은 건강 프로그램에만 나오는 그런 질환인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아픔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처럼 쉬쉬하는 묘한 그런 분위기가 있어서 내 아픔을 공유할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아프다.'라고 하면 집에서 혼이 날 정도였다. '또 아프냐. 왜 아픈 거냐. 왜 눈만 뜨면 아프냐고 하냐'등등 만성적으로 꾸짖음 아닌 꾸짖음을 듣다 보니 내가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면 다들 지겨워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짓누르다 보니, 두통이나 아픔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편두통이로소이다, 그러려니 하며 회사를 다니던 중, 별로 교류가 없던 사람과 밥을 먹게 되었다. 평소처럼 일상적인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친하지 않던 그 친구가 자신은 머리가 너무 자주 아프고 '나라믹'이라는 약을 먹는다고 했다. 당시 나는 내과에서 지어주는 조제약(에 섞인 미가펜)을 복용하고 있었기에, '나라믹'의 존재를 몰랐다. '나라믹'은 전문 편두통약으로, 나중에 검색한 뒤에야 그 친구가 나와 똑같은 편두통 환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어찌나 반갑던지, 정말 너무 반가웠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편두통 동지가 있었을 줄이야. 그 뒤로, 나 역시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고백했고, 점차 속마음을 까발리다 보니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나 여행까지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그 친구에게 연락 오는 텀이 줄면, '아 편두통으로 고생 좀 하나 보네.'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고, 편두통으로 가족에게 서러움을 당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은밀한 상처를 위로했고, 편두통 발작으로 고생한 날 뒤에는, '편두통 때문에 죽다 살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서로의 질병에 대해 토론하고, 분석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생기니 심적으로 의지가 되고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 이후로도 회사에서 세 명의 편두통 환자를 찾았다. 한 명은 내가 다니는 병원과 교수님을 소개해 줄 정도로 친해져서, 위에서 언급한 편두통 친구와 셋이 서로의 두통에 대해 걱정해 주는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어쩌다 만난 업무 파트너로 처음 보는 남자 편두통 환자였다. 내 두통이야기를 들은 그는 '과장님만큼 전 심하지 않은데요.'라며 선을 그었지만, 그의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두 달에 한 번 꼴로 아프나, 입원해서 진통제를 맞아야만 통증이 사라진 댔다.) 그가 나보다 더 심한 편두통 환자 같았다. 마지막 한 명은 나와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차가 있는 어린 친구로, 본인은 모르는 거 같은데 내 앞에서 우적우적 복용하는 타이레놀 개수와, 가끔 두통에 대해 던지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패턴만 봐도 편두통 환자가 틀림없다.


어쨌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습도나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터라, 아주 습한 장마 기간엔 항상 저 다섯 명에게 물어보거나, 질문을 받곤 했다. '오늘날이 무진장 습한데, 머리 아프지 않음?'이라는 질문을. 대부분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그럴 때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남몰래 음흉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글의 초반에 나온 것처럼, 작년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다가 용기 내서 하는 '경험의 공유'는 치유와 위로의 힘을 갖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내가 경험한 것들은 아주 작은 용기의 파편이지만, 나는 그들 속에서 충분히 따뜻함과 위로를 느껴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는 한관종(*한관종(땀관종)은 에크린 땀샘의 분비관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진 흔한 양성종양 중 하나이다.)이라는 양성종양이 눈 주변과 얼굴에 있다. 한관종도 모계유전으로(..my gene, go to hell) 평생 고칠 수 없는 피부질환 중 하나인데, 20대 후반부터 '한관종 카페'에 가입해서 사람들과 종종 교류를 하곤 했다.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만 아는 얘기를 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는데 왜 편두통은 생각조차 못했을까?


21년도에 본격적으로 두통치료를 결심하고 시작하면서, 편두통 카페에 가입했다. 왜 진작 가입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편두통 환자들이 있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두통 타파를 위한 노하우, 신세 한탄, 그리고 뒤 이어지는 격려와 위로의 글을 하나씩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담담해졌다. 큰 위로도 아니고, 그저 '저도 그래요.' '저도 그랬어요.' '그럴 땐 약을 바꿔달라 하세요.'등의 간단한 공감이었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무게 때문인지 내 마음도 같이 단단해지는 그런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단단해지는 경험 속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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