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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06. 2024

보톡스, 토파맥스 그리고 앰갤러티

새로운 시도(1) 전문 치료를 시작하다.

"요즘 들어 머리가 더 자주 아픈 거 같은데, 이제 큰 병원 가서 검사를 해봐라."

펜잘과 몇 안 되는 미가펜으로 버티던 날들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날도 머리가 몹시 아파 오후 반차를 내고 미가펜이 온몸에 돌길 간절히 기도하며 거실바닥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한 마디 건넸다.


맞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밖을 나가는 날이 적어서인지 몰라도 머리가 더 자주 아팠다. 약이 이제 없어서 그런가? 더 자주 아픈 기분이었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몇 년 전, 방송에 나왔던 의사이름을 적어놨던 기억이 났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인기가 너무 많은 교수님이라 3~4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댔다. 그 후로 네이버 타임보드 광고 구좌를 부킹하듯, 정말 미친 여자처럼 매일 실시간 전화를 걸었고, 겨우 취소구좌를 하나 잡을 수 있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편도 3시간은 잡아야 했다. 다행인 건 당시 나는 신촌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정도. 예약한 날이 다가왔고, 병원에 갔다. 문진표 같은 걸 작성하고 선생님을 만났다. 매우 긴장해서 입이 바짝바짝 말랐는데, 선생님이 유명세보다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아직도 mri를 찍지 않음에 의아함을 표했고, 이렇게 된 김에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편두통에 효과가 있다며 느닷없이(내 기준에서) 보톡스를 맞게 됐는데, 기습공격 같은 행위에 얼마나 아팠는지 눈물이 찔끔 났다. 턱, 미간, 측두, 뒤통수, 승모? 쪽에 촥촥촥 주사를 맞았는데 턱 쪽은 갑자기 피가 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나라믹이라는 편두통 약, 그리고 두통 예방약이라는 토파맥스를 처방받았는데, 토파맥스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는 약인지 의사 선생님이 매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 약 먹으면 살이 많이 빠질 텐데 괜찮겠어요?" 나는 나이에 비해 몹시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다. 운동이나 식이요법 외, 약으로 살을 뺄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이라 사실 조금 무서웠다. (궁금하실까 봐 결과만 먼저 알려드리면 단 100g도 안 빠져서 의사 선생님도 나도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예방약 먹어서 머리만 안 아플 수 있다면 먹어야지 어쩌겠는가. 알겠다 대답하고 병원을 나섰다.


앞선 글에 썼듯이 두통의 장점 중 하나가 두통이 있던 날의 상황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건데, 이 날도 그랬다. 평소 좋아하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롱코트를 입고 병원문을 열고 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보톡스를 맞아서 짜증 나게 욱신거리는 머리 때문도 아니었고, 그냥 두통 이게 뭐라고 이 먼 대학병원까지 오게 하고, mri에 이제는 매일 예방약까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눈물이 차올랐다. 게다가 앞으로 다가올 검사일에 '앰겔러티'라는 낯선 주사를 맞기로 약속한 때라 심정이 좋지 않았다. 


토파맥스는 하루에 한 알을 먹었다. 누구는 아침, 저녁으로 먹었다고 했는데, 나와 대화를 나눈 선생님이 자기에게 오는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두통이 평범한 편이라 그냥 하루에 한 알만 먹으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양손이 미친 듯이 저렸다. 처음에는 과하게 운동해서 손이 저린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냉큼 두통카페에 가서 검색해 보니, 손 저림은 흔한 부작용이었고, 그 이후로 몇 번 더 복용했지만 손이 모자이크처럼 분열되는 강렬한 저림에 예방약은 잠시 중단했다. 진통제인 나라믹도 내겐 맞지 않는 약이었다. 복용해도 통증이 잡히지 않았고, 미가펜에 대한 그리움과 단종에 대한 성질만 날 뿐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 mri를 찍고 앰겔러티를 맞으러 병원에 다시 방문했다. 폐쇄공포증이 있어 mri에 대한 두려움은 배가 됐다. 차라리 정신이 없는 게 낫겠다 싶어 수면주사 같은 걸 맞을까도 고민했지만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포기했다. 대신 어떤 글에서 읽은 '끝날 때까지 절대 눈을 뜨지 말라. 눈을 뜨면 바로 코 앞에 벽이 보여서 갑자기 패닉이 온다.'는 말을 거의 암송했다. 그리고 통돌이 안에서 주기도문과 시편 등을 미친 듯이 되뇌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하지만 나는 1년 뒤 또 mri를 찍게 된다.)


다행히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두통은 크게 군발성 두통과 혈관성 두통으로 나뉘는데, 나는 혈관성 두통에 속했다. 그리고 앰겔러티(*앰겔러티는 편두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CGRP를 차단해 편두통 발생을 예방한다.)라는 주사를 맞았다. 신약이라 고민을 했지만 앰겔러티를 통해 편두통 빈도수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원래는 1차에 2개를 맞고, 한 달 뒤인가에 2개를 맞는, 한 달에 한 번씩 1회에 2개를 맞는 주사로 알고 있는데, 나는 1차에 한 개, 그 뒤로도 한 달에 한 개씩만 주사를 놓았다. 1개씩 주사를 놓은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주사가 비싸서(웃음), 그리고 일단 하나씩만 맞고 효과를 보자고 해서다. (물론 이 모든 건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었고, 나 혼자 독단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엠겔러티 말고 아조비라는 주사도 있다. 난 아조비는 맞지 않았다.

앰겔러티를 맞고 온 그날도 머리가 아팠다. 나라믹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말했지만, 일단 한~두 개 정도 복용한 거니 좀 더 지켜보쟤서 그날도 나라믹을 먹었다. 이 때는 앰겔러티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집에 들고 온 3개의 앰겔러티를 냉장고에 잘 모셔뒀다. 토파맥스는 손 저림에 대해 말하고, 하루에 두 번 반알씩 쪼개 먹기로 했다. 그렇게 새로운 치료가 시작됐다. 비싼 신약 주사도 맞고, 예방약도 먹고, 편두통 전문 약도 먹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진짜 치료를 하는 것 같아 기대가 컸다. 이제 막 따뜻한 봄이 오는 21년 4월의 둘째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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